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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eine Feb 20. 2016

소리없이 오고 가는 것들

우리의 연애가 완전히 끝나버리기 한참 전. 그 권태기는 한 번 우리를 비껴간 적이 있었다. 우리가 떨어져 지내게 된 까닭이 컸다. 그는 전문직 시험을 준비했고 나 역시 취업준비생으로 살게 되었다.


아무리 바쁘게 하루를 살아봐도 나는 틈틈이 그 사람 생각이 났다. 아침에 일어나면 물을 마시듯, 식사가 끝나면 양치질을 하듯, 일과가 끝나면 자연히, 자기 전 천장을 바라보고 있을 때에도.


그러나 그 사람은 내게 ‘며칠에 한 번씩’ 카톡을 했다.


공부를 시작하고 한껏 예민해진 그는 나에 대한 생각을 아예 덮어두었다. 하루에 1분이라도 시간을 내어 내게 전화를 걸어주는 게 그리도 힘든 일이었을까. 벽을 보고 기다리는 게 힘에 부쳐 조금이라도 칭얼거리면 그는 처방처럼 이별을 고하곤 했다. 자신의 인생이 더욱 중요한 탓이었을 것이다.


나에겐 그대가 인생이었는데.


나는 그를 이해하려 애쓰며 그 기다림을 묵묵히 견뎠다. 실은 헤어지기 싫었기 때문에 가까웠다. 좋은 아침이라는, 밥은 먹었냐는, 잘자라는 너무나 일상적인 인사치레도 할애하지 않는 그를 놓을 수가 없었다.


내 일을 하면서도 고독했다. 연인이 있는데도 외로웠다. 특히 더 쓸쓸한 밤에는 이어폰을 꼽고 밤산책을 했다. 주머니 가득 화장지를 채워 넣고 동네 학교 운동장을 하염없이 돌았다. 그 동그라미 안에서 나는 무던히도 많이 울었다.


그를 기다리는 게 힘들어서, 그의 일방적인 방식에 토라져서 흐르는 눈물이 아니었다. 기다리라는 말도 없이 나를 묶어두고 ‘힘들면 헤어지자’ 하는 식인 그가 미웠다. 헤어지기 싫으면 조용히, 없는 듯 곁에 있으라는 식인 그가 잔인하게 느껴져서 울었다. 그렇게 두 시간 내내 운동장을 돈 적도 있었다.


소리도 내지 않고 볼 시리게 울고 나면, 나는 주머니에 양손을 꽂아 넣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 때의 나는 그렇게 버텼다.


다행히 그는 1년만에 준비했던 시험에 최종 합격했다. 그러나 내게 고맙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정말로 내게 고맙지 않아서였다. 자신의 인생을 위해 자신이 이뤄낸 성과였다. 그는 그렇게만 생각했다.


1년간 한 달에 한 번도 만나지 않았으니, 권태기는 소리없이 물러가 있었다. 그 시간동안 캠퍼스 커플이었던 우리는 사회 구성원이 되었다. 아이의 티를 벗었지만 우리는 완연한 어른의 연애를 하진 못했다. 여전히 속이 좁았으며, 상처를 주고 후회하는 행동을 무수히 반복했다.


비가 오던 낮. 그 때가 그와의 마지막이 될 줄은 몰랐다. 불과 몇 시간 전까지 행복하다고 믿었던 관계가 일순간 죽어버렸다. 그와 소리를 지르며 싸우는 동안 우리의 사랑은 진작 사라졌고, 연애는 애초에 끝나버렸음을 문득 인정하게 되었다. 지금까지 한 번도 인정하지 않았던 이별이 너무나도 순순히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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