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타요린이 1일 차. 우르드바 다누라 아사나
하타요린이 1일 차.
가슴을 여는 건 어려운 거야 #우르드바 다누라 아사나
바이러스의 공포가 잠시 주춤해진 틈을 타 드디어 한국에서 요가를, 그것도 인텐시브 수업을 들으러 갔다. 세계여행을 할 때 SNS로 수업을 진행하는 사진을 보며 한국에 가면 꼭 듣고 싶어 저장한 수업이었다. 선생님은 말할 것도 없고, 수업을 듣는 분들의 사진을 보면 유연하다 못해 마치 문어 같았다. 그뿐 아니라 단단한 힘이 필요한 동작도 척척 해내는 게 ‘강한 문어’ 같았다. 어떻게 같은 사람 몸인데 저 동작들이 가능하단 말인가?
반면에 나는 후굴이 약하다. 앞으로 숙이는 건 잘했고 그래서 많이 해봤지만 뒤로 꺾는 건 거의 해본 적도 없어 못하니까 더 안 하게 됐다. 사실 모든 일이라는 게 그렇다. 할 줄 아는 것만 하고 안 해본 건 못하니까, 못할 것 같아서 계속 미루다 결국 영영 못하게 된다.
하지만 여행을 다녀와 한껏 패기가 높아진 나는 용감하게도 수업을 신청했다. 당연히 나는 그들의 반의 반도 못 따라가겠지만, 수업 후엔 반의 반 정도는 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에 수업을 들으러 갔다.
여행하며 요가를 했어도 대부분은 혼자서 매트 위에 선 시간이었다. 아니 앉아서 요리조리 몸만 풀었다는 게 맞겠다. 한없이 나에게 관대한지라 딱 힘들지 않을 만큼만 했다. 한동안 ‘핀차 마유라사나’(어깨로 물구나무서기)를 연습하다 날이 갈수록 불어나는 체중을 핑계로 말았다. 부장가아사나(코브라 자세)를 15분씩 유지하는 선생님들의 피드를 보며 ‘나도 도전!’을 외쳤지만 30초를 넘어가지 못하고 다시 풀썩 매트 위로 엎드렸다. 난 글렀어...
첫날 수업의 주제는 ‘우르드바 다누라 아사나’에서 가슴 열기. 바닥을 미는 힘과 가슴과 다리를 뻗는 에너지 느껴보기였다. 후굴이 약한 나에겐 아쉬탕가 프라이머리를 하며 겨우 세 번 몸을 거꾸로 뒤집는 게 최대였다. 첫 수업부터 난관이 예상됐다.
수업은 시원하게 전굴과 몸을 비트는 트위스트 동작들로 시작했다. 생각보다 수월한데? 이후 가슴을 열기도 좋고 속이 더부룩할 때 가스 빼기도 좋은 고양이 자세가 시작되었다.
시원하긴 한데 겨우 바닥에 가슴이 닿을락 말락 애를 쓰고 있을 때 손을 가슴 옆으로 가져가라는 리드가 떨어졌다. 그렇게 불현듯 ‘간다베룬다아사나*’가 시작되었다.
이렇게 초반에 갑자기 최고 단계의 아사나를 한다고?
요린이에겐 욕심도 나지 않을 정도로 먼 동작이었다. 당연히 나는 시도도 하지 않고 옆 분들의 화려한 아사나를 구경했다.
* 턱을 바닥에 닿은 상태에서 두 다리를 천장으로 올린다. <올드보이>에서 유지태가 했던 동작
잔뜩 뒤로 꺾였던 목이 풀리기도 전에 부장가사나의 고비가 찾아왔다. 다운독에서 차투랑가, 업독으로 이어지는 익숙한 플로우에 몸을 자연스레 맡기다 골반을 땅에 대고 부장가사나를 시작 했다.
잠깐 하다 다시 아기 자세로 쉬어주겠지 싶었는데 웬걸, 이대로 3분이었다. 처음으로 버텨보는 인고의 시간이었다. 개인 기록으로는 최대가 1분이었는데 처음 겪는 고비였다.
웬일로 선방한다 싶었으나 1분이 지나자 역시나 본격적으로 힘들어졌다.
에라 모르겠다, 내려갈 수는 없으니 팔 힘으로 버텨버리자. 스무 명이 넘게 있는 공간이라 선생님의 사각지대에 있는 줄 알았다
팔에 기대는 순간 그것은 큰 착각이었단 걸 깨닫는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점점 팔 힘으로 버티며 어깨가 안으로 말린 순간 저쪽에 있던 선생님이 다가오셨다. 두둥.
“선생님, 점점 어깨가 말려요. 어깨 피고 귀와 어깨 멀어지세요.”
핸즈온을 해주고 다시 쿨하게 돌아가 다음 동작을 연결하시는 선생님. 역시 요가 선생님들의 선생님은 다르구나. 누구도 속일 수 없이 정직하게 수련해야 한다는 걸 다시 깨달았다.
