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쓰기 위해서는 몇 가지 조건이 필요했다.
첫째, 주변에 사람이 없을 것.
둘째, 글 외에는 다른 어떠한 것도 하고 싶은 것이 없을 것.
지금 이 순간이 그런 순간이었다. 다케미치는 노트북을 열어 글을 타이핑 하기 시작했다. 그는 어떤 내용을 적기위해 글을 쓰는 것이 아니라, 지금의 느낌을 남기고 싶을때 글을 쓰기 시작한다. 지금이 그런한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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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그녀와 헤어지게 된건 어떤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 어떠한 순간 그냥 연락을 할 수 없었고, 그게 배려라 생각했고, 그러다 시간을 흐르고 다시 연락하는 것이 어색한 분위기를 형성했기에 그 느낌이 그냥 계속 머물러 있었을 뿐이다. 헤어짐의 이유를 꼭 하나 들어야 한다면 '어떤 흐름' 이라는 단어를 쓸것 같다.
그런 '어떤 흐름'으로 인해 시간이 3년하고 반이 흘렀다. 여전히 그녀는 나의 연락처에 남아있고, 마음만 먹으면 우연히라도 그녀와 거리에서 만날 정도의 작은 구역에서 생활해 나가고 있다. 그래서인지 언제든 그녀가 갑자기 저 근거리에서 나올것 같은 느낌에 돌아간 적이 한두번이 아니었다. 그런 예감들이 정말 맞았을지는 결과를 보지 않아 모르지만, 그래도 그런 느낌이 올때 나의 행동은 항상 같았다. 그리고 3년 반동안 단 한번도 우연의 만남은 없었다.
그점이 놀라웠다. 그리고 또 하나의 궁금증이 있었다. 나는 이런 이유로 연락을 할 수 없었지만, 그녀는 왜 단 한번도 그기간동안 연락이 없었던 걸까. 우리가 함께 만나던 시기엔 매일 도착하는 문자와 전화로 가끔은 날 귀찮게도 했던 시절이 있었는데, 이해가 가지 않았다.
단조로운 천장에 다시 한번 시선이 고정되었다. 다시 공기가 단조로운 냄새를 만들어 내고 있다.
2023년 11월
춘천 어느 호텔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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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가 고파졌다. 다시 외투를 걸치고 호텔 현관을 나섰다.
계절이 늦가을인 지금 해가 빠르게 저물어 밖은 이미 어두워지고 있었다. 스마트폰을 열어 먹을 거리들을 검색하였다. 그중 하나가 눈에 띄었다. 이름이 막국수라는 음식이었다. 평소 면을 좋아하던 나는 다른 선택지에 대한 고민을 하지 않은 채 서둘러 택시를 잡았다. 기사님께 스마트폰에 나온 주소를 보여주고 그리로 가자고 했다. 기사님은 외국인인 내게 막국수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었다.
옛날에는 맷돌을 이용하여 메밀 껍질을 벗기었는데, 그때 잘 벗겨지지 않은 것들을 모아 제분한 것을 막가루라 불렀다 했다. 그리고 그것을 이용하여 만든 국수를 막국수라 했다는 것이다.
- 한국말 알아드세요?
- 네, 조금
- 거기 나와 있는 막국수집은 별로에요. 전통맛이 아닌 그냥 양념장 맛으로 우리 춘천 사람들은 잘 안가는 곳이랍니다. 관광객들은 잘 모르고 거길 많이 가는 것 같아요. 제가 이곳 춘천에서 가장 맛있는 막국수집을 아는데 그리로 안내해도 될까요. 김할머니가 50년넘게 해온 집인데, 특히 온육수가 정말 고소하고 끝내줍니다. 그리로 가는게 나을 것 같아요.
나의 대답을 듣기전에 기사님은 차를 갑자기 우회전했다. 저멀리 저녁의 어스름과 잘어울리는 강이 보였다.
- 정말 맛있을거에요. 허허허
기사님은 오디오의 볼륨을 조금 더 키웠다. 일본의 엔카와 같은 리듬의 반주가 흘러 나오고 있었고, 기사님의 콧노래가 조금 더 대담해졌다. 생각외로 지금의 분위기와 잘 어울린다 느낌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