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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승희 Nov 01. 2023

내일보다 오늘을 잘 살아야 하는 이유, 올리부

[이승희의 질문노트] 내 집 마련, 서울 vs. 경기도?


'이승희의 질문노트'


 일상에서 떠오른 질문들을 적은 질문노트가 있다. 쭉쭉 써 내려갈 때도 있지만 어떤 실마리도 찾지 못할 때도 있다.  시간이 흐르면 답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하면서도, 괜히 조급해질 때면 다른 사람에게 묻고 싶어 진다. 평소에 늘 자신만의 질문을 품고 있는 ‘질문 있는 사람’에게. 그들의 답이 나의 답이 될 수는 없지만, 좋은 방향타가 되어줄 거라 믿기 때문이다. 


그래서 시작합니다. 이 시대의 ‘질문 있는 사람’에게 묻는, 이승희의 질문노트.  




불안한 마음이 들 때마다 찾아가는 사람이 있다. 마케팅 선배이자 스승, 때론 언니 같기도 엄마 같기도 한 ‘응원대장 올리부 상무님’. 결혼하면서 용인에 터를 잡은 여러 가지 이유 중 하나는 올리부 상무님과 이웃이 되고 싶어서였다. 그래서일까, 용인을 떠나 서울에 가고 싶다는 마음이 들 때마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현실적인 문제들을 고민할 때마다 올리부 상무님이 떠올랐다. 흔히들 고민하는 내 집 마련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했는데, 돌아보니 오늘을 충실하게 사는 법에 대한 답을 얻었다. 



"30대, 직장생활 열심히 한 것 같은데 (내 집 마련할) 돈이 없다?!"


숭 : 처음 신혼집을 마련할 때 정말 힘들었어요. 대출을 꽤 많이 받았는데 그래도 집 한 채는 있어야 한다는 말이 맞는 것 같기도 하고, 현실적으로 그렇게 하는 게 맞나 의문이 들기도 하고. 


올리부 : 나는 2003년에 결혼했어. 그때만 해도 우리 부부 둘 다 빚을 져본 적도, 지고 싶지도 않았던 때야. 특히 나는 이십 대가 가장 내 인생에서 바닥을 쳐본 때였거든. 스물세 살에 처음 스타트업에 들어갔고, 새로운 스타트업 창업에도 동참해 봤는데 회사가 망하고, 월급을 못 받아서 카드깡까지 하면서 살았던 시기가 나의 이십 대였어. 그런 시기를 보내고 나니 ‘내가 가진 것’으로 하루를 잘 사는 게 너무너무 중요하더라고. 

요즘은 ‘빚도 재산’이라고 하지만 우리는 절대 그렇게 생각할 수 없었지. 집을 구하려고 보니 부모님들이 주신 돈과 우리가 모은 돈을 탈탈 합치니 1억 5천이 되더라. 사실 우리 돈의 비중은 뭐 그리 크지도 못했지 뭐. ‘우리 부부가 가진 것’은 1억 5천이니까 그걸로 잘 사는 게 가장 중요한 거야. 그래서였나 빚을 내서 3억, 4억짜리 집을 구하겠다는 생각은 들지도 않더라고.  그건 우리 것이 아니니까라고 생각했나 봐. 우리가 가진 것으로 구할 수 있는 전세를 구해서 3년을 살았지.



"공부하기 시작했다, 부동산 공부가 아니라 나의 행복을"

올리부 : 3년을 살고 이사를 하려고 보니까 세상이 많이 바뀌었더라고. 3년 전의 1억 5천과 3년 후의 1억 5천은 너무 다른 거야. 같은 돈으로 이사하려고 하니 훨씬 나쁜 환경으로 가야 하더라고. 사람이라면 누구나 더 좋은 환경에서 살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게 당연하잖아. 나도 그랬어. 근데 그 ‘더 좋은 환경’이란 게 뭘까, 내게 물어봤지. 그 당시 나는 집이 직장과 좀 가까웠으면 좋겠더라고.


