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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유경 Nov 12. 2022

우리 모두의 컵 (4)

[단편소설] 4화

  채용 공고를 올린 후 면접을 진행하고, 사람을 뽑는 데까지 2주도 채 걸리지 않았다. 막내는 지난주 수요일에 입사했다. 스물다섯으로 이제 갓 대학을 졸업한 젊은 여자였다. 항상 웃는 얼굴로 밝은 기운을 내뿜어 주변 사람들까지 기분 좋게 만드는 매력이 있었다.

  그 매력 때문인지 윗사람들은 나에게 대하던 것과는 조금 다른 태도를 보였다. 막내를 마주치기만 하면 환하게 웃어 주었고, 묻지 않은 일인데도 일부러 친절하게 알려 주었다. 내가 갓 입사했을 때는 텃새 부리듯 까칠했던 사람들이었는데…….

  그런 막내에게도 치명적인 단점이 있었다. 바로 눈치가 없는 것. 외식할 때 숟가락과 물컵을 챙기기는커녕 가만히 앉아 있지를 않나, 정수기에 버려진 물을 보고도 그냥 지나치지를 않나. 심지어 회의실에 놓인 공용 컵을 설거지하지 않았다. 그러니까 막내는 자신이 막내라는 것을 몰랐다. 다른 선배들처럼 똑같이 굴었다.

  이런 단점은 나에게만 치명적인지 모두 아무렇지 않은 듯 보였다. 막내가 뻔뻔하게 나오자 오히려 선배들까지 진짜 막내를 막내로 대하지 않았다. 여전히 나를 막내로 대했다. 프린터기에 종이가 부족해지면 나를 부르는 차장님, 천장 형광등이 깜박이면 내 옆을 지나가며 헛기침하는 과장님……. 그들을 볼 때마다 나는 억울하고 야속했다. 더 기막힌 건, 막내가 쥐 소리를 듣고서도 아무 소리를 못 들었다는 듯 행동한다는 점이었다.

  물품 창고 앞 테이블에 앉아 회의할 때였다. 막내와 나, 과장님까지 셋이서 하반기 프로젝트 진행 상황을 공유하고 있었다. 과장님이 한창 열띠게 말할 때 물품 창고에서 쥐 소리가 들려왔다.

  찌직, 찍, 찌직.

  그런데 막내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는 듯 가만히 회의 문서만 쳐다봤다. 과장님은 잠시 말을 멈추고 짜증스러운 표정으로 헛기침을 했다. 나는 재빨리 일어나 파리채를 챙겨 물품 창고로 들어갔다. 이런 내 모습을 막내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쳐다보았고, 과장님은 아랑곳하지 않으며 나를 제외한 채 회의를 이어갔다.

  물품 창고에는 쥐를 잡기 위한 나의 수많은 노력이 흔적으로 남아 있었다. 그대로 놓여 있는 쥐약과 쥐덫 끈끈이. 이런 것들이 여기에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어떻게 하면 이 일을 진짜 막내에게 넘길 수 있을까 고민했지만 늘 망설여졌다.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설명해야 할지 난감했다.

  ‘이제부터 네가 쥐를 잡아 줬으면 좋겠어.’

  ‘막내야, 우리 사무실에 쥐 있는 거 알지? 선배들이 엄청 싫어해…….’

  적절한 대사를 수없이 연습했지만 실제로 막내의 얼굴을 보면 차마 입이 떼어지지 않았다.     

  오늘 점심시간에도 언제나 그렇듯 도시락을 먹었다. 놀랍게도 막내는 반찬에 연연하지 않았다. 자신은 다이어트 중이라며 매일 똑같은 반찬을 싸 왔다. 브로콜리와 삶은 양배추, 퀴노아 볶음밥. 이런 막내의 뻔뻔함은 나뿐만 아니라 우리 조직 전체에게 신선한 충격을 안겨 주었다. 오히려 선배들을 사소한 것에 목매는 아둔한 사람들로 만들어 버린 것이다.

  막내는 대신 다른 측면을 공략했다. 상사들의 취향을 재빨리 파악하고 맞춤으로 서비스했다.

  - 정과장님, 최근에 선우정아 앨범 나온 거 들어보셨어요?

  - 아니, 새 앨범 나온대? 나 찐팬인데 그것도 모르고 있었네.

  - 네. 곧 공연도 한대요. 추첨으로 티켓 준다는데 신청해 보세요. 제가 링크 보내 드릴게요. 참, 기차장님 출근 전에 영어 회화 학원 다니신다면서요. 저 요즘 괜찮은 유튜버 발견했는데.

  - 누군데?

  - 캘리요. 틈틈이 영어 회화 공부할 수 있는 방법을 쉽게 설명하더라고요.

  - 와, 고마워. 이런 정보 너무 좋다.

  - 그런데 하선배, 지난번에 보니까 서포터즈 단체 문자 발송을 선배 개인 핸드폰 번호로 하는 것 같던데. 맞죠?

  막내는 의외로 나에게까지 맞춤 서비스를 제공했다. 그런데 나한테는 좀 다른 영역의 정보를 알려 주었다. 내가 잡무 때문에 힘들어하는 걸 알긴 아는지 업무 방법에 대한 이런저런 아이디어를 냈다.

  - 그러지 말고 기업용 문자 발송 사이트를 이용해 보세요. 회사에서 월정액만 내면 누구든 업무용 단체 문자를 웹으로 보낼 수 있어요. 회사에서 그 정도는 해 줄 수 있지 않아요?

  막내는 나와 부장님 얼굴을 번갈아 보면서 제안했다. 기업용 문자 발송 사이트가 있는지도 몰랐던 나는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막내를 쳐다보았다. 막내의 발언으로 내가 했던 실수가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르는 것 같아 언짢았다. 그런데 부장님은 내 실수에 대해서는 관심 없어 보였다. 막내를 향해 엄지를 치켜들며 말했다.

