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리어 끝판왕들의 고민과 프리랜서의 고민
에피소드 1.
지난주 학교 다닐 때 친하게 지냈던 형을 4년 만에 만났다.
내가 세계여행을 떠난 뒤 결혼을 한 형은 컨설팅 회사에서 커리어를 시작해 3년 전 스타트업 전략팀장(CSO)로 이직한 뒤, 최근 다시 사모펀드 운용사 쪽으로 이직을 준비 중이라고 했다.
이직이 어느 정도 마무리되면서 급 제주여행을 떠나왔는데 내 생각이 나서 연락을 했다며.
우리는 4년 만에 만나 그동안 업데이트가 안 되었던 서로의 근황을 얘기했다.
누가 들어도 뛰어난 커리어패스를 밟고 있는 형을 보면 행복에 충만해 있을 줄 알았는데 오히려 형은 최근 몇 개월 동안 이직을 준비하면서 엄청난 스트레스 속에 불행했다고 한다.
형의 아내분 역시 한국은행에 재직하며 서울대학교에서 석사과정을 밟고 있는 엘리트임에도 깊게 고민해보지 않은 미국 박사 유학을 등 떠밀리듯 준비하다 보니 주말이면 토플 공부하느라 스트레스가 높다고 했다.
프리랜서로 지내는 나와는 달리 커리어의 끝판왕을 찍고 있는 형네부부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삶의 만족도는 그 사람의 사회적 지위나 성취와는 비례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걸 체감했다.
형 주변에는 늘 더 뛰어난 커리어를 쌓아나가며 앞서가는 사람들을 많이 보다 보니 상대적으로 비교를 하면서 자신의 삶에 만족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했다.
삶의 만족도는 절대 남들과의 비교를 통해서는 얻을 수 없다는 단순하지만 터득하기 어려운 진리가 다시금 생각났다.
에피소드 2.
어제는 재수학원 다닐 때 가장 친했던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다.
이 친구 역시 내가 세계여행을 다녀온 뒤로는 한 번도 만나지 못했는데 그사이에 결혼도 하고, 3월에는 귀여운 첫째 딸이 생겼다고.
회계사 시험을 열심히 공부했지만 아쉽게 떨어진 친구는 그동안 공부했던 실력을 실려 당당히 산업은행에 취업했었다.
이제는 벌써 입사 9년 차가 되어 김과장이 되었다고.
누구나 부러워하는 금융공기업인 산업은행에서 자신만의 경력을 9년째 쌓고 있는데 정작 조직의 보수적인 성향과, 하는 일에서의 재미가 없어서 요즘 사는 낙이 별로 없다고 했다.
"나도 너처럼 주관이 뚜렷한 삶을 삶고 싶다며. 지금 당장 퇴사할 생각은 없지만, 회사에서는 일에 치이고, 현실에서는 육아에 치이다 보니 고민이 많다"고 했다.
오랜만에 연락이 와 삶의 고민을 얘기해 준 친구들은 아무래도 '자유롭게' 사는 것처럼 보이는 우리 부부의 삶이 자신들의 삶과는 정반대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친구들의 고민을 들으면서 제주에서 프리랜서로 사는 우리의 삶과 서울에서 직장을 다니며 치열하게 사는 그들의 고민이 크게 다르지 않음을 느꼈다.
전혀 다른 삶을 사는 것 같지만 핵심적인 고민은 늘 '성장과 행복, 일과 삶'에 맞춰져 있기 때문이다.
친구들은 자유롭게 사는 나를 보며 새로운 자극을 받고, 나는 친구들이 멋지게 쌓아가는 커리어를 보며 자극을 받는다.
오랜만에 연락하는 친구들이라도 이렇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음에 감사했던 한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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