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십 대의 첫 자유를 만끽하며 며칠이 흘렀다. 내키는 대로 친구를 만나고 원하면 술을 마셨다. 늘어지게 낮잠을 자고, 남는 시간과 돈을 오로지 나를 위해 썼다.
누군가에겐 시간 낭비라고 불리울 그 삶이 분명 내게는 필요했다. 스무 살부터 시작된 연애는 때로는 내게 족쇄로 작용했다. 특히 그 사람이 군인일 때 절정에 이르렀다.
군인이 된 그 사람은 내 귀가시간을 단속했고, 내 SNS 속 모든 이성을 차단했다. 뿐만 아니라 면회 때면 내 휴대전화를 샅샅이 ‘검사’했고 문자 한 통에도 날을 세우며 취조를 하기도 했었다.
우습게도 그 사람이 나만을 바라보던 유일한 시간. 나는 그 때를 거치며 대학 동기를 포함한 모든 남자 사람 친구와 연락이 끊겼다.
내 옷차림을 단속하고, 내 일상을 점검하는 그 사람을 그대로 놔두었다. 과도하게 집착하며 나를 통제하려 드는 게 사랑이라고 믿었다.
그 2년짜리 사랑은 제대를 하자마자 종결되었다. 사회에 나오니 나보다 중요한 게 너무 많아진 그에게 늘 뒷전취급을 받았다.
가스라이팅으로 점철되어 있던 고무신 시절이 그리워지기도 했으니... 스톡홀름 증후군이 얼마나 만연한 것인지 깨닫는 경험이 되었다.
다시 현재로 돌아와서. 더디고 공정하게 시간이 흘렀다. 그 과정에서 참 우스운 일이 일어났다. 지난 날들이 미화되기 시작한 것이다.
내가 이 사람만큼 누군가를 사랑할 수 있을까?
신파적이고도 통속적인 말이 나를 맴돌았다. 이 즈음의 나는 슬픈 이별 노래를 나서서 찾아 듣고, 차마 지우지 못했던 사진 몇 장을 보며 눈물 짓는 밤이 길었다.
태풍보다 무섭다는 후폭풍. 이별을 한지 이주일만에 내게도 상륙했다.
가느다란 이성의 끈을 붙잡으며 지낼 수 있었던 것은 ‘그 사람도 나만큼 힘들겠지’라는 이기적인 희망 때문이었다.
그런데 헤어진지 2주도 되지 않은 시점에 다른 여자와 손을 붙들고 내 앞에서 나란히 걷는 그 사람을 본 순간 나는 그야말로 눈이 돌았다.
내가 아닌 다른 여자와 자연스럽게 함께 있는 그 사람을, 너무 일찍 발견해 버린 탓에 나는 그 때부터 이별을 정통으로 맞고 시름시름 앓았다.
그 여자의 SNS를 찾아내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나는 병적으로 게시물을 확인하고, 그들의 연애를 염탐하며 인생에서 가장 피폐한 시간을 보냈다.
내가 갖지못한 그 여자의 부분들은 자격지심이 되었다.
나보다 더 잘나고 아름답고 근사한 여자를 만나기 위해, 나를 버린거구나. 그야말로 정신병이었다. 머리카락은 자라지 않고, 밤에는 깊게 잠들지 못했다.
간신히 선잠에 들면 항상 그들의 꿈을 꿨다. 지독한 악몽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