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reine Feb 19. 2016

웃기는 사랑이었다

헤어지고 주변에서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은, 이번엔 진짜냐는 물음이었다. 그만큼 많이도 싸우고 많이도 이별하고 많이도 재회했다. 그러나 나는 한번도 그와 진심으로 헤어졌던 적이 없었다.


어린 날은 내가 먼저 헤어지자고 말하고서도 속으로는 그가 잡지 않으면 어쩌지 애가 닳았다. 반대로 이별을 고하고 순식간에 냉랭해진 그에게 내가 죽기살기로 매달리기도 했다. 그도 나와 같은 마음으로 내가 이별을 부정하길 바란다고 믿으면서.


그는 내가 체념할 즈음이면 다시 돌아왔다. 이 과정이 지겹게 반복되고 나서야 깨달았다. 우리가 헤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걸.


우리는 많이 싸우는 커플이었다. 사소한 것으로든, 조금 복잡한 일로든 무조건 크게 싸웠다. 그것은 모순적이게도 서로 사랑하기 때문이었다. ‘그 일’ 때문에 너무 너무 너무 화가 나고 속상하지만, ‘그 일’을 이유로 헤어질 수는 없기에 싸우는 것이다.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 그 상처가 미안해서 앞다퉈 사과했다. 잔인한 말을 나누던 입을 맞추고 상처 받았을 상대방을 진하게 끌어안았다. 그것이 전부였다. 그러니 근본적인 문제는 조금도 고쳐지지 않았다.


우리는 계속해서 싸웠고 계속해서 어설픈 화해를 했다. 그러는 동안 마음은 반창고로 덕지덕지 도배가 되었다. 소독도, 치료도 하지 않고 당장 덮어두기만 했던 탓에 속은 사실 곪아 있었다.


그러다가 그가 이 관계를 위해 더이상 노력하고 있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눈물에 그가 무뎌지기 시작했을 때. 권태기였다.


내 인생에서 가장 비참하고도 자존감이 낮은 시기를 꼽으라면 단연 그 때다. 그는 너무 쉽게 나를 울게 했다. 그러면서도 나는 계속해서 그가 내 가슴에 반창고를 붙이는 것을 허용했다. 출혈이 컸다. 반창고는 끈기를 잃고 금세 너덜해졌다. 바보같이 반창고를 여미며 그를 안았다.


만나면 내 얼굴보다 스마트폰을 더 들여다보는 그는 참을 수 있었다. 우리의 기념일을 잊는, 이중약속을 잡는 그는 참을 수 있었다. 싸움이 잦아지고 만남이 줄어드는 것도 참았다. 그런데 어느 순간 내게 소리를 지르는 그를 참을 수 없었다. 내 눈을 쳐다본 채로 윽박지르는, 내 눈물을 지겨워하는 그를 참을 수 없어서 결국 이별을 고한 셈이었다.


권태기는 이별 사유가 되지 않았다. 다만 권태기와 함께 찾아 온, 나를 너무나 쉽게 대하는 그의 태도가 문제였다.


왜 이렇게도 사람은 간사한 존재일까? 내가 상대방을 사랑하고 있는 크기와 상대방이 나를 사랑하고 있는 크기를 비교한다. 그리고 후자가 크다는 확신이 들면 쉽게 오만해진다.


부모도 아니면서, 이렇게나 나를 이유없이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소중하고 찬란한 일인지를 전혀 모른 채로.

이전 01화 디지털과 아날로그, 그 어딘가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