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일상으로 돌아온 내가, 완전히 단단해졌느냐고?
그렇다면 참 좋았겠으나 그러지 못했다.
연락하지 말라는 내 말은 무시했는지 그 사람에게서는 잊을만하면 연락이 왔다. 그때마다 나는 휘청거렸고.
멋진 남자를 만나서 더 행복한 연애를 한다든가, 당장 성공을 해서 복수를 한다든가. 그런 통쾌한 이야기는 바로 이어지지 않았다.
다만 나는 건강해졌고, 그 이별로부터 걸어나와 여전히 ‘나’로 잘 살아가고 있다.
이 글이 드라마가 아니라서 송구스럽다. 조금 더 멋진 결말이었으면 좋을 뻔 했다. 그러나 그것은 너무 먼 이야기고, 이건 나와 당신 주변에 실재하는 평범한 연애담이다. 더군다나 이 것은 이 글의 결말일 뿐 앞으로 '나'의 인생은 또 어떤 방면을 맞을지 아직 모르겠다.
나는 한 살을 더 먹고 목주름이 생겼다. 이별 후유증으로 3kg이 빠졌었는데 원상복귀 되었다. 나는 여전히, 조금은 물렁물렁한 삶을 살고 있다.
호기롭게 그를 용서했지만 술에 가득 취한 어느 날에는 그 사실을 후회하며, 그 사람의 인생이 망해버렸으면! 하고 저주도 한다.
그래서 내 삶이 애처롭게 느껴지는가. 그렇지 않을 것이다.
인생의 전부인 것 같던 연애가 떠나고 나는 다시 혼자가 됐다. 그렇지만 나는 초라하지 않다. 어디에도 억지로 기대어 있지 않고 내 두 다리로 서는 법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20대에게 사랑은, 첫 이별은 세상이 휘청거리는 경험을 선사해준다. 너무 뜨거워서 너무 쉽게 데이고 너무 쉽게 괴로워진다.
하지만 그 연애가 끝난다고 해도 뭐 엄청 대단한 무언가가 오지 않는다고, 죽니 사니 하는 마음도 결국엔 끝난다고 알려주고 싶다. 그런 걸 알려주는 책은 없었으니까.
이 글이 통쾌한 복수극이 아니면 어떠한가. 나는 오늘 또 나의 인생을 잘 살아갈 것이다. 가끔은 구질구질하고, 또 가끔은 구차할지언정 나는 내 인생이 즐겁다. 그렇다면 적어도 배드엔딩은 아니지 않을까.
앞으로는 더 많은 것을 사랑하며 살겠다. 기왕이면 그것이 나의 인생이었으면, 내가 가진 장점이었으면 좋겠다.
연애가 끝났다. 그러나 아직 끝나지 않은 것들이 너무 많다. 스물여섯의 나는 그것을 알고 있다.
작가의 말.
제 브런치 첫 연재작인 ‘스물다섯, 연애가 끝났다’를 다시 써서 엮었습니다.(무려 2016년 작)
이 글은 에세이 형식이지만 픽션입니다. 제게 많은 분들이 메일을 통해 연애 상담을 해주시는데요. 모두 다른 사랑을, 같은 마음으로 하고 계시더라고요. 부족한 글을 여전히 많은 분들이 읽어주시는 게 송구스러워서 리메이크 하는 심정으로 써봤습니다. 구독자분들은 모두 예전에 읽으셨겠죠?ㅎㅎ같은 맥락이지만 또 다른 느낌으로 읽히실 거예요.
결말을 아는 길을 우리는 뻔히 선택하고야 말 때가 있어요. 스포일러가 난무하는 삶은 때로는 받아들이기 쉬워 좋고요. 우리의 사랑이, 관계가 어떻게 흘러갈지는 사실 뻔해요. 행복하고 불행한 그 변덕의 외줄 위에서 하염없이 앞으로 가거나 이만 떨어져 나가거나 하겠죠.
우리는 새로움보다 친절한 익숙함에 위로 받으며 살잖아요. 같은 테두리 안에서, 우리는 경계선이고 지평선이 될 큰 선보다 선 안에서 무궁무진하게 솟았다가 가라앉는 감정들을 사랑하니까요.
더 좋은 퀄리티의 글로 기억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적었습니다. 다시 읽으실 여러분들도 그 때의 ‘스물다섯’보다 조금 더 자란 마음이시길 바랍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이별로 너무 힘든 분들께는 ‘다 끝나고, 괜찮아진다’는 사실이 안도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