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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eine Feb 23. 2016

이별은 왜 같은 순간에 찾아오지 않을까

나에게 집중하는 시간을 가져라.

바쁘게 살아라.

다이어트를 해라.

새로운 취미를 즐겨라.

술을 끊어라.

부모님께 효도해라.

새로운 인연을 만들어라.

어학연수를 다녀와라.


이별로 힘들어하는 이들의 하소연을 인터넷 상에서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그 이별을 먼저 빠져 나온 ‘선배’들은 그 게시물에 다양한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그 때의 나는 무척이나 수동적이어서 ‘이렇게 하면 나아진다더라~’ 하는 말들에 쉽게 마음을 움직였다.


등산과 요가로 운동을 시작했다. 자기개발을 하는 데에 시간과 돈을 썼다. 건강한 끼니를 챙겨 먹기 시작했다. 혼자 있는 시간을 줄이고 부모님을 자주 찾아뵀다.


그것들은 나름대로 효과가 있기도 했다.


아주 잠깐 동안 그 사람을 생각하지 않을 수 있었다. 그녀의 인스타그램 아이디를 잊은 채 반나절을 지냈다. 그 사람의 카카오톡 프로필을 새로고침 하지 않은 채 해가 저물기도 했다.


그러나 밤이 오면 다시 쓸쓸해졌다. 잠들지 못하는 날이 길었다. 아무리 일과 시간을 바쁘게 지내도 침대에 누우면 몸만 피곤하고 눈은 말똥말똥했다.


그렇게 긴 긴 밤을 주로 그녀의 SNS를 보면서 보냈다. 그러니 더더욱 피폐해질 수 밖에.


시간이 많이 많이 흘러서, 모든 것이 무뎌졌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생겼다.


하루 아침에 마흔 살이 되어도 좋으니, 이 이별의 감정과 아주 많이 멀어져 있을 수만 있다면.


그렇게 생각할 정도로 이별은, 이별의 후폭풍은 거세고 매서웠다.



디지털 시대 이별 법칙

1) 상대방 카톡, 인스타 염탐 절대 금지 [바로 차단 박아버리기]

2) 뜸들이지 말고 모든 사진 삭제, 외장하드도 모두 비우기.

3) 카톡으로 이별한 티 내기 금지 [청승맞은 BGM, 이별 글귀 X]

4) *23#으로 전화 걸어보기 금지 [여보세요만 듣고 끊는 것도 금지]



하지만 시간은 흘러갔다.


그의 생각에서 벗어나면 나는 개운해졌고 얽매이기 시작하면 다시 울적해졌다. 그러나 그 울적함은 현재에 대한 슬픔이 아니었다. 과거에 대한 회의였다. 후회였다.


떠난 후에도 나를 헤집어 놓는 사람. 그 사람을 더이상 뒤돌아보지 않기로 결심했다. 이미 끝난 관계 때문에 상처 받지 않기로 마음 먹었다.


물론 미련일지, 아쉬움일지 모를 마음이 내내 맺혀 있긴 했다. 그는 왜 여전히 나를 괴롭힐 수 있는 사람인가, 왜 아직도 내게 영향력을 가졌을까. 서러운 의문이 들었다.


연애는 지금껏 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었다. 삶의 모든 결핍을 연애로부터 충족하고 싶었던 나. 나보다 우선이었던 연애. 어느덧 내 전부가 되어버린 연애. 그 연애를 놓칠 자신이 없던 나. 그 사람이 떠날까봐 내 상처를 외면하고 살았던 나. 이 사랑이 떠나면 내가 죽어버릴 것 같았던 시간. 시작부터 과정까지 모든 게 건강하지 않았다.


달콤한 꿈결 속에서도, 깔깔한 모래를 씹는 중에도 시간은 공정하게 흐른다.


시간이 지나자 나는 다시 웃을 수 있어졌다. 인생에서 내가 가장 중요해진 인생을 살게 됐다.


그리고 내가 괜찮아지자, 그가 괜찮지 않아진 모양이었다.


[자?]


엑스보이프렌드는 꼭 늦은 시간, 전 여친의 취침 여부를 궁금해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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