숭 : 사실 통근시간이 직장인에게 중요하잖아요. 근무시간에 포함되지도 않고, 오가다 지치기도 하고요. 

올리부 :  난 서울에서 직장 다닐 때도 회사 가는 데만 한 시간은 걸렸어. 당시 어디로 이사하더라도 한 시간은 걸리겠더라고. 기름값이 조금 더 드냐 마냐의 문제였고. 한 시간의 시간, 기름값 정도는 내가 감당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어. 그것보다 더 중요한 건 아이와 함께할 시간이었어. 아이를 가지려던 시기이기도 했고. 교통체증에 덜 시달리고 에너지를 아껴서 아이와 함께하는 시간이 늘었으면 했어. 아주 조금이라도 가까워지면 그것대로 내게 의미가 있고.   

‘회사와 집이 가까워지기 위해’라고 생각하고 ‘대출’을 다시 봤지. ‘대출받아도 되나?’ 하는 의문이 ‘받아도 된다’, ‘받을 수 있다’는 현실이 되고, 그러다 보니 ‘대출에 대한 내 인식’이 바뀌더라고. 



"지금 내가 보기에 ‘좋은 것'에 투자하기로 했다"

숭 : 상무님만의 이유가 분명했던 셈이네요. 저도 지금 집을 고른, 혹은 앞으로 고를 이유가 있는데, ‘그래도 이왕이면 투자 가치가 있는 부동산을 구매하는 게 좋지 않을까’ 자꾸 미련이 남아요. 내 선택의 문제인 건 알지만… 어떻게 해야 단호하게 선택할 수 있을까요?


올리부 : 내가 선택하는 과정에선 부동산 아저씨의 도움이 컸어. 부동산 아저씨가 선생님처럼 하나하나, 논리적이고 현실적으로 가르쳐 주셨거든. 그 가르침 그대로 들려주자면 이런 거야. 집을 산다는 건  내가 가진 돈이 어느 정도이고, 대출은 얼마나 할 수 있고, 이만큼은 내가 갚을 수 있는지 파악하는 거지. 우리 집 수입(월급)에 따라 갚을 수 있는 능력은 달라질 테고, 지금 아이가 없으면 적어도 아이가 태어나서 초등학교 가기 전까지의 시간의 가치도 헤아려볼 수 있지. 그때 내 부동산 선생님은 그 10년을 투자할 만한 가치가 이 집에 있다고 말씀해 주셨고. 그렇게 생각하는 과정을 배우면서 자연스레 전세가 아니라 매매도 생각하게 됐어. 


숭 : 다른 주변 사람들에게 조언을 구하진 않으셨어요?

올리부 : 그때 내게 주어진 선택지가 청담에 있는 어떤 아파트랑 광장동에 있는 아파트였어. 주변 사람들은 무조건 청담에 있는 거 사라고 했지. 다들 하나같이 청담에 있는 아파트의 가치가 훨씬 빠르게 올라갈 거라고 말했고. 틀린 말은 아니었지만, 그때 나에겐 정답보다는 지금이 내게 어떤 의미인지가 더 중요하더라고. 광장동에 있는 아파트에 가보니 창문 너머로 한강이 가득하게 보였어. 내게 더 중요한 건 집값보다 내가 살면서 어떤 기분을 느낄 것인가였어. 당연히 한강 뷰를 선택했지. 



숭 : 후회한 적은 없으세요?

올리부 : 청담의 아파트가 훨씬 빨리 오르긴 했어. 하지만 내가 그걸 선택하지 않았다고 해서 내 삶이 망한 건 아니잖아. 내가 고른 그 집은 매일매일 한강을 보는 즐거움과 행복이 있던 집이었어. 



"우리 가족이 행복한가, 이 집에서?"

숭 : 지금 집으로 이사 오시면서 인스타그램에 소개도 해주시고, 친한 지인들을 초대도 해주셨어요. 그때 집을 고를 때와 지금 집으로 이사 올 때 달라진 점은 무엇이었나요?


