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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eine Feb 18. 2016

디지털과 아날로그, 그 어딘가

자그마치 5년의 연애. 뭐 하나를 시작하면 한 해를 채우기 힘들어하던 내가 인생 처음으로 이뤄낸 장기간의 프로젝트였다. 낯선 사람을 만났고 서로를 탐닉했고 뜨거운 관계에 몸을 던졌다가 축축하게 젖어서 나 홀로 빠져나왔다.


스무 살부터 20대의 절반을 관통한 연애는 어느날 끝나버렸다. 심호흡을 하고 나 자신을 살피기도 전에 내 앞으로는 당장 해야 할 일이 (진부한 표현을 빌리자면) 산처럼 쌓여 있었다.


나는 남녀간의 헤어짐을 이유로 많은 것을 정리해야 했다. 디지털 세대의 이별답게 무엇보다 우선적인 것은 휴대전화였다.


긴 연애는 내게 몇천 장의 사진을 남겼다. 그 사람과 함께 찍은 사진. 내가 찍은 그의 옆 얼굴. 내 휴대전화로 그가 찍은 사진. 데이트를 하다가 찍은 풍경. 그날 먹은 음식들. 그 속의 웃는 나.......


사진을 추려내다 보니 결국 전부가 되었다. 그가 연관되어 있는 사진을 모두 지우기 위해서는 나의 5년이 내 인생에서 댕강 잘려 나가야 했다.


지난 5년동안 내게는 ‘나’가 없었다. ‘우리’ 밖에는.


‘한 장씩 너를 지울 때마다 가슴이 아려와 너의 사진이 점점 흐려져 (이승기-삭제 中)’ 2004년에 발매된 노래임에도 불구하고 2021년의 내 심정과 크게 다를 바가 없다. 이별의 이유는 분명 모두 다를 텐데, 왜 같은 노래를 들으며 같은 감정으로 가슴을 치며 살아갈까.


이에 그치지 않고 SNS 속 상대방의 흔적을 모두 지우고, 관계를 끊었다. 번호를 지웠다. 그러고나자 우습게도 우리의 이별이 ‘공식화’ 되어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러고 나자 현실로 돌아왔다. 내 방에 가득 쌓인 흔적을 치워야 할 때였다.


그 사람에게 받았던 물건을 한 곳에 모았다. 작은 박스로 하나가 찼다. 목걸이, 시계 등 악세사리의 비중이 가장 컸다.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으면 선물 받았을 때의 하루가 그대로 떠오른다.


처음으로 받았던 선물은 손목시계였다. 그 날 이후로 손목에 걸린 시계는 내 신체의 일부가 되었다. 스물한 살이 되던 날 그가 준 원석 목걸이, 다툼 후 미안한 마음을 담아 선물한 가죽 팔찌. 나는 이들의 명목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것을 고르던, 내게 내밀던, 머쓱해하며 먼저 걸어나가던 등까지 모두.


모순적이지만 우리 사이가 가장 좋았던 고무신 시절이 오롯이 담긴 편지들까지 종량제 봉투에 쏟아 넣었다.


이 편지를 읽기 위해 집으로 달려오던 시절이 있었다. 우편함에 꽂힌 봉투의 존재만으로 가슴이 벅찼던 시절이 있었다. 텅 빈 우편함 앞에서 괜히 서러워지던 때가, 작은 기다림도 견디지 못한 채 바로 봉투를 찢고 그 사람의 글씨를 만끽하던 때가... 있었다.


그래서 나는 그것들을 당장 버리려다가 가슴이 아려서 쉽게 그럴 수가 없다. 종량제 봉투째로 붙박이장에 넣어 두었다. 부피가 큰 물건들이 사라진 것도 아닌데 집이 텅 비어버렸다.


그렇게 붙박이장을 통째로 미뤄둔 채 하루를 살다가도 문득 문득 그 시절과 다시 조우하게 되었다. 오랜만에 장대비가 내리기에 창고에서 장우산을 꺼내왔더니 그 사람 집에서 가져왔던 것이었다. 양말을 골라 신다가 그 사람이 사주었거나, 벗어 두고 간 양말 몇 켤레가 덩그러니 구르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같이 샀던 머그컵까지 종량제 봉투에 담아야 할까. 함께 마트에서 골라 넣은 빨래 건조대까지 붙박이장으로 밀어 넣어야 할까.


대체 나는 어디까지 그 사람을 정리해야 할까, 그 지점에 대해서 고민을 하게 되었다. 첫 연애와 첫 이별에 대해 수없이 소비하는 미디어들도 이런 것은 가르쳐주지 않으니까. 이별이라는 게 정말 허무하게 찾아와서 나의 온 세계를 뒤집어 놓는다는 것을 정말 알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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