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주가
핫산네 리야드 앞 사막 초입에 낙타가 준비되어 있었다.
한 줄로 얌전히 앉아 있는 낙타를 보니 거대한 인형처럼 느껴지며 현실감이 없었다. 낙타 등에 타고나서 따뜻한 온기가 전해오자 비로소 살아있는 낙타에 탔다는 실감이 났다. 내가 너무 무거운 존재가 아니기를 바라면서 출발했다.
낙타는 생각보다 높았다. 아주 낯은 사막의 굴곡을 지나갈 때도 몸이 앞으로 많이 쏠렸다. 그래서 손잡이를 땀이 날 만큼 세게 잡아야 했다. 평지를 걸을 때는 광활한 사막의 풍경을 볼 수 있었지만 사막은 평지만 있는 게 아니었다. 나중에 팔이 격한 운동을 한 듯 아팠다.
우리는 에르그 셰비이 모래언덕으로 올라가서 일몰을 볼 것이다. 한 시간 정도 낙타를 타고 가자 모래언덕이 나왔다. 세상이 온통 붉은 모래와 하늘로 나뉘었다. 모두 신발을 벗고 모래 언덕을 올라갔다. 고운 모래가 발바닥을 간지럽히고 간간이 바람에 흩날렸다.
모래 언덕에 오르자 아무도 없는 것 같던 사막에서 낙타를 타고 느리게 지나가는 사람들이 간간이 보였다. 영화의 한 장면이 따로 없었다. 이곳 마르주가는 사막의 시작점이라 막막한 사막의 풍경과 더불어 우리가 달려온 길도 멀리 보였다. 일몰을 기다리며 모래를 흩뿌리고 맨발에 느껴지는 감촉을 즐기면서 모래 위에서 놀았다. 가이드가 준비해 온 스노보드같이 생긴 모래썰매를 타고 한 명씩 내려갔다. 처음에서 무서울 줄 알았는데 타보니 너무 빨리 내려와서 싱겁기는 했지만 아이 때로 돌아간 듯 신났다.
한 시간 정도 놀다 보니 해가 지고 있었다. 모래 언덕에 앉아 지는 해를 바라보았다. 바람은 선선히 불어오고 새털구름 사이로 붉은빛을 세상에 펼치며 해가 지기 시작하자 모두 말이 없어졌다. 이름을 알 수 없는 감정이 차올랐다. 광활한 우주 같은 사막에서 해가 지는 모습을 보니 좀 아릿한 슬픔 같은 게 느껴지기도 했다.
해가 지고 어두워지기 전 다시 낙타를 타고 사막 숙소로 출발했다. 내가 가장 앞에 섰는데 내가 탄 낙타가 전보다 더 덜컹거리는 걸음을 걸었다. 그 충격은 고스란히 나에게 전해져서 꼬리뼈와 팔이 아팠다. 특히, 꼬리뼈가 비명을 지르기 직전으로 아팠다. 가이드가 눈치를 채고 내 자리를 맨뒤로 바꿔주었다. 낙타에게도 맨 앞은 부담스러운 자리라고 했다. 그래서 예민해져서 그런 거라고. 나중에 보니 꼬리뼈 부분 살갗이 벗겨져서 앉을 때마다 고생을 했다.
사막숙소는 튼튼한 텐트 안에 일행별로 머물 수 있었고 싱글침대와 화장실, 샤워실까지 있어서 보통의 숙소처럼 편리했다. 사막 한가운데 이런 시설이 있다는 것이 신기했다. 편리하긴 하지만... 지나친 오지랖일지, 우리와 같은 여행객들의 편리가 사막을 오염시키는 건 아닌지 하는 생각이 들어 마음이 불편했다.
모로코 사막에 올 때에는 불편을 감수할 마음의 준비를 하고 왔는데 이렇게 편한 게 불편했다.
핫산네에서 저녁식사를 준비해 주었다. 음식은 모로코 전통음식과 한국음식 라면과 김치가 나왔다. 음식은 맛있었고 풍족했다. 음식이 너무 많아서 남기는 것도 많았다. 양을 좀 줄여도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저녁식사를 하고 모닥불을 피워놓고 베르베르족 전통악기 연주와 노래를 들었다. 연주하는 청년들이 나오는데 아브라함도 있어서 반가웠다. 일곱 명으로 구성된 연주단은 능숙하고 신나게 연주하고 노래했다. 아브라함이 오는 차 안에서 틀어준 베르베르 전통노래와 비슷하면서도 직접 들으니 울림이 컸다.
베르베르 전통춤을 같이 추고 한 사람씩 앞으로 나와서 베르베르 전통 타악기를 연주하는 법을 배웠다. 처음에는 어색했는데 하다 보니 신났다. 이날 사막투어에는 프랑스 어학연수 중인 이십 대 청년들, 아이 한 명과 부부, 우리 일행 네 명, 신혼부부가 있었다. 신혼부부는 멕시코에서 결혼하고 이곳으로 신혼여행을 왔다고 했다. 핫산네는 세심하게도 이 부부의 결혼을 축하하는 생일 케이크도 준비해 주어서 다 같이 축하해 주고 케이크도 나눠 먹으며 서로 얼굴을 익혔다.
쌀쌀해진 사막에서 모닥불을 피우고 연주를 듣고 서로 어울려 춤을 추었다. 여행이기에 할 수 있는 일들이었다. 떠나오길 잘했다.
작은 축제가 끝나고 별을 보기 위해 숙소 앞 모래언덕으로 갔다. 푹신한 매트리스가 준비되어 있었다. 그곳에 누워 하늘을 보니 수많은 별이 떠 있었다. 북극성도 보이고 별똥별도 간간이 떨어졌다. 소원을 빌 사이도 없이 빨리 떨어졌다. 누워서 별을 보며 이런저런 얘기를 나눴다. 막막한 사막의 어둠 속에서 바람은 선선하게 불고 별은 빛나고 인생에 이런 편안함을 느끼는 날이 얼마나 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소중한 순간이었다.
숙소로 돌아와서 마지막 일행이 샤워를 하는데 갑자기 전기가 나갔다. 깜짝 놀라 밖으로 나가니 옆 텐트에 있던 청년들도 나왔다. 우리는 몰랐는데 사막투어 공지사항에 전력사정으로 밤 12시가 되면 전기가 차단된다는 공지가 있었다고 했다. 스텝들이 있는 텐트로 가보니 불이 모두 꺼지고 다 잠든 것 같아서 깨우지 못했다. 다행히 생수병이 쌓여 있어서 그걸 가지고 와서 사용했다. 여행 내내 이 일은 우리를 웃게 했다.
여행은 일상에서 멀어질수록 여행다워진다는 말이 생각났다. 그 불편을 느끼고자 우리는 떠나오는 게 아닐까.
편안히 잠자던 세포를 깨워 내가 살아 있음을, 여행하는 이유를 느끼게 해 준, 길지만 생동감 넘치는 하루였다. 곤하고도 편안히 잠들었다. 내일의 또 다른 세상을 기대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