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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유경 Nov 12. 2022

우리 모두의 컵 (5)

[단편소설] 5화

  요즘은 점심시간에 나누는 대화 주제가 달라졌다. 부장님의 반찬 평으로 시작했던 이야깃거리가 막내가 들어온 다음부터는 완전히 바뀐 것이다. 반찬 얘기만 하던 사람들이 공익적인 화제들로 대화를 나누었다.

  오늘의 주제는 채식과 플라스틱 사용에 관한 이야기였다. 다들 한결같이 일회용 컵 대신 텀블러를 쓰자는 둥 육식을 줄이자는 둥 딱 봐도 진정성 없는 이야기를 했다. 그동안 회식 때마다 소고기를 먹자고 주장해 오던 사람들이었는데. 스타벅스에서 빨대를 주지 않자 불평하던 사람들이었는데. 공익에 대해 열띠게 토론하는 사람들의 모습은 마치 코미디 프로그램의 한 장면처럼 보였다.

  찌지직. 찌지지직.

  그때 갑자기 쥐 소리가 들렸다. 소리를 듣자마자 내 몸이 움찔거렸다.

  - 이게 무슨 소리예요? 너무 기분 나쁜 소리인데요.

  나는 또다시 막내의 말에 멍해졌다. 마치 이 소리를 처음 듣는 것처럼 행동하다니. 그러나 아무도 막내의 말에 당황하지 않은 듯 보였다. 차장님은 오히려 친절한 말투로 설명했다.

  - 아, 몰랐구나. 하긴. 우리가 그동안 얘기해 준 적이 없었네. 우리 사무실에 쥐가 있어. 그런데 아무도 못 잡았지 뭐야.

  괜히 내 얼굴이 화끈거렸다.

  - 윽. 더러워. 누가 쥐 좀 잡아 봐요.

  깜짝 놀랐다. 어떻게 막내의 입에서 저런 말이 나올 수 있는지. 내 상식으로는 이해가 가지 않았다. 더 기가 막힌 건 막내의 말이 끝나자마자 사람들의 시선이 또 나에게 쏠렸다는 사실이다.

  나는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사람들을 한 명 한 명 쳐다보았다. 모두 아주 당연하다는 듯 내게 암묵적으로 얼른 쥐 잡으라는 지시를 내리고 있었다.

  찌지직. 찌지직.

  쥐 소리가 점점 더 커졌다.

  - 그런데 이거 쥐 소리 맞아요?

  과장님이 묻자 부장님이 대답했다.

  - 그러게, 오늘은 좀 다른 것 같은데. 쥐가 아니라 분필이 칠판에 긁히는 기분 나쁜 소린데…….

  그때였다. 출입문 쪽에서 누군가의 낯선 소리가 들려왔다.

  - 손들어! 돈 있는 거 다 내놔!

  갑자기 이게 무슨 소리지. 상황 파악이 되지 않았다. 저 사람은 누군데 들어와서 끝이 날카로운 몽둥이를 바닥에 끌고 있지?

  - 너희가 사회 공헌팀이라며! 사회 공헌을 하려면 나부터 구해!

  악에 받친 소리를 내지르는 사람을 쳐다보았다. 검은색 옷에 검은색 모자, 검은색 선글라스를 낀 남자였다. 남자의 얼굴은 면도를 안 한 지 오래돼 보였다. 덥수룩한 수염이 거칠게 돋아나 있었다.

  사람들이 너무 놀란 나머지 꼼짝하지 못한 채 가만히 앉아 있었다. 겁에 질린 표정으로 얼어붙어 있었다.

  - 당신들 때문에 내 직업이 날아갔어. 길거리에 나앉게 생겼다고!

  누군가 내게 했던 말인데. 누구였더라……. 한참 생각한 끝에 누구인지 떠올렸다.

  혹시…… 서포터즈 택배 사고를 일으켰던 날 밤, 전화로 항의했던 택배 기사?

  가슴이 쿵쾅거렸다. 이 사실을 선배들이 알아챌까 봐 두려웠다. 내 한순간의 실수가 이렇게까지 끔찍한 일을 만들다니. 어디서부터 무엇이 잘못된 것인지 혼란스러웠다.

  모두 손으로 입을 틀어막고 어쩔 줄 몰라 했다. 아무도 남자에게 다가가 제압하지 못했다. 그때 부장님이 소리쳤다.

  - 야, 빨리 경찰에 신고해! 112 눌러!

  그러자 사람들의 시선이 나에게 쏠렸다. 공포에 질린 눈으로 나를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차장님은 내 팔을 잡고 흔들며 얼른 경찰에 신고하라고 속삭였다. 그러자 남자가 우리를 윽박질렀다.

  - 경찰에 신고하면 다 끝인 줄 알아!

  남자는 당장이라도 우리를 해칠 것 같았다. 눈동자에 초점이 없었다.

  - 야, 막내! 지금 뭐 하고 있어? 당장 경찰에 신고하라니까?

  부장님이 나를 보며 소리쳤다.

  순간 나는 울컥했다. 막내를 부르는 소리에 다들 나를 쳐다보다니. 진짜 막내까지 나를 보았다. 아주 당연하다는 듯.

  나는 목구멍까지 치밀어 오르는 말을 삼키고 또 삼켰다.

  ‘제가 막내라고요? 진짜 막내는 제 옆에 있잖아요! 다들 진짜 막내가 안 보이세요?’

  문득 알 수 없는 억울함과 분노가 마음 깊은 곳에서 터져 나왔다. 감기 몸살에 의한 미열 때문일까. 갑자기 눈물이 흐르면서 정신이 혼미해졌다. 기침이 사정없이 터져 나왔다. 잠시 눈앞이 흐릿해졌다.

  잠시 후, 나는 이 상황이 현실감 있게 느껴지지 않았다. 마치 연극 무대처럼 보였다. 그리고 재빨리 내가 이곳에서 빠져나와야겠다는 생각이 본능처럼 스쳐 지나갔다.

  나는 차장님이 잡은 팔을 슬며시 빼내고 말했다.

  - 저……

  - 왜 자꾸 꾸물대! 뭐라고 중얼거리는 거야? 야, 막내! 정신 차려! 우리 다 죽게 생겼잖아 지금!

  부장님이 내 말을 자르고는 울먹이면서 나를 타박했다. 나는 선배들의 눈을 한 명 한 명 마주쳤다. 모두 나를 향해 분노감을 표출하고 있었다. 얼른 쥐를 쫓아내라며 무언의 압박을 보낼 때처럼.

  나는 사람들의 눈을 또다시 한 명 한 명 똑바로 쳐다봤다. 그리고 나지막하게 한 마디 내뱉었다.

  - 저 연차 내고 이만 퇴근하겠습니다.

  내 말에 모두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침입한 남자도 황당해했다. 상황이 자신의 예상과는 다르게 흘러간다는 듯 당혹스러운 얼굴이었다.

  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천천히 내 자리로 걸어가 가방을 챙겼다. 그리고 나를 멍하게 바라보는 남자를 지나 문 앞으로 걸어갔다.

  또각또각. 구두 소리가 조용한 사무실에 울려 퍼졌다.

  문을 열기 전, 나는 뒤돌아 다시 한 번 또렷하게 외쳤다.

  - 저 그동안 연차를 하루도 못 썼거든요. 지금이 바로 써야 할 때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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