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 봤자 머리밖에 안 찧는데

하타요가 2일차. 소환된 인도의 추억

by 망샘

하타요린이 두 번째 수련 일지.
척추를 12가지 자세로 부드럽게 만들고 열을 내는 수리야 나마스카라로 수련해보기.

첫날 수련하고 상체 뼈 3인방인 경추, 흉추, 요추가 요동치며 뻐근했다.


두 번째 수련을 하러 가기까지 약간의 두려움과 기대가 공존했다.

그래도 가야지, 그래야 늘지.

마음을 수련하려 가는 요가만큼은 자기합리화를 그만두기로 한다. 걱정한 탓인지 두 번째 날은 상대적으로 할만했다. (물론 마유라사나, 살람바사나 등 내가 범접할 수 없는 아사나들의 형연에는 무리하지 않고 멍하니 옆 도반들의 화려한 아사나를 구경했다)



하타요린이




하타요가에서 하는 수리야 나마스카라 다섯 번으로 수업이 시작됐다. 순간 일산이 아닌 인도 리시케시로 순간 이동한 기분이었다. 인도에서 들은 수업은 거의 하타요가였다. 하타요가에서 하는 수리야 나마스카라는 아쉬탕가에서 하는 태양 경배와 조금 다르다. 처음 손바닥을 모아 하늘로 손을 뻗는 게 아니라 아치 백으로 시작해, 차투랑가 단다아사나도 무릎을 대고 턱, 가슴 순으로 내려간 후 코브라 자세로 올라온다. 오른발이 먼저인지, 왼발부터인지 순서가 여전히 헷갈리는 것만 빼면 아쉬탕가의 그것보다 더 마음에 든다.




인도
리시케시





지난 글에서도 썼듯이 잘하는 건 계속하고, 안 해본 건 못하니까 계속 안 해서 더 못해지는 건 몸도 마찬가지다. 발달한 근육만 쓰게 되다 보니 나는 자꾸 삼두, 광배근 등 코어와 등 힘을 써야 할 때 이두를 썼다. 그러다 보니 가뜩이나 콤플렉스인 이두는 점점 더 두꺼워졌다. 특히 차투랑가를 하며 이두의 쓰임은 배가 되는데, 하타요가 수리야에는 이두를 덜 써도 된다는 점이 마음에 쏙 든다.

그렇게 다섯 번 수리야 나마스카라를 하고 나니 열이 훅 났다. 사실 네 번째부턴 포기하고 싶어 질 만큼 힘들어졌다. 혼자 수련했다면 두 번하고 말았을 거다. 이래서 돈을 내고 수련하러 오는 거지.
몸에 열을 냈으니 뒤집어볼까? 오늘도 놀라운 시퀀스, 수업 초반부터 머리 서기가 시작됐다. 머리가 뿌리인 만큼 단단하게 강화하고 수련을 시작한다고 하셨다. 아, 멋있다. 그렇긴 한데 요즘따라 머리 서기가 참 안된다. 다 잘하는 분들 사이에서 앞으로 구르면 안 된다는 강박이 들어서일까, 5분도 끄떡없이 버텼던 과거는 다 어디 가고 끊임없이 흔들거린다. 망부석처럼 거꾸로 솟아있는 도반들 사이에서 몇 번을 다시 다리를 올렸다 내렸다. 그간 수련이 부족했던 게 이렇게 티가 난다. 머리 서기에서 손 위치도 바꾸고 발 모양을 나비 자세로도 만들어보는 사이 등 뒤로 땀이 흘렀다.

다시 내려와 땀을 훔쳐내니 바로 우르드바 다누라 아사나 드롭 백과 컴업의 시간이 돌아왔다. 잃을 게 없으니 패기 있게 선생님의 도움 없이 뒤로 넘어가 보기로 했다. 주춤주춤 겁도 없이 몸을 활처럼 꺾다 보니 뒷 벽이 거꾸로 보이고 매트도 보였다. 만세한 두 손이 쿵, 하고 매트 위에 착지했다! 이 기세를 몰아 컴업도 시도했으나 아직 한 손으로 매트 위를 짚는 정도에 그쳤다. 그러나 지난 시간 처음 시도해본 이후 두 번째만에 혼자 해낸 성취에 뛸 듯 기뻤다.

이 날의 성공으로 분기탱천한 나는 집으로 돌아와 다시 한번 해봤다. 이미 몸이 다 식은 상태에서 마음만 앞선 아사나는 필패. 뇌세포가 몇 백개는 죽었을 것 같은 큰 소리를 내며 머리를 쿵하고 바닥에 찧었다. 지금도 약간 혹처럼 두피가 부어있다.
드롭 백이 무서운 이유는 내 손이 착지해야 할 매트가 보이지 않은 채 동작을 이어나가기 때문이다. 매트 위로 허리가 무너져 내리며 다칠 것 같아 주저한다. 그런데 벌어질 수 있는 최악은 두 팔보다 머리가 먼저 바닥으로 떨어져 쿵, 찧는 것이었다. 생각보다 할만하다. (?)
안 해봤던 걸 해보고, 못하는 것도 조금씩 해보고, 눈에 보이지 않는 두려움도 사실은 별 것 아니라는 것. 오늘도 매트 위에서 가르침을 얻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