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서 소주를 마셔본 건 처음이었다. 술에 취한 채로 많이 울며 스스로를 달래주었다.
이렇게 구차하고, 구질구질하고, 초라한 나조차 나이므로.
헤어지고 처음으로 그에게 먼저 전화를 걸었다. 그는 수화음이 몇 번 울리기도 전에 응답했다. 취하지 않은 그의 목소리는 너무 오랜만이었다.
그에게 말했다.
내게 연락하지마. 더이상은 나를 흔들지마. 너도, 나도 잘 지내는데.. 왜 자꾸 연락하니. 네가 연락을 하면 내가 네 생각을 하게 되잖아. 비틀거리게 되잖아. 네 목소리를 듣고나면 옛날 생각에 한참을 마음이 울렁거린다고.
그 사람을 미워하지만 차라리 그 사실을 잊고 싶다. 그 사람이 내게 연락하지 않으면 나는 그를 미워하는 사실을 잊고 있다가, 연락이 오면 다시금 상기되곤 한다. 잘 지내다가 다시 일상에 균열이 온다. 내가 그 사람을 마음으로 붙들고 있는 만큼, 힘겨워진다. 그래서 애원했다.
내가 더이상 힘들지 않기 위해, 그 사람을 용서하기로 했다. 미워한다는 명목으로 그를 붙들고 있는 내가 가여워서 그를 잊기로 했다.
자책하지마. 너를 그렇게 만든 건 나야. 너를 너무 사랑해서, 그걸 조금도 숨기지 못해서, 나보다 네가 더 중요해서. 이런 내 마음이 너를 그렇게 만들었어. 어떤 사랑을 받아도 오만해지도록 부추겼어. 너에게 우스워진 건 어쩌면 내 탓이야.
그 사람의 마음을 가볍게 할까봐 영악하게 감춰왔던 말을 이제야 한다.
미워하는 동안은 헤어진 게 아니야. 나도 모르게 너를 미워하고 있었다. 정말 헤어지자. 과거가 그리워서, 아쉬워서, 그런 이유로 우리 다시는 만나지 말자. 이제 그만하자.
한참의 침묵 뒤에 그가 말했다.
[아기였는데, 갑자기 어른이 됐네.]
그를 만나는 내내 내 마음은 스무살에서 더 자라지 못했다. 어리고, 질투가 많고, 영악한 그 마음 그대로 나이만 먹었다. 그의 사랑은 나를 성장시키지 못했다. 늘 결핍되어 있었던 나의 5년. 그의 사랑이 모자라 갈증이 떠나질 않던 연애.
나는 그와 헤어지고 성장하기 시작했다. 이제서야 내 나이만큼 자랐다. 이별을 지난, 인생에 부분이 될 짧은 기간동안 나는 밀린 성장을 마쳤다.
전화를 끊고 조금 더 울다가, 눈물이 멎었다. 뜨거운 숨이 목구멍을 모두 빠져나간다. 이제 정말 괜찮다. 다 괜찮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