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노숙인과 함께 요가하다
아무데서나, 아무나 할 수 있는 요가
공원은 전 세계 대부분 무료다. 공원 문화가 발달한 미국에서는 ‘공원 요가’가 일상일 정도로 활성화됐다. 뉴욕의 센트럴 파크처럼 유명한 곳이 아니더라도 동네 작은 공원에서 주말마다 요가 수업이 열린다. 비용은 거의 무료 거나 기부 형식으로 받는다. 한국에서는 공원에서 요가할 생각을 잘 못했다. 왠지 한국에서 공원 하면 한강 공원에서 텐트 치고 맥주를 마셔야 할 것 같았다. 뉴욕에 있는 한 달 동안 거의 매 주말마다 공원에서 열리는 요가 수업을 들었다. 숙소 근처에 있던 브루클린 포트그린 공원, 맨해튼 42번가 마천루 사이 브라이언트 공원 그리고 센트럴파크만큼 컸던 프로스펙트 공원에서 원더러스트(Wonderlust, 전 세계 요가 축제)를 참가했다. 한국으로 따지면 판교 테크노밸리 같은 인더스트리 시티에서 중정에서 요가를 하기도 했다. 로마에서는 고대 전차장에서도 요가를 했으니 매트를 깔 수 있는 공간만 있으면 요가를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프로 봇짐러처럼 매트를 메고 다니는 ‘프로매트러’가 된 것 같다. 남프랑스 라벤더로 유명한 발랑솔을 여행할 땐 에메랄드 빛 생크트와 호숫가에 매트를 폈다. 라벤더를 감상하는 것도 좋지만 야외에서 맑은 공기를 마시며 요가를 하는 건 다른 차원의 만족감을 안겨준다.
아프리카 트럭킹 여행을 하며 다른 멤버들이 남아공 오렌지 강에서 카약을 타러 갈 때 나는 작은 선착장에서 매트를 펴고 요가를 했다. 좁은 차와 비행기 안에서 잔뜩 구부린 몸을 열어내고 내가 좋아하는 것을 장소 구애받지 않고 할 수 있다는 성취감은 사막 위에서 버기 카를 타는 것보다 더 크다. 몸과 마음을 모두 잡을 수 있는 요가를 하는 사람이라 참 좋다.
스카이 다이빙과 사막 액티비티의 성지인 나미비아 스바코프문트에서도 그 시간에 요가 스튜디오에 갔다. 통 유리창으로 바다가 보이는 요가 스튜디오와 바로 옆 방에서 고양이와 강아지를 키우며 요가를 가르치는 유럽 출신 선생님의 공간을 볼 수 있어 인상적이었다. 사뭇 낯선 아프리카에서의 요가였지만 두 번의 요가 경험으로 자신감이 생겨 케이프타운에서도 요가를 했다. 트럭킹을 함께한 요가 친구 콜로라도 출신 에밀리와 남편 셋이서 머물던 호스텔 1분 거리에 있던 요가 스튜디오를 찾았다. 영국 선생님이 속사포처럼 빈야사 플로우를 이어가던 모던하고 깔끔한 스튜디오였다.
여행하며 찾는 도시에서 좋아하는 걸 이어간다는 뿌듯함이 좋다. 남들은 하지 않는 나만의 여행을 개척해낸다는 성취감이 있다. 나만의 색을 칠하는 시간만으로 좋다. 요가 동작이 잘되고 안되고는 상관없다. 위험할 것 같은 선입견을 극복하고 아프리카에서도 요가를 하니 더욱 만족스럽다. 나만의 콘텐츠를 풍부하게 만들어내는 요가 로운 시간이 참 좋다.
공원에서 요가를 하면 매트 위로 개미나 벌레가 올라오는 일이 다반사다. 이것만 제외하면 바람, 햇볕 그리고 공기까지 모든 게 좋다. 풀밭 위는 폭신하고 따뜻하다. 손에 흙이 묻기도 하지만 풀과 시선을 맞추고 몸을 접었다 펴는 순간은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마음이 넉넉해진다. 특히 뉴욕의 공원 요가는 마음을 더 열게 해주었다. 매트 없이 그냥 풀밭 위에서 요가를 하는 사람도 꽤 많았다. 손과 발이 더러워지는 것에 전혀 개의치 않았다. 또 하나는 태어난 지 6개월도 안 돼 보이는 아이를 유모차에 눕혀두고 그 옆에서 요가를 하던 날씬한 엄마였다. 크롭티에 레깅스까지 세트로 예쁘게 입고 온 그녀는 수업 중간에 아이가 칭얼대면 동작을 멈추고 아이를 보고 다시 수업을 따라오며 끝까지 해냈다. 아이가 있으면 요가 수업을 듣기 힘들겠다는 편견을 깨 부 쉰 장면이었다. 남편은 그동안 공원을 뛰다 왔는지 숨을 헐떡이며 요가 수업이 끝나고 나타났다.
아기 엄마보다 더한 충격을 안겨준 건 노숙인이었다. 뉴욕 브루클린에서도 외진 곳이나 요즘 뜨고 있다는 인더스트리 시티(industry city) 한가운데 인조 잔디밭에서 열린 선셋 요가 수업에는 딱 봐도 길에서 생활한 지 오래돼 보이는 아저씨가 어디서 구했는지 매트를 깔고 수업 한참 전부터 스트레칭을 하고 있었다. 낡고 더러워 보였지만 리바이스 청바지를 입은 그는 중년 남성의 몸치고 꽤나 유연했다. 한두 번 해본 솜씨가 아닌 것 같았다. 하필 그의 옆자리는 내 당첨이었고 요가 수업이 진행되던 한 시간 반 동안 진한 그의 향기를 맡아야만 했다. 아마 서울이었다면 나는 매트를 들고 자리를 옮겼을 것이다. 여기는 뉴욕이니까, 다양한 환경에 나를 노출시키려 떠나온 여행이기에 꾹 참고 요가에만 집중했다. 돌이켜보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요가의 현장을 목격한 셈이다. 아이를 돌봐야 하니 요가를 못하는 게 아니라 유모차를 옆에 세워두고 하면 됐다. 비록 집 대신 길에서 생활할지라도 요가를 할 수 있는 것이었다.
아무나 아무데서나 할 수 있는 요가를 더욱 진지하게 즐겨보고 싶어 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