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일 맛있는 건 남이 차려주는 밥, 맛있는 테라피요가
“남이 차려주는 밥 먹고 싶어.”
엄마에게 뭐가 먹고 싶냐 물으면 그녀는 늘 이렇게 대답했다. 여행이 좋은 이유도 밥을 하지 않아도 되서라고 간결하게 대답하는 그녀. 두 남매와 남편을 키우며 엄마의 몸은 단단한 바위처럼 굳었다. 어깨를 주물러줄 때마다 딱딱한 승모근에 손이 저려온다. 끝이 없는 집안일에 본인 가게까지 관리하는 그녀는 늘 통증을 달고 산다. 무릎이 아프고 목 디스크도 있고, 요즘엔 손가락에 관절염까지 생겨버렸다.
세계여행을 마치고 한국에 오면 가장 하고 싶었던 몇 가지가 있었다. 그중 하나는 엄마와 요가하기였다. 엄마가 짊어진 무게를 덜어내주고 싶지만 내가 당장 할 수 있는 거라곤 요가뿐이었다. 요가를 하는 시간만이라도 엄마가 가벼워지길. 요가를 하며 위로를 받았던 셀 수 없이 많은 시간 중 한 조각만 이라도 엄마가 느꼈으면 했다. 작은 매트 위에 앉아 내 몸에만 집중하는 시간은 아마 내가 다시 직장에 돌아가지 않고 통장 잔고를 까먹으며 살고 있어도 불안하지 않은 비결이니까.
여행에서 돌아와 두 달 정도 숨을 고르다 드디어 큰 마음을 먹은 엄마와 함께 요가 수업을 한 달 등록했다. 모든 것은 길게 등록할수록 저렴해진다. 영어학원, 헬스, 요가 모두 마찬가지다. 하지만 그녀는 한 달 해보고 결정하겠다는 현명함을 발휘해 다소 비싸게 등록했다. 그리고 결론부터 말하자면 엄마는 다음 달 재등록을 포기했다. 다녀오면 체력이 더 달린다, 요가는 노동 중 가장 큰 노동이라는 평을 남겼다. 요가를 하며 얻을 수 있는 힐링의 순간을 엄마도 느껴보길 바랬는데 그녀의 평은 사뭇 달랐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서, 모든 운동은 장비 구매에서 시작한다. 다가올 미래를 모른 채 그녀는 일주일에 두 번씩 갈 거니까 요가복도 상하의 두 벌씩 신나게 샀다. 딱 붙은 레깅스에 민망함을 감추지 못하며 처음 수련실에 발을 디딘 엄마는 조금 어색해 보였다. 이내 수련원에 미리 와있는 비슷하거나 많아 보이는 동년배의 동지들의 복장을 보고서는 평온함을 되찾으셨다.
수업 중 가장 쉬워 보이던 치유&테라피 요가 수업을 골라 들었다. 밸런 틱, 프롭, 포인트 바, 요가 휠 등 나도 처음 보는 다양한 소도구를 사용해 후두근부터 림프, 천골부터 발가락까지 풀어낸다. 가만히 몸에 힘을 빼고 도구에 몸을 맡긴 채 온몸 구석구석을 풀어내는 시간이 수업 절반 가량까지 이어진다. 익숙하지 않은 도구에 엄마는 자주 동작을 틀리셨다. 이내 선생님이 꽤 꼼꼼히 봐주셔서 그녀는 올바른 자세로 근육을 이완하며 편해 보였다. 그런데 이렇게 도구로만 풀고 끝났으면 해피엔딩이었을 텐데, 이후 숙련자인 나도 땀을 훔쳐낼 만큼의 진한 빈야사 시퀀스가 기다리고 있었다.
근육은 풀어주기만 하면 안 되고 강화를 동시에 시켜주어야 한다. 근막을 이완하고 나서 아사나를 하면 훨씬 잘 된다. 그런 의미에서 이 수업은 숙련자도 힘들어할 만큼 짜임새 있는 수업이었다. 그러나 ‘구르기’가 화근이었다. 척추를 꼼꼼히 풀어낼 수 있는 구르기 동작에서는 조금 더 깊이 굴러 경추까지 풀어낼 수도 있다. 이때 코어로 잡아주며 앞뒤로 왔다 갔다 한다. 그런데 요가 기초체력이 없던 엄마는 그만 뒤로 구르며 목이 꺾여버렸다. 목이 불편한 채 하는 동작은 좋을 리 없었고, 그 후 며칠은 삔 목에 불편함을 호소했다.
