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요가하며 세계일주
대학생 새내기 시절부터 늘 적성에 맞는 일을 찾고 싶다는 강박이 있었다. 치열하게 대학 시절을 보냈고 운이 좋게 좋아하는 직무로 사회 생활을 시작했다. 재미있고 뿌듯한 순간도 있었지만 5년동안 같은 일을 했던 탓일까, 어느새 나는 요령을 피우고 있었다. 처음의 열정과 총기는 잃은지 오래였고 달콤한 현실에 서서히 매몰되고 있었다. 안전한 선택만 하려는 마음에 회의감과 권태로움이 자주 찾아왔다. 이대로 지내다가는 후회만 짙게 남을 것 같았다. 돌파구가 필요했다.
퇴사를 하고 다른 일을 찾아보자. 그런데 어디 적성에 잘맞는 새로운 일이 금나와라 뚝딱, 도깨비 방망이를 휘두르듯 나오는가. 인생의 권태기를 극복하기 위해 세계 여행 카드를 꺼냈다. 회사에서 열심히 일하고 받은 월급을 모아 자식들을 다 키우고 갈 수 있을거라 여긴 그 여행을 지금 가야 할 것 같았다. 다른 때가 아닌 지금이야말로 무모한 한 방이 필요했다. 결국 평생 다닐 줄 알았던 회사를 그만 두었다. 소품 하나까지 공들여 샀던 신혼 세간살이와 전셋집을 정리했다. (그때 매매를 했으면 지금쯤 집값이...... 속이 쓰리다) 3.5톤의 이삿짐을 친정집에 두고 18킬로그램 배낭과 요가 매트 하나를 메고 남편과 조금은 긴 여행을 떠났다. 짧게는 1년, 길게는 2년이 넘을 지 모르는 시간 동안은 의무와 책임없이 온전히 내가 하고 싶은 대로 시간을 보내기로 다짐했다.
백수가 되어 여행을 하니 좋아하는 것만으로 채워도 하루가 짧았다. 보통날은 느즈막히 일어나 천천히 아침을 먹고 요가를 했다. 그날의 요가 할당량을 채우고 나면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는 것으로 하루를 보냈다. 유명한 관광지를 찾는 것보다 현지인들과 함께 호흡하고 요가를 하는 편이 훨씬 재밌었다. 그렇게 500일이 흘렀고 어느덧 요가는 뗄 수 없을 만큼 내 일상을 크게 차지했다.
요가를 제대로 시작한 건 3년 전 여름. 거리에서 받은 요가학원 전단지에서 파격 프로모션을 한다는 소식에 충동적으로 1년 회원권을 지르면서부터다. 대학생 때 몇 번 해보고 나와 맞지 않는 운동이라고 치부했는데 자그마치 1년치를 결제해버린 것. 걱정과 달리 요가는 나에게 운동 그 이상이 됐다. 하루종일 회사에서 몸과 마음이 너덜너덜해지면 퇴근 후 요가 생각이 간절했다. 퇴근하고 요가원으로 달려가 한 시간 몸을 풀고 나면 만성적인 근육 뭉침과 뻐근함이 사라지는 건 물론, 마음 속 가득했던 화가 거품처럼 사라졌다. 사바아사나(Shava-asana, 마지막 동작으로 가만히 누워 7~10분간 몸을 식히는 송장 자세)를 하고 집으로 걸어가는 길에는 감정 찌꺼기들이 녹아 없어졌다. (물론 다음 날 다시 거품이 퐁퐁 샘솟았지만) 회사에서 받는 스트레스 강도가 높아질수록 요가에 더욱 빠져들었다. 요가를 하다 알게 됐는데 나는 몸을 잘 쓰는 편이었다. 선생님의 안내대로 곧잘 몸이 따라갔다. 요가는 난이도높은 동작을 하는 게 아닌 동작을 통해 마음 작용을 조절하는 명상이자 운동이지만 그래도 아사나가 잘되면 그보다 더 뿌듯할 수 없었다. 어렴풋이 십년 전부터 그토록 찾아 헤맨 ‘좋아하면서 잘하는 일’을 찾은 것 같았다.
요가를 업으로 삼아도 될지 시험해보기 위해 회사를 다니며 5개월 동안 주말을 할애해 지도자 과정을 밟았다. 요가를 깊이 공부할수록 좋아하는 마음은 커져 갔다. 퇴사를 하고 여행을 떠나오기 전까지 사람들에게 요가를 가르치고 내 수련도 열심히 했다. 그 상태에서 떠나니 요가 매트를 들고 세계 일주를 떠나는 건 자연스러운 수순이었다.
혹시나 요가를 하지 않게 되면 버릴 요량이었지만 결국 태국부터 아르헨티나까지 같은 매트를 끝까지 들고 다녔다. 다시 회사로 돌아가지 않고 프리랜서(반 백수)로 지내는 요즘에도 요가는 나의 버팀목이 돼주고 있다.
인생이라는 롤러코스터에서 요가라는 안전장치에 큰 도움을 받고있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