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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eine Feb 19. 2016

지구 밖으로 사라져버린 사랑

그 시절의 나를 가장 많이 지배한 건 나만 놓으면 끝날 관계라는 믿음이었다. 내가 그를 사랑하기에 이 관계가 지속된다는 생각을 했다. 그 사람은 우리의 연애를 지키기 위해 조금도 애를 쓰지 않는다.


모든 것을 알면서도 헤어지지 못했다. 이 시기를 견디면 다 해결될 것이라고 안일하게 생각했다. 나를 사랑해주던 그 시절의 그가 어디엔가 숨어 있다가 짠ㅡ하고 나타나 지난 시간을 반성하고 내게 용서를 구할 거라고.


언제부턴가 그는 너무 쉽게 헤어지자고 했다. 냉정한 표정으로 나를 향한 사랑이 모두 끝나버렸다고도 했다. 나는 그럼에도 그에게 매달렸다. 돌아보니 스스로가 우스울 정도로 구질구질하게 매달렸다. 껍데기라도 내 곁에 있어주길 바라는 마음으로 빌었다.


그를 사랑했기 때문일까? 그를 잃고 싶지 않았음에 더 가까웠다. 그는 나의 처음이었다. 첫 연애. 첫 뜨거움. 첫 두근거림. 첫 이별. 처음은 내게 마지막과 다를 바 없는 의미였다. 앞으로 내 남은 긴 생에 그 사람이 매번 있어야 했다. 그 사람이 떠나버리면, 우리가 영영 헤어진다면 나의 이십대는 누구에게도 기억되지 못한 채 사라져버릴 것만 같았다.


그가 매정할수록 나는 더욱 구차해졌다. 정말로 그가 나를 여기에 혼자 두고 가버릴까봐, 기를 쓰고 붙잡았다. 나를 좋아하지 않더라도 내 곁에 있어줬으면. 그렇게 초라하고 비굴한 감정들로 온통 엉겨있던 시기였다.


내 삶이 온통 그 사람이었다. 조금이라도 시간이 나면 그를 위해 썼다. 그가 좋아할 행동을 하고 그가 싫어할 일은 철저히 배제했다. 그러다보니 내 인생엔 그 사람만이 남았다. 그 사람을 위해 부득부득 애를 쓰는 내가 홀로 있었다.


나보다 중요한 것이 많아진 그와, 그런 그를 가만히 앉아 기다리는 나. 나에게는 사랑 하나를 덜렁 남긴 채 그는 너무 많은 것을 사랑했다.


전화기가 불이 나도록 끝나지 않던 통화. 내게 해주고 싶던 말들을 오래 곱씹던 공백. 나를 닮았다고 말하던, 나를 닮지 않은 것들. 어린 내가 사랑했던 어린 그 사람. 나를 사랑하던 그 사람이 그리워서 많이 울었다. 내가 사랑했던, 나를 사랑했던 그 사람은 대체 어디로 가버린 걸까.

  

내 곁에 있지만, 더는 내 곁에 있지 않은 사람. 지구 밖으로 사라져버린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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