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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eine Feb 23. 2016

미안한 너, 구질구질한 나

‘사랑해’의 반대말은 ‘사랑했다’라고 한다. 지금은 아니지만, 과거에 너를 사랑했다. 지금은 너를 사랑하지 않는다. 다 과거의 일이다. 이렇게 말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사랑이 완전히 끝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는 그 사람이 밉다.


지긋지긋하다. 다시는 그와 만나고 싶지 않다. 재회하기엔 너무 많이 돌아왔다.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나는 여전히 그를 미워했다. 나와 헤어지자마자 너무 쉽게 다른 여자와 시작한 그를. 이제와서 내게 미안해하며, 그것으로 면죄부를 얻으려는 그를 미워한다.


길을 걷다가 그를 마주치면 나는 그에게 인사할 수 없을 것이다. 모르는 척 지나치지도 못할 것이다. '나 이만큼 화났어. 아직도 널 용서하지 못했어.' 하는 눈빛으로 그를 노려보겠지. 왜냐하면 여전히 그에게 화가 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고민한다. 나는 대체 왜 그에게 화가 나 있는가. 그러면 말문이 막혀버린다.


우리는 이미 끝난 사이였다. 그는 다른 여자와 너무 쉽게 시작했고, 그 시작이 나와의 끝에 걸쳐져 있음이 큰 상처로 남았다. 어쩌면 그 모든 이유로 우리는 헤어졌다. 그래서?


생각은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버린다. 그래서? 우리는 끝난 사이인데 나는 왜 그를 미워하는가. 그의 연락에 쿨해지지 못하고, 왜 그의 사과를 받아들이지 못하는가.


나는 인정하지 못하는 아주 구차하고 속이 좁은 내면의 방. 친구, 가족은 물론 나 자신에게도 완전히 보여주지는 못하는 은밀한 곳. 그 곳에서 나는 그 사람을 붙들고 있었다.


그가 나에게 죄의식 없이 살까봐. 내가 그의 사과를 받아들이고, 그의 무거운 마음을 덜어주면 정말 끝일까봐. 이제는 정말 그가 나를 '잊어버릴'까봐. 그리고 완전히 행복해질까봐.


헤어짐을 모두 받아들이고, 번복할 생각이 없으면서도 나는 그에게 소리치고 있었다.


나는 너를 미워해!


그래서 나는 그가 나에게 잘못했다는 것으로 그를 여전히 붙들고 있었다. 그가 나를 완전하게 벗어나지 못하도록. 그의 사과를 받지 않은 채로, 너의 잘못으로 내가 받은 상처가 너무 깊다고 소리치면서.


그가 나에게 미안해서 다행이라고, 정말 정말 다행이라고 안도하면서.


그를 미워한다는 이유로, 나에게 내내 미안한 사람을 만들었다. 인정하기 싫지만 나는 여전히 구질구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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