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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eine Feb 23. 2016

그의 연애를 염탐하다

그 사람이 사랑하는 그녀는 나와 대조적인 사람이었다.


나는 키가 컸지만, 그녀는 작았다. 악세사리를 좋아하지 않는 나는 성인이 되어서도 귓불을 뚫지 않았다. 그녀는 피어싱은 기본이고 손가락마다 은색 반지를 겹쳐 끼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무채색을 좋아하는 나. 쨍한 색감의 의상을 좋아하는 그녀. 살결이 흰 나. 건강한 톤으로 그으른 그녀의 피부.


책을 좋아하는 나. 레포츠를 즐기는 그녀. 막시밀리언 해커를 즐겨 듣는 나. EDM 페스티벌이 개최되기를 기다리는 그녀.


그녀의 SNS를 샅샅이 살펴볼수록 나와는 너무 다른 구석들만 눈에 띄었다. 몇 개 되지도 않는 게시물을 하루에도 몇 번씩 다시 보았다. 새로운 게시물이 올라오는 게 없나 습관처럼 그녀의 인스타그램을 찾았다.


그 사람의 흔적이 묻은 게시물, 둘이 나누는 댓글만 몇 개 발견해도 심장이 갈리는 기분이었다.


그렇게 내가 아닌 다른 여자와 함께 있는, 그 사람의 연애를 뒤에서 지켜보았다.


그 연애 속 남자는 내가 알던 사람과 전혀 다르게만 보였다.


커플링을 하고 싶어했던 나의 요구를 늘 거절했던 그가 100일도 만나지 않은 그녀와 같은 디자인의 반지를 나눠 끼고 있었다.


데이트 비용을 부담하는 데에 소극적이던 그가 그녀에겐 키다리 아저씨로 변모했다.


낯간지러운 게 싫다던 그 사람이 커플 폰 케이스를 하는 것, 카카오톡 프로필 사진을 커플 사진으로 변경해둔 것.


나와 만났을 때는 하지 않았던 행동들이 나를 더욱 더 무너지게 만들었다.


그는 나를 사랑하지 않았구나.


나를 사랑하긴 했냐고, 간절하게 묻고 싶어졌다.


그들의 연애를 바라보면서 내가 말라갈 수 밖에 없었던 이유는 수십, 수백 가지로 불어났다.


왜 사람은 잠깐의 호기심을 이기지 못하고, 기어이 눈으로 확인한 뒤 상처를 받는 일상을 반복할까?


오늘부터는 그녀의 SNS를 염탐하지 않겠다고 마음으로 맹세해놓고, 나는 얼마 안 가 휴대전화를 붙든 채 울고 있다.


나를 떠난 그 사람을 모두 털어내고 꿋꿋하게 살아내자 다짐했다가, 그 사람도 나처럼 아프길 기도한다.


오늘의 너는 더는 아닌 것 같다가

내일이 되면 난 너밖에 없는 걸

나도 가끔씩은 너에게 아픈 맘을 주고 싶어

초라하게 나만 늘 기다리잖아

너도 한 번쯤은 갑자기 전활 걸어 울었으면

모든 게 다 나로 무너졌으면

난 가끔 너에게 상처를 주고 싶어 - 새봄
이 노래를 쓴 가수는 분명 초라한 연애도, 구질구질한 이별도 해봤으리라 생각한다.


사람은 사람으로 잊는다는 말을 가장 많이 들었던 시절. 나는 가벼운 마음으로 새로운 인연을 만나러 갔다가, 도로 내 마음을 들고 들어온 적이 많았다.


나는 아직 네가 아니면 안될 것 같은데.


너는 어떻게 벌써.


나와 함께 갔던 그 곳을, 우리가 자주 찾던 식당을, 잠이 오지 않는 밤이면 속삭이던 주문을. 다른 사람과 공유하며 살아갈 수 있니.


억울하고 화나고 서글프던 시간. 하루에도 몇 번씩 울컥하던 날들. 다음날 눈이 떠지지 않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길고 어두운 밤.


지나가지 않을 것만 같던 시절도 결국은 지나갔다.


다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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