허리를 잠시 풀자마자 등을 대고 매트 위에 누웠다.
아, 진짜로 올 것이 왔다. 이대로 우르드바 다누라 아사나가 시작됐다. 한 세 번쯤 올라갔다 내려오겠구나 싶어 힘을 분배했다. 그렇게 끝난줄 알았던 세 번의 구령이 끝나자마자 다시 선생님의 구령이 이어졌다.
알고 보니 이대로 열 번을 채우는 거였다! 다섯 번째부터 허벅지가 터질 것 같았다.
저는 글렀어요 선생님..... 일곱 번째부턴 냅다 바닥에 누워버렸다.
더한 반전이 남아있었으니 이미 나의 체력은 방전됐건만 열 번의 구령 다음엔 무려 컴업(활 자세에서 오뚜기처럼 선 자세로 올라오는 자세, 한 번도 자력으로 해본 적 없음)이 기다리고 있었다. 이게 가능해?
불가능해 보이는걸 옆 매트의 선생님들은 척척 해내고 있었다. 그것도 10번씩 드롭 백-컴업으로 오르락내리락하고 있었다. 눈으로 보고도 믿기지 않는 풍경이었다. 멍하니 쳐다보다 여기까지 왔는데 시도나 해보자며 다시 몸을 뒤집었다. 그런데 매트 위에 서긴 했는데 도저히 무서워서 뒤로 넘어갈 수가 없었다.
어물쩡거리고 있을 때 구원의 손길이 다가왔다. 선생님이 잡아주시니까 무서울 것이 없었다. 그렇게 내 인생 처음의 드롭 백-컴업을 해봤다. 물론 선생님이 지나간 후로 도루묵이 됐지만 뛸 듯이 기뻤다. 나는 이제 곧 자력으로 해낼 것 같다는 실감이 들어찼다.
한 번 해보고 안 해본 것의 차이는 물의 99도와 100도와 같다. 물을 끓을 때마다 불 올려놓은 지 꽤 됐는데 이 물은 도대체 왜 이렇게 평온하게 안 끓고 있는 건지 갸우뚱해질 때 갑자기 보글보글 물은 끓어오른다. 얼마 후 걷잡을 수 없이 물은 팔팔 끓는다. 끓는점 100도까지 가기 위해 물은 1도씩 올라가고 있는데 우리는 물 속도 모른 채 재촉한다. 그걸 못 참고 95도쯤에서 불을 끄면 물은 영영 끓지 못한다.
요가도, 인생도 그렇다. 한 번 100도까지 올려보면 95도에도 재촉하지 않고 기다려줄 수 있다. 언젠가 끓을 것을 알기에. 그렇게 50도, 60도, 90도까지 천천히 올릴 수 있다. 그런데 안 해보면 금방 풀썩 나가떨어진다. 역시 용기 내어 수업 듣길 잘했어. 내가 제일 못한 것 같지만 전혀 개의치 않게 됐다.
수업이 끝난 다음 날 역시나 삭신이 쑤셨다. 할머니처럼 앉을 때도 ‘아고고’ 앉고 일어날 때도 ‘어익후’하며 일어났다. 집중적으로 괴롭힌 허리, 등, 목 근육이 아우성을 쳤다. 선생님의 구령대로 모든 아사나를 척척 해내던 선생님들은 아무렇지 않으셨겠지만 후굴 꿈나무인 나는 온몸이 아팠다. 가슴을 여는 게 이렇게 어려운 일이었다니.
앞으로 굽는 건 쉬운 가슴인데 거꾸로 뒤로 펴내는 건 많은 수련과 용기 또한 필요했다. 그러고 보니 처음 아쉬탕가에서 우르드바 다누라 아사나를 접했을 때는 한 번도 겨우 했었다. 한 번 하는데도 전신의 힘을 다 썼는데 도대체 세 번을 어떻게 하는 걸까, 좌절했던 날도 있었다. 조금씩 매트 위에서 수련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어느덧 세 번은 거뜬히 하게 됐다.
사실 물리적으로 가슴을 여는 것보다 타인에게 가슴을 여는 건 더 어렵다. 나를 보여주고 솔직하게 소통하는 것, 나아가 꾹 담아두기만 했던 말을 용기 내어하는 것은 늘 힘들다. 하지만 이렇게 가슴을 열다 보면 하고 싶은 말을 속시원히 하는 사람이 되어 있을 것 같다.
아마 몇 달이 흐른 뒤 이 글을 다시 보면 코웃음을 칠 날이 올 거다. 훗, 요린이 녀석 겨우 일곱 번 하고 뻗었단 말이야? 그때는 한 번 해봤다고 드롭 백-컴업도 혼자 할 수 있는 체력이 붙어 있겠지. 그리고 하고 싶은 말을 현명하게 하는 사람도 되어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