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reine Feb 21. 2016

가장 여리고 투명한 사랑, 나의 예쁜 첫 순정

헤어지던 날. 그 다툼이 치명적이었던가. 그건 아니다.


그 싸움보다 더 지독한 일들이 많았다. 다만 그 날 우리 관계가 끝나버린 것은, 그 곳까지 우리를 끌고 온 모든 상황 때문이었다.


첫 연애였다. 시간이 어느새 이렇게 가버렸나 싶은 꿈결 같은 순간들. 바라보고 있어도 보고 싶다는 말을 매 순간 깨달았다.


나는 그를 사랑했다. 무뚝뚝한 말로 나를 상처주는 그를. 표현에 서툴러서 나를 외롭게 만드는 그를. 까슬하고 새까만 머리칼을. 그의 피부를. 작은 귀와, 단단한 어깨를. 그의 껍데기 속 나만 아는 은밀한 마음을 사랑했다.


아무도 모르는 그의 잠꼬대를, 웃을 때면 콧대가 눌리는 모습을, 내 이름을 부르는. 그의 모든 것을 사랑했다.


그래서 그 사람과 결혼하고 싶었다. 내 남은 아득히 멀고도 긴 삶이 당신의 것이길 바랐다.


당신만을 보고, 당신만을 기다리는 삶이 그 당시 내게는 참 즐거웠다. 트러블을 겪으면서도 맞춰가는 과정이라고 유의미하게 여겼다.


하나 하나 새롭게, 특별하게 관계를 정립해나가는 나보다 그는 언제나 몇 걸음 앞서 있었다. 고작해야 스물 몇 살인건 마찬가지였지만 나보다 두어 살 많았던 그 사람에게는 이미 처음이 있었고 그것은 내가 아니었다.


그 사람은 말했다. 연애도, 이별도 처음해 보는 거라서 낯선 것이라고. 사실 한 번 하고 보면 모두가 다 이런 이별을 하면서 살았음을 깨닫게 된다고. 나는 고개를 저었었다.


우리는 다르다고, 우리의 사랑은 지구에서 단 하나 유일한 것이라고. 나는 얘기했지만 끝끝내 당신은 나에게 동조해주지 않았다.


이미 여러 번 연애를 하고, 이별을 한 당신의 처음은 이미 지나갔으므로.


그는 내겐 단 한 번뿐이었던 사랑과 이별을 앞에 두고 그렇게도 매몰차고, 모질 수 있었다.


당신이 나를 찍어준 사진, 당신과 먹었던 음식 사진도 모두 지우느라 지옥이었던 나의 밤.


당신과 함께 샀던 소품과 가구, 볼펜 한 자루까지 마음이 저려서 모두 버려야 했던 나.


당신이 무언갈 좋아했다는 말에, 나도 좋아지던 순순한 날들.


이제 당신은 그것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말에도, 나는 일순간 감정이 덜어지지 않던 날들.


나도 이제 다시는 하지 못 할 가장 여리고 투명한 사랑. 그것을 한껏 받았던 당신이 미치도록 샘이 나기도 한다.


왜 나는, 내게 그가 그러하듯 가슴 절절한 생에 단 한 번 뿐인 뜨거운 사랑이 될 수 없었을까.


대가를 바라지 않았던 나의 예쁜 첫 순정이 다신 찾아낼 수 없는 곳으로 영영 갔고 나는 여전히 그 사실이 아프다.



이전 05화 흔한 사랑을 했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