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reine Feb 24. 2016

이별 여행

며칠 뒤 나는 처음으로 혼자 여행을 떠났다. 목적지는 가장 낯선 곳, 북경이었다.


처음으로 혼자 떠나는 여행임과 동시에 첫 해외여행이었다. 불편하고 설레는 마음으로 비행기에서 내내 정자세로 앉아 있었다. 기내식을 먹고, 따뜻한 차 한 잔도 받아 마셨지만 내가 중국으로 향하는 비행기에 실려 있다는 게 실감나지 않았다.


정신없이 수속을 밟고 북경공항에 서서 캐리어를 찾아 들고도, 이 곳이 외국이라는 것을 인지하지 못했던 것 같다. 다만 곳곳에서 들려오는 낯선 언어에 잔뜩 긴장이 되었다.


첫날에는 곧장 숙소로 향했다. 깨끗한 호텔에서 식사를 해결하고 밀린 잠을 잤다.


둘째 날 첫 목적지는 만리장성이었다. 벽돌 하나에, 사람 목숨 하나로 친다는 말이 있을만큼 만리장성을 세우기 위해 수많은 목숨이 희생되었다고 한다.


점차 숨이 고조되고 나중에는 헐떡거리면서 계단을 올랐다. 아무리 걸어도 끝까지 닿을 수 없다는 것을 알지만 최선을 다해서 걸었다.


이쯤하면 됐다.


느끼고 나서 풍경을 바라보려 멈춰 섰을 때, 나는 마음 속에서 다른 하나도 함께 놓았다.


실컷 걷고 내려와서는 출처를 모를 건과일을 사먹었다. 건망고와 귤 따위의 과일처럼 보이는 건과일이었는데 둘 다 별로였다. 후숙도, 조미도 안 되어 있었기 때문인 것 같다. 이내 달달한 것이 먹고 싶어서 타로맛 아이스크림까지 사 먹었다.


만리장성을 눈으로 담고 내려오는 길, 많은 생각을 했다. 그렇게 텔레비전에서, 책에서 듣고 본 만리장성을 실제로 밟고 나자, 별 것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다.


이후로도 이화원, 왕부정 거리, 천단공원 등 많은 곳을 쏘다녔는데 향신료가 입에 안 맞아서 음식 때문에 고생을 했다. 어디를 가든 뿌야오 샹차이!(고수는 빼주세요)를 외쳤다. 그리고 숙소로 돌아와 한국에서 사온 컵라면을 먹었다.


나는 잘 있어요, 걱정하지 마세요.


필요한 연락을 제외하고는 휴대전화를 만지지 않았다. 대신 잠에 들기 전에는 그리운 사람들에게 편지를 썼다. 첫 날은 가족에게, 이후부터는 친구들에게 썼다.


이 곳은 새로운 것 투성이라고, 지금 그 어느 때보다 마음이 가볍다고. 주로 내 이야기를 주절주절 늘어놓았다. 언제나 나는 나보다 우선인 것이 있던 사람이었다. 떠나오자 그 것을 잊게 되었다.


혼자여서 쓸쓸한 순간들이 있었지만, 그럴 때 일수록 나는 더 당당하게 여행을 즐겼다. 혼자였기에 더 많은 것을 내가 해야했다. 그러나 혼자였기에 만끽할 수 있는 것 역시 더 많았다.


멀리 떠나오자 배울 수 있었던 가장 큰 것은 대담함이었다. 썩은 냄새가 진동을 하는 취두부도, 살아움직이는 전갈꼬치도, 외국에서 외국인과 싸우게 되는 상황도 사실은 별 것 아니었다. 그 동안 나는 너무 먼저 포기하고 있었음을 깨달았다.


혼자 떠나는 여행을 대륙으로 오고 싶었던 가장 큰 이유는, 내가 고민하는 것이 얼마나 (상대적으로) 작은 것인가 깨닫고 싶어서였다. 나는 그 목적을 달성하던 날 마지막 밤을 맞았다.


이별은 내게 많은 것을 가르쳐주었다. 혼자 떠나게 만든 용기 또한 이별이 주고 간 것이었다. 사실 나는 원래 혼자였다. 긴 시간 둘이었기 때문에 나는 혼자가 된다는 걸 남모르게 두려워하고 있었을 지 모른다. 그렇지만 어쩌면 사실 알고 있었다. 나는 괜찮아질 것이라는 걸.


둘이었다가 혼자가 된다는 건, 원래 자리로 돌아가는 것.


연애가 끝났지만 내 삶은 끝난 것이 아니기에. 나는 일상으로 돌아갈 비행기에 올랐다. 짧지만 긴 여행이었다.

이전 12화 나를 위한 용서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