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할과 평판에 대하여
사람은 살아가면서 원하든 원하지 않든, 의식하든 그렇지 않든 수많은 역할을 어깨에 지고 살아간다. 태어나면서부터 부여된 자식으로서의 역할에서 시작해 자라면서 학생과 친구로서의 역할이 하나씩 추가되고, 일을 하면서부터는 신입사원, 선배, 관리자 등의 역할이 순차적으로 생겨난다. 결혼을 하게 되면 아내 또는 남편, 며느리 또는 사위, 그리고 자식을 낳을 경우 부모라는 역할까지 추가된다. 이렇듯 한 사람은 인생을 살아가며 나도 모르는 새 실로 많은 역할들을 동시다발적으로 수행하며 살아가야 한다.
이에 따라 어떤 사람에 대한 평가나 호불호는 다양하게 나타나게 된다. 한 사람이 그가 맡은 모든 역할을 두루두루 다 잘 해내기는 쉽지 않은데, 각 역할마다 연결되어 있는 사람들은 제각각이기 때문이다. 물론 기본적으로 한 사람의 타고난 성격이나 기질, 성향, 재능 등이 그 사람에 대한 보편적인 평판을 형성하긴 할 것이다. 천성이 활발하고 쾌활한 사람이 어떤 특정 역할에서만 우울해지기는 힘드니까. 모든 역할을 관통하는 본질은 일관될 수 있겠지만, 그렇더라도 한 사람에 대한 평가는 역할 별로 엮인 관계에 의해 조금씩은 다르게 이뤄질 수밖에 없다.
내가 제법 잘 수행하는 역할에 관계된 타인에게 나는 좋은 사람이 되겠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는 반대가 된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나에게 좋은 친구지만, 다른 사람에게는 무능한 직원이다. 어떤 사람은 세상에 둘도 없는 좋은 아빠지만, 다른 사람에게는 악덕 상사이다. 이는 어떤 사람의 타고난 성격이나 기질이 어떤 역할에서는 강점이 되지만 어떤 역할에서는 약점으로 작용하기 때문은 아닐까? 또 기본적으로 한 사람의 평판을 좌우하는 것은 그의 성격, 기질 등과 더불어 그가 보여주는 능력과 성과에도 달려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물리적 제한 속에 동시다발적으로 수행해야 하는 역할들은 필연적으로 갈등과 충돌을 일으키기 마련이니, 어떤 이는 본인의 가치관과 우선순위에 따라 특정 역할을 적당히 타협하거나 포기하기도 할 것이다. 즉, 높은 성과를 내는 훌륭한 직원이 되기 위해 밤낮없이 일하며 주말도 반납한 워커홀릭은 좋은 엄마/아빠 또는 살가운 딸/아들로서의 역할은 포기하거나 조금 덜 충실해질 수밖에 없다.
수많은 역할을 어깨에 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은 제각각 타고난 기질과 능력 등을 바탕으로 본인이 더 잘하거나 잘해야만 하는, 또는 더 잘 해내고 싶은 역할을 자의든 타의든, 의식적으로든 아니든 선택적으로 수행해 나가며 이에 따른 평판을 생성해 낸다. 따라서 한 사람에 대한 총체적인 평가는 어떤 특정 역할, 그 안의 한정적인 관계에 의해서만 이뤄질 수 없고, 그래서도 안 된다. 우리가 누군가를 어떤 사람이라고 이야기할 때는 다각도로, 다양한 시각과 관점으로, 조심스럽게 접근하여 말해야만 하는 이유다. 나와의 교집합만으로 누군가를 평가하기에 우리는 그 사람의 극히 일부만을 아는 것일지도 모른다.
‘본캐’니 ‘부캐’니 하는 말들로 사회적인 트렌드로서 회자된 ‘멀티 페르소나’라는 개념은 태생적으로 다양한 역할을 부여받을 수밖에 없는 인간의 숙명과 궤를 같이한다. 기술과 미디어의 발전, 개성과 다양성이 존중되는 사회적 변화에 힘입어 숙명적 페르소나 외에 본인이 원하는 페르소나를 의식적으로 선택할 수 있게 되었을 뿐, 우리들 모두는 이미 태어나면서부터 멀티 페르소나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운명인 것이다.
우리가 생애에 걸쳐 갖게 될 모든 페르소나가 성공적일 수는 없다. 앞서 말했듯, 타고난 성격이나 능력에 대한 의존도, 가치나 우선순위에 따른 선택 등에 따라 평가는 달라지게 되고 그에 따라 평판도 조금씩 다른 양상을 띠게 된다. 또 다른 글 ‘균형이라는 동사’에서 이야기한, 각자의 무게중심을 찾아 계속해서 시소의 발 구르기를 하는 행위는 결국 한평생 수많은 역할들을 저글링 하는 모습과 다르지 않다.
그래서 멀티 페르소나의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는 우리들에게 필요한 건, 나 자신과 타인에 대한 존중과 한발 더 나아간 이해이다. 각자에게 부여된 모든 역할들을 한 번에 모두 다 잘할 순 없다는 이해와 포용, 내가 본 타인의 모습이 그 사람의 전부라 속단하지 않는 세심함, 누구나 가진 다양성에 대한 존중이 조금 더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들어주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