  - 와, 그런 건 어떻게 알았어? 역시 MZ세대는 달라도 한참 다르네.

  - 그리고 택배 발송할 때 종이봉투 말고 뽁뽁이 봉투 제작해서 쓰는 건 어때요? 종이봉투 포장할 때 일일이 박스 테이프로 힘들게 포장해야 하고, 또 배송될 때 물건이 젖을 수도 있잖아요. 요즘에는 다 뽁뽁이 봉투 쓰던데.

  차장님도 막내의 제안에 들뜬 목소리로 대꾸했다.

  - 그래, 좋다. 좋은 방법이야. 일을 훨씬 효율적으로 할 수 있겠네.

  - 제가 아는 업체 있는데, 저렴하게 잘 해줘요. 이따가 알려드릴게요.

  나를 보면서 말하는 막내의 표정. 어딘가 모르게 여유가 느껴졌다. 나는 대꾸하지도 못한 채 민망한 표정으로 그저 도시락을 퍼먹었다.

  막내는 보통이 아니었다. 막내는…… 사회생활을 좀 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자신에게 이득이 되고 손해가 될 일을 재빠르게 파악했고, 빈틈을 파고들어 사람들의 마음을 살 줄 아는 능력이 있던 것이다. 선배들은 그런 막내에게 업무 평가도 훨씬 더 좋게 내렸다.     

  막내의 수습 기간이 지난 시점까지도 나는 여전히 설거지하고, 사무용품을 구입했다. 아무도 내가 하는 업무를 막내에게 넘기라는 지시를 하지 않았다. 감기 몸살이 낫기는커녕 점점 더 심해졌고, 기침이 멈추지 않았다. 토요일 오전에 병원 진료를 받았지만 차도가 보이지 않았다. 의사는 쉬라고 했다. 푹 쉬어야 나을 수 있다고. 연차가 간절했지만 여전히 업무량이 많았다.

  반면 막내는 매일 선배들과 똑같이 정시에 퇴근했다. 나처럼 바쁜 것 같지도 않았다. 막내 자리 옆을 지나칠 때마다 핸드폰을 보고 있거나 웹 서핑을 하곤 했으니까. 잡무를 막내에게 덜면 상황이 훨씬 나아질 텐데. 후유. 한숨이 절로 나왔다.

  나의 이런 고민을 어떤 식으로 꺼내야 할지 도저히 방법을 찾기 어려웠다. 왠지 내가 쪼잔한 사람처럼 보일 것 같았다. 속 시원하게 말하면 그만일 텐데……. 뒤틀린 마음과 분노가 점점 커졌다.

  오늘도 어떻게 말을 꺼낼지 머릿속으로 이리저리 궁리했다. 부장님을 불러 회의실에서 따로 조용히 말할까, 아니면 사내 메신저로 이야기할까……. 시계를 보니 벌써 퇴근 시간이 임박해 있었다. 한숨을 내쉬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회의실에 놓인 컵을 챙겨 화장실로 갔다.

  화장실에 들어가자 막내가 세면대에서 손을 씻고 있었다. 나를 보더니 특유의 명랑하고 해맑은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 참, 웃겨요.

  나는 잘못 들은 줄 알았다. 이 상황에서 웃기다니. 그것도 선배한테. 나는 치밀어 오르는 짜증을 억누르며 최대한 점잖게 물었다.

  - 응? 뭐가?

  - 사람들이요.

  - 사람들…… 이라니?

  혹여나 화장실에 누군가 들어가 있는지 재빠르게 확인했다. 다행히도 화장실 칸은 모두 비어 있었다.

  - 자기가 쓴 컵 하나도 제대로 안 씻으면서* 무슨 사회 공헌을 한대요? 정말 아이러니해요. 안 그래요?

  나는 그 말을 바로 옆에서 듣고도 믿을 수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는 ‘선배님, 주세요. 이제부터 제가 할게요.’라고 말하며 설거지할 컵들을 가져가는 게 맞지 않나. 한 마디 툭 내뱉고 싶었지만 그러면 왠지 내가 꼰대처럼 보일 것 같았다. 나는 퉁명스러운 표정으로 대꾸도 하지 않은 채 설거지에 전념했다.



  - 어머, 여섯 시네요. 저는 이만 퇴근하겠습니다.

  막내는 핸드폰을 보고는 화장실을 나갔다.

  나는 컵을 마저 다 설거지한 후 탕비실로 돌아와 정리했다. 진짜 막내는 그사이 가방을 챙겨 사무실을 나가고 있었다.

  온몸에 힘이 풀렸다. 무력감과 분노감이 치밀어 올랐다. 이 컵들을 모두 바닥으로 내던져 깨뜨리고 싶었다. 소리를 크게 내지르고 바로 뛰쳐나가 버릴까……. 두 손이 덜덜 떨렸다. 감정을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온몸이 뜨겁게 달구어졌다. 잠시 심호흡을 크게 했다.

  뭐가 문제였던 걸까. 내 잘못일까. 사실 아무도 이 모든 것들을 내게 시키지 않았다. 내가 자발적으로 하겠다고 나선 일이었다. 하지만 해도 너무했다. 왜 선배들은 무관심으로 일관하는 걸까……. 나를 약 올리는 막내보다도 선배들이 더욱 원망스러웠다.      


* 농촌 게릴라 걸스 공동체 전격 해부전 전시 「컵 하나도 제대로 안 씻으면서 공동체는 무슨+김치 써는 놈 따로 있고 먹는 놈 따로 있고」 (2018.11.17.∼11.23, 무아 갤러리)에서 차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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