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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지욱 Aug 20. 2017

<타우베>이야기

비둘기'란 이름의 초창기 비행기

    2013년에 나온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장편 애니메이션 영화 <바람이 분다>는 소년이 비행기를 타고 날아가는 꿈으로 시작한다. 소년이 조종하는 비행기는 특이하게도 날개 끝이 뒤로 꺾여있어 마치 새처럼 보였다. 꿈속의 비행기이니 실존하는 비행기는 아니지만 날개 모양만 본다면 독특한 날개 디자인의 비행기인 <타우베Taube>와 무척 닮았다. <타우베>는 지금으로부터 108년 전, 오스트리아의 이고 에트리히가 만들었다. 

    이고 에트리히Igo Etrich (1879~1967)는 보헤미아(지금의 체코) 출신으로 오스트리아의 항공 엔지니어였다. 라이프치히에서 유학을 하던 중, 항공 선구자인 오토 릴리엔탈Otto Lilientahl 의 항공기 연구를 접하고 항공기 제작으로 진로를 정했다. 다시 말하면 ‘호모 아비 엔스’ 로 진화한 것이다. 보헤미아의 고향으로 귀국하여 아버지와 함께 항공기 제작 연구를 시작했다. 1896년에 릴리엔탈이 시험 비행 도중에 추락사하자 부친은 릴리엔탈의 글라이더를 사들여 개량하는 연구를 했다.   

    에트리히는 자노니아(Zanonia macrocarpa)라는 식물의 날아다니는 씨앗-민들레 홀씨처럼-에서 영감을 얻어 V-자 모양의 날개를 단 글라이더를 만들어 <자노니아Zanonia>로 명명했다. 이때가 라이트 형제가 최초의 유인 동력비행에 성공한 1903년이었다(하지만 라이트 형제는 이를 비밀에 부쳤다). 

비엔나로 옮겨간 에트리히는 1907년에는에트리히모델 I인 동력 비행기   <프라터슈페타츠Praterspatatz>를 만들었다. 비엔나의 명소인 '플라터(Prater) 공원의 참새(Spatatz)'라는 뜻이다. 하지만 이름에 걸맞게(!) 엔진 출력이 낮아 잘날지는 못했다. 

    2년 후인 1909년에는 에트리히 모델 II를 제작해 <타우베Taube>로명명했다. ‘비둘기’라는 뜻의 독일어다. 포르셰가 설계한 100마력짜리 엔진을 장착한 2인승 타우베는 '참새'보다는 훨씬 잘 날아 최고속도는 시속 97Km를 냈다. 당시로서는 고성능이었던 탓에 곧 군용으로 개조되었다. 그리고 제1차 세계대전이 터졌다. 

    전쟁이 터지자 독일-오스트리아 진영에서는 <타우베>를 정찰기, 전투기, 폭격기로 운용했다. 특히 독일군은 공격 전에 타우베를 먼저 띄워 적정을 살폈다. 후방에 있는 적의 주요 공격 목표를 확인하고 이를 포병에게 알려주면 곧 포격이 시작되었다. 이런 일이 반복되자 연합국(협상국) 군인들은 <타우베>가 날아와 상공을 한번 휘-익 돌고 돌아가면 곧 적의 공격이 임박했다는 신호로 삼을 정도였다.  


제1차 세계대전 중에 영국인들에게 배포된 방공 식별표. 적기와 아군기를 쉽게 알아볼 수 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쉽게 알아볼 수 있는 것은 바로 <타우베>다. 박지욱 사진.


    타우베는 비둘기들 뜻했고, 비둘기는 평화의 상징이었지만 전장의 타우베는 피와 죽음의 예고편이 되었으니 이 얼마나 얄궂은 운명인가? 하지만에트리히가 평화의 상징으로 타우베라는 이름을 붙은 것은 아니었다. 아마 <참새>를 이은, 좀 더 나은 비행기였기에 <비둘기>로 부른 것 같다. 


날개까지 하얀 <럼플러-타우베>. 시애틀 항공우주박물관. 박지욱 사진.


    타우베의 디자인은 독특했다. 당시의 하늘은 날개가 아래 위로 두 쌍인 복엽기biplane가 대세였지만 타우베는 날개가 한 쌍인 단엽기monoplane였다.  날개 끝도 뒤로 꺾여 정말 하늘을 나는 새처럼 보였다. 날개를 뒤로 꺾은 것은 조종을 위한 장치였지만, 덕분에 누가 보아도 한눈에 에트리치의 타우베를 알아볼 수 있었다. 

    하지만 오스트리아 출신으로 독일에서 활동하던 항공 엔지니어인 럼플러Edmund Rumpler(1872~1940)는 타우베의 디자인을 무단 도용한 다음 조금 변형시켜 자신의 이름으로 비행기를 만들었다. 럼플러는 다임러Daimler 자동차사에서 설계를 하다가 라이트 형제의 비행에 자극을 받아 자동차 회사를 그만두고 항공계로 투신한 호모 아비엔스였다. 타우베의 무단 복제품(1910년) 덕분에 독일 최초의 항공기 제작자가되긴 했지만 온당하지 못한 행동이었다. 더구나 타우베는 정말 독특한 디자인인데, 베낄 걸 베껴야지! 

    에트리히는 럼플러를 무단복제로 고소했지만, 전쟁(제1차 세계대전)이 임박해지자 소송을 취하하고 라이선스도 풀어버렸다. 전쟁 동안 수요가 급증하자  독일의 알바트로스, 고타, D.F.W. 같은 항공기 제작사들도 <에트리히-럼플러 타우베Etrich-RumplerTaube>를 생산했다. 덕분에 타우베는 군용기 역사상 최초로 대량 생산된 비행기가 되었다.


독일 역사상 처음으로 기차 보다 더 빨리 날아간 비행기인 럼플러의 타우베. 뮌헨 도이치박물관. 박준영 사진. 


    '짝퉁' 타우베의 성공에 힘입은 럼플러는 다임러III 엔진을 장착한 본격 정찰/전투기인 복엽기 <럼플러Rumpler C IV>를 제작했다. 1917년부터 독일에서 양산했고, 고도 7,000m까지 날아올라 4시간 동안이나 체공하면서 정찰 및 항공 촬영을 했다. 타우베보다 성능이 훨씬 나았던 탓에 럼플러는 독일 공군의 주력기로 운용되었고, 타우베는 정찰기와 훈련기로 물러섰다. 


타우베를 밀어낸 럼플러 C IV. 뮌헨 도이치박물관. 박준영 사진

    전쟁이 끝난 후, 럼플러는 독일에 계속 남았다. 하지만 유태인이었던 그는 나치가 집권하자 수감되었고, 1940년에 사망했다. 나치는 럼플러의 모든 명예와 기록을 삭제했다. 반면에 에트리히는 전후에 고국인 체코로 이주했다. 체코에서 가장 빠른 비행기인 <스포츠-타우베Sport-Taube>를 제작했는데, 당국이 고속 비행기를 이용해 밀수품을 옮긴다는 혐의를 씌워 몰수해 버렸다. 에트리히는 크게 낙심했던지 이후로 항공업과 관련된 두드러진 활동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몰수되었던 스포츠-타우베는 프라하에 있는 국립 기술 박물관에 자국의 항공 엔지니어가 만든 자랑스러운 명품으로 전시되고 있다. 무덤 속의 에트리히가 알면 어떤 표정 을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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