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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짱 Apr 13. 2024

이슬아 칼럼집 <날씨와 얼굴> 속 문장들


작년 11월, 2주간 호주 여행을 보내고 집으로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읽은 책. 

새롭게 시작한 독서모임의 첫 책이자, 이름은 익숙하지만 한 번도 읽어보지 않은 작가 이슬아의 책.

내가 줄그은 문장을 중심으로, 왜 줄을 그었는지 소개해 보려고 한다. 




“고기를 먹는다"라는 문장 속에는 오지 먹기 위해 동물을 탄생시키고 고통 속에 살게 하다 죽인 뒤 가공하는 과정 모두가 은폐되어 있다. 

‘다시 차리는 식탁’에서 <<나이트 사커>>의 문장을 인용한 부분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조금 힘들기도 했는데, 비거니즘에 대해서 외면하고 있던 마음을 쿡쿡 찔러댔기 때문이었다. 너무 익숙하게 사용해온 문장으로 다시 끔 고개 돌리게 만든 문장이었다. 





나는 더 이상 죽인 힘으로 살고 싶지 않다. 살린 힘으로 살고 싶다. 

‘어떤 시국선언’ 부분의 가장 마지막에 나오는 문장이다. 주어를 바꿔가며 선언하는 여러 작가들의 문장들은 그 어떠한 문장들보다도 단조롭지만, 읽는 것이 이렇게 어려울 수 있구나 싶을 정도로 힘들었다. 그래서인지 마지막에 스스로에게 다짐하며 말하는 작가의 말이 와닿았던 것 같다. 살린 힘으로 살기로 다짐하는 마음은 얼마나 절실했을까. 





한 마리씩 말고 한 명씩 세면서 글을 쓰고 싶었다. 한 명의 돼지. 한 명의 소. 한 명의 닭.

‘목숨을 세는 방식’의 한 문장인데, ‘마리’라는 단위에 대해 전혀 고민해 본 적이 없어 낯설게 다가왔다. 그저 세는 방식을 바꿨을 뿐인데, 이렇게나 다르게 다가오는구나 하고서. 이 부분의 마지막 문장도 붙이고 싶다. "새로운 언어는 나의 존엄과 당신의 존엄이 함께 담길 그릇이 될 것이다."





모두가 침묵하고 굴종할 때 차별은 당연한 자연 현상이 된다.

‘누구나 반드시 소수자가 된다’ 부분의 문장이다. 이슬아 작가의 문장은 아니고, 홍은전 작가의 <<그냥, 사람>>이라는 문장을 인용한 부분. 인용 이후 ‘침묵하지 않고, 저항하는 몸들을 본다’는 이슬아 작가의 문장처럼, 차별이 당연하지 않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은 무엇이 있을까 하고 고민해 보았다. 당장 떠오르는 것은 없지만.. 이러한 운동을 알고 응원한다는 것 자체가 시작이라고 생각해 봤다. 아직은 조금 안일하다. 다만 이 문장을 읽은 이후부터, 친구들과 사회 문제에 대해 이야기할 때 자주 이야기한다.  '우리도 언젠간 반드시 소수자가 될 거야, 그렇기에 차별에 대해 민감해져야 해. 목소리 낼 수 있어야 해.' 




모르지 않기로 하는 이들이 있고 그들은 움직인다. 

‘우리 사랑을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하지 않으리’에서 쿠팡 물류 작업 노동자 장덕준 씨의 과로사에 대한 이야기에서 장덕준 씨의 음성파일 속 노래 가사를 보고 마음이 아팠다. 

어렵고 힘들었던 시간을 넘어서 아주 많은 처음을 주었잖아 이어 가서는 닿기를

코 안이 맵도록 건조했던 비행기 안에서 이 구절을 읽고 순식간에 온 얼굴이 촉촉해지는 것을 느꼈다. 위에 선택한 문장(모르지 않기로 하는 이들이 있고 그들은 움직인다.)은 ‘최초의 해방’에서 자유의 집을 갖게 된 소들의 이야기에 소개되는 문장이지만, 왜인지 이 문장을 보고서 장덕준 씨가 생각났다. 더이상 장덕준 씨의 일을 모르지 않아야 한다는 것을 느낀다. 

하지만 얼마 전, 회사 동료와의 식사 자리에서 쿠팡 배달노동자의 노조 파업에 대해 조롱하는 듯한 이야기를 들었다. 애써 화내고 싶지도 않았고, 심각한 이야기를 하고 싶지 않아 그저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는데, 내내 마음에 걸린다. 결국 나는 모르는 사람인 쪽을 선택한 것 같아서. 어떻게 행동할 수 있을까, 죄책감보단 내뱉는 것이 나았을까. 정답을 모르겠다. 





우리에게 남은 일은 죽을 때까지 다른 언어를 배우고 헤아리는 것이다. 언어란 모두에게 영원한 슬픔이자 기쁨이므로. 

‘눈 밝은 어느 독자를 생각하며’ 부분에서 나온 문장이다. 우리에게 당연히 ‘보이는’ 이 문장들이 시각 장애인들에겐 당연하지 않다는 사실을 모르지 않지만, 절대 공감할 순 없을 것이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을까, 하는 생각을 들게 만들었고, 이 책은 자꾸만 마음을 끓게 만든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너는 눈이 좋구나, 조심하렴. 더 많이 보는 눈은 비밀을 가지게 된다

에필로그에서 인용한 김행숙 시인의 시 <눈과 눈>의 한 구절이다. ‘글쓰기를 통해 스스로를 지킬 수 있다는 말. 그러다 보면 더 많은 걸 수호할 수도 있게 된다는 말.’을 아이들에게 하고 싶었다는 이슬아의 마음이 잘 느껴지는 구절이라 가져왔다. 글을 쓴다는 것이 얼마나 많은 용기와 고통을 가지고 오는지, 하지만 그로 인해 어떤 황홀함을 느끼게 되는 것인지, 늘 궁금하고 갈망하고 있다. 이 책을 읽고, 기록을 남기며 다시 끔 마음을 끓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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