올리부 : 그 집은 우리 부부와 아이까지, 세 명이 살기에 딱 좋은 집이었어. 그런데 부모님도 함께 살게 되면서 공간이 부족해졌지. 모두가 각자의 방을 가질 수도 없는 게 현실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우리 엄마 아빠가 어떠한 방해도 없이 당신들의 시간을 누릴 수 없는 상황을 여러 번 마주하니 또 다른 생각이 들었어. 내가 우리 부모님께 완벽하지 않은, 즐겁지 않은 삶을 매일매일 주고 있구나. 그래서 또 옮기기로 마음먹은 거지. 

그때도 서울과 경기도를 두고 고민했지. 숭은 둘 중에 어디 고를 거야?(서울이요.) 맞아, 그게 미래 가치이고, 아파트의 투자 가치를 생각하는 사람에겐 서울을 선택하는 게 당연하지. 하지만 나는  늘 일관적이었어. 내가 같이 살고 있는 우리 가족들이 오늘 행복하면 된다. 경기도 오는 건 아무렇지도 않았어.  




"미래란, 오늘 내가 산 날들이 쌓여서 내일이 되는 거야.

오늘의 행복이 내일의 행복이 되는 것."

올리부 : 이런 과정들을 들으면 숭은 어때? 내가 숭한테 묻고 싶은 것은 이거야. 

집을 고를 때 숭은 미래 투자 가치가 중요한지, 지금의 행복함이 중요한지. 

숭 : 저희 부부는 둘 다 갖고 싶습니다!!!! (웃음) 사실 저희도 상무님처럼 ‘오늘’, ‘지금’이 엄청 중요한 사람이에요. 하지만 미래를 안 살아봐서 그런가 선택하기 어렵더라고요. 


올리부 : 숭이 생각하는 행복의 기준이 뭐야?

숭 : 그게 늘 어려워요. 제 심리 상담 선생님도 저한테 계속 물어보신 건데… 결국 대답을 못했어요. 사람들 보면 3개년 계획, 5개년 계획 짜고 실천하잖아요. 저는 그런 계획하는 것도 너무 어려운 거예요. 우리 부부는 서울에 집을 사고 싶다, 왜 사고 싶냐, 투자 개념이니까, 진짜 우리 노후를 위한 투자. 이렇게 따라가 보면 결국 불안한 것보다 안정적이고 싶다는 결론인데, ‘안정적이고 싶다'가 저희 부부의 행복의 기준이라기엔 부족하고. 그래서 늘 어려워요. 


숭이 생각하는 행복의 기준이 뭐야?

올리부 : 내가 얻는 가치로 생각해 볼 수 있지 않을까. 내일 벌 돈이 중요하냐 아니면 오늘 가질 마음이 중요하냐 그런 것. 서울에서 처음 산 집을 팔고 경기도로 이사 올 때 사람들이 다 이야기했어. 서울 집이 앞으로도 더 많이 뜰 거라고, 똑같은 시간을 두고 보면 내가 다른 데서 사는 것보다 서울에 있던 그 집에서 사는 게 더 빠르게 더 큰 경제적 이득을 얻을 거라고. 근데 ‘집값이 올라갈 텐데’라는 말은 결국 오를 수도 있고, 안 오를 수도 있는 거잖아. 좀 극단적이긴 하지만 그 사람들이 말한 집값이 올라간 그 시점에 내가 살아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드는 거야. 

근데 오늘은 너무 확실하게 보이잖아. 부모님도 불편하게 지내시고, 가족들의 오늘이 무언가 불편한 채의 하루라면, 나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하지? 난 이번 선택이 나를 어떤 사람인지 말해주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생각했어. 난 오늘, 우리 가족들이 가장 완벽한 상태로 사는 것을 선택한 사람이지. 그 선택 덕분에 오늘이 좋고 매일 좋으니까 계속 좋지.


숭 : 저는 지금의 선택이 미래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몰라서 불안한 것 같아요. 결국 어디에 사는지의 문제가 단순히 더 좋은 집에 살고 싶다의 문제가 아니라, 지금의 내 선택이 과연 최선인가? 그 생각을 내려놓지 못하는 거죠. 



