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잡다니 Jul 25. 2018

여행의 시작

모든 것을 견디며



여행 출발 전날까지도 짐을 모조리 풀었다가 다시 싸봤지만 여전히 뺄 물건은 많지 않았다. 결국 메인배낭 13키로와 보조배낭 8키로의 무게를 앞뒤로 메고 집을 나섰다. 우리집 강아지 프리미의 몸무게와 배낭 무게의 합이 같아서 프리미를 안고 간다 생각하기로 했다. 어차피 내가 꾸린 이상 내 스스로 온전히 짊어져야 할 무게였다. 많은 세계여행자들 또한 나처럼 다니다는 이야기를 듣고서 겨우 위안 삼았다.


대전에서 인천공항으로 가는 데 걸리는 시간이 한국에서 몽골로 가는 시간과 비슷했다. 오후 비행기였지만 아침 일찍 부지런히 움직여 리무진버스를 탔다. 버스 안에 음식을 못 들고 타게 해서 버스 타기 직전에 산 맥모닝은 급히 몇 입 베어먹고 버려야 했다. 그래도 설레는 마음으로 세 시간 동안 친구와 즐겁게 수다를 떨며 공항에 도착했다.


공항에서 다시 배낭을 어깨에 메보니 그렇게 무겁지도 않은 것만 같았다. 기분 탓이겠지만. 몽골로 가는 비행기 체크인을 하기 위해 길게 줄을 서서 기다리느라 공항에서의 여유도 얼마 없었다. 라운지에서 음식도 급히 먹고 바로 나와야했다. 게다가 비행기를 타기 바로 직전에 정말 원치 않고 우려했던 일까지 벌어지고 말았다. 바로 생리가 터진 것. 몽골에서만큼은 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랐지만 정확히 예상한 날짜에 시작한 것이다.


그래도 비행은 다행히 만족스러웠다. 몽골리안 에어라인은 좌석도, 기내식도, 서비스도 꽤 괜찮았다. 그런데 몽골에 잘 도착해 짐을 찾다가 여행 전에 바꾼 휴대폰 액정 강화유리에 금이 갔다. 몽골 게스트하우스에 도착해 씻으려고 보니 잘 챙겨둔 스포츠타올 수건도 두고온 걸 깨달았다. 처음에는 속상하고 스스로 너무 한심스러웠는데 곧 모든 것을 액땜이라 생각하기로 했다. 앞으로 펼쳐질 여행길은 이보다는 더 수월할 것이라고.


불편해도 어쩌겠나. 이미 집을 떠났고 낯선 곳에 도착했고, 여행은 시작되었는데. 모두 견뎌낼 수밖에. 실패와 실수를 에피소드로 만들어가는 수밖에- 그렇게 자꾸 마음을 고쳐 먹으니 곧 평안이 찾아오고 모든 것이 감사해졌다. 무사히 몽골에 도착한 것도, 급히 먹은 음식들이 체하지 않은 것도, 생리가 터졌지만 아프지 않은 것도, 휴대폰 액정필름이 튼튼한 덕분에 액정이 망가지지 않은 것도, 게스트하우스에서 수건을 얻은 데다가 우연히 알게된 여행자에게 스포츠타올 받게 된 것도- 모두 감사할 일이었다.


그러다보니 내게 벌어진 일들이 그저 액땜이 아니라 사실은 진짜 여행자가 되기 위한 연습라는 생각이 들었다. 앞으로 내 남은 여행이 이보다 더 수월하지 못하더라도, 더 어렵고 힘들더라도 견뎌내 보겠다는 마음의 근육이 조금씩 생겨났다. 내일부터는 또 얼마나 불편하고 감사한 일들이 생겨날지 기대하면서- 몽골의 밤이, 내 세계반주 여행의 첫날 밤이 무사히 지나갔다.




매거진의 이전글 배낭의 무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