강렬한 첫 번째 수업 이후 그녀는 차츰 레깅스도 당당히 입기 시작했고, 동작도 곧잘 따라 했다. 특히 놀라울 정도로 골반이 유연했다. 비둘기 자세도 초보자답지 않게 잘했고, 밧다 코나 아사나도 잘했다. 이것이 ‘애둘맘’의 골반의 위엄인 것 인가!
보통 다운 독에서 햄스트링이 유연하지 않으면 무릎을 펴거나 발을 매트 위에 붙이기 힘들어하는데, 엄마는 첫 시간부터 두 발을 단단하게 매트 위에 지지했다. 역시 나의 유연한 햄스트링은 유전이었던 것이었다. 하지만 후굴 잼병인 딸처럼 그녀는 부장가 아사나에서 어깨에 잔뜩 기댄 채 힘들어 보이는 자세를 고수했다. 엄마 나도 그랬어...
그녀와 함께 하며 가장 놀라웠던 건 안 되는 동작에서 쉽사리 포기하지 않는 것이었다. 어깨가 안 돌아가면 이내 포기해버리는 다른 회원들과는 달리 꼼지락꼼지락 계속 움직였다. 몸에 힘이 잔뜩 들어갔고 욕심을 버리지 못했다. 예전의 나를 보는 것 같았다. 아사나 욕심을 많이 버린 지금은 안되면 무리하지 않고 바로 포기하지만 이전엔 될 때까지 강행했다. 그러다 어깨도 다치고 골반도 다쳤다. 이렇게 내가 몸을 쓰는 욕심이 많은 것도 다 엄마에게 물려받은 거였구나.
엄마와 요가를 하며 가장 좋았던 건 함께 보내는 시간이었다.
“저 아저씨는 정년퇴직했나 보다. 맨날 어쩜 저렇게 열심히 나오시냐.”
“엄마, 저 흰머리 많은 할머니도 다리를 저만큼이나 찢어시더라. 엄마도 할 수 있어!” 그녀와 나눌 수 있는 시간을 보내는 사실 자체가 좋았다. 금요일 저녁을 조금 일찍 먹고 후다닥 정리를 마치고 같이 요가 스튜디오로 달려가 한 시간 깊게 이완을 하고 오던 시간. 그냥 그걸로 충분했다. 수업이 좋았네, 안 되던 동작이 됐네, 따위는 전혀 중요하지 않았다.
엄마는 본인 때문에 내가 너무 쉬운 수업을 듣는 게 아니냐며 미안해하셨으나 나는 다른 이유로 이 수업이 좋았다. 엄마가 남이 차려준 밥이 제일 맛있다고 치켜세운 것처럼 요가를 가르치는 나도 남의 수업이 제일 좋다. 시퀀스를 고민하지 않아도 되고, 선생님의 다정한 핸즈온을 받는 것도 달콤하다. 선생님의 구령대로 몸을 따라 움직이기만 하면 되는 시간은 남이 차려주는 밥처럼 맛있다.
“엄마, 요가 한 달 해보니까 좋았어?”
“응. 사람들이 왜 요가 좋아하는지 알 것 같더라. 그런데 집안일만 하는 가정주부라면 계속하고 싶은데 가게 일까지 해야 하니까 좀 몸이 힘들어. 그냥 그 돈으로 나는 침을 맞으련다.”
“뭐가 제일 좋았어?”
“나도 운동을 한다는 사실. 그게 제일 좋았어.”
‘나도 이렇게 요가를 할 수 있구나’ 자각하는 순간이 엄마에겐 힐링인 것이다. 내일모레면 환갑인 엄마에겐 새로운 도전을 했다는 자체가 활력이었던 것이다. 비록 엄마와의 요가는 한 달로 막을 내렸지만 엄마가 잠시나마 몸을 움직이며 가벼워진 것 같아 좋다.
다음에는 엄마를 조금 더 이완할 수 있는 인 요가로 인도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