올리부 : 그래서 결국, 질문이 돌아왔어. 행복의 가치가 무엇이냐고. 

만약 너희 부부가 한강이 보이는 고급주택 같은 곳에 살고 싶다고 가정해 보자. 우선 지금 그런 경제적인 능력이 되는지 자문자답해보면, 아니잖아. 그걸 위해 너희가 치러야 하는 것은 뭐야? 대출 50억, 100억을 받아야 해. 그게 가능하다 해도 어마어마한 대출금을 갚으며 살아가는 와중에 어떠한 어려움도 겪지 않을 수 있을까? 오늘 무언가 나를 엄청 행복하게 하는 것도 참고 살아야 하지 않을까? 하나 더, 나중에 저 건물은 100억이 될지 모르고, 우리 집은 하나도 안 오른다고 해보자. 그러면 우리가 엄청 불행한 건가?


숭 : 그렇진 않을 것 같아요.


올리부 :  내게 미래란, 오늘 내가 잘 살은 것들이 모여서 내일이 되는 거야. 갑자기 내일 갑자기 무언가 뚝 떨어지고, 갑자기 번쩍 생기는 건 아니라고 생각해. (맞아요.)

네가 오늘을 잘 살아낸 게 너의 과거이기도 하고, 오늘을 잘 살아낸 게 내일이기도 한 거야. 그래서 ‘내일 어떻게 될지 모르잖아요'는 틀린 답에 가까워. 내일이 어떻게 될지 모르는 게 아니라 내일은 이미 내가 오늘 만들어내고 있잖아. 오늘 내가 잘 살아내고 있으면 내일도 잘 살 거야.




내게 미래란, 오늘 내가 잘 살은 것들이 모여서 내일이 되는 거야.


숭 : 맞아요. ‘어떻게 될지 모르는 게 아니고 알고 있다’. 너무 좋은 말이에요. 잘 기억해 두고 불안할 때마다 오늘을 더 잘살아야겠다고 생각해야겠어요. 



숭 : 상무님은 자주 하는 질문이 뭐예요?

올리부 : 내가 자주 하는 질문은 “의미가 있는가?”라는 질문이야. 어떤 일을 대하고도, “이 일은 내게 의미가 있는가? 내 팀원들에게 어떤 의미인가? 이 일의 결과가 누군가에게 어떤 의미이지?”그런 것들. 살면서 “의미"있는 것들이 가득한 것이 나의 오늘을 행복하게 한다고 생각해. 그래서인지 “의미 있는가?” 이 질문은 나에게 나의 모든 순간에 확신을 주는 질문이야. 내게 있어 질문은 정말 물음표 그 자체라기보다는 내게 확신을 주는 느낌표 같은 물음표랄까? (웃음)






올리부 상무님이랑 대화하면서, 한 가지 확실히 안 사실이 있다. '오늘' 하루하루를 잘 살아내면 다가올 '내일'도 분명 잘살고 있을 거라는 거, 나는 나의 미래가 어떻게 될지 분명 스스로 알고 있다는 거.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내가 하는 선택들이 잘못된 건 아닐까, 불안할 때가 있다. 그럴 때마다 상무님과 나눈 오늘의 대화를 잊지 않으려고 노력할 것이다. 나에게 행복의 가치가 무엇인지, 스스로 묻고 오늘의 행복을 절대 내일로 미루지 않기를 바라면서. 


*올리부(서은아) : 서은아 (Olive Seo)
일상기록가, 브랜드탐험가, 다정한관찰자, 따뜻한어른 & 응원대장

디지털 광고 대행사, 야후, 마이크로소프트를 거쳐, 현재 Meta (구, Facebook)의 글로벌 비즈니스마케팅 동북아시아 (한국, 일본) 총괄을 하고 있다. 브랜드들의 탄생과 성장을 뜨겁게 응원하며, 여행과 책, 문구 등 소소한 것에서 담담한 영감을 수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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