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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유경 Nov 12. 2022

우리 모두의 컵 (3)

[단편소설] 3화

  내가 속한 팀은 대기업 사회 공헌팀이었다. 회사 매출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는 업무가 아닌 탓에 최소 인력으로만 꾸려졌다. 나를 제외한 팀원들은 모두 오 년 이상 다닌 장기근속자들이었다. 과장급 이상의 선배들은 중요하고 티 나는 업무만 하려고 했다. 해 봤자 티는 안 나지만 안 하면 티가 확 나는 일들은 모두 막내에게 넘겼다. 결국 과중한 업무를 견디지 못한 신입사원들은 일이 년을 간신히 채운 뒤 그만두었고, 또다시 새로운 막내가 들어왔다.

  나도 어차피 바뀔 막내 중 한 명이 될 터였다. 지금 상황을 보면 그렇게 될 게 분명했다.     



  어제의 실수를 최대한 드러내지 않으면서 태연하게 오전 업무를 마쳤다. 오늘따라 시간이 더디게 흐르는 듯했다.

  드디어 점심시간이 되자 조심스럽게 도시락통을 들고 모두 모여 있는 테이블로 천천히 걸어갔다. 오늘 반찬을 보고 부장님은 뭐라고 하실까. 평소와 다르게 너무 과하게 싸 온 건 아닐까. 사람들이 어제 실수를 만회하려는 전략이라는 걸 눈치채겠지……. 조마조마한 마음을 뒤로하고 결의에 찬 마음으로 도시락 반찬을 펼쳤다. 순간 선배들의 시선이 나에게 쏠렸다. 여기저기서 탄성이 흘러나왔다. 마침내 부장님의 입에서 내가 그토록 듣고 싶어 하던 말이 나왔다.

  - 이야, 오늘은 우리 막내가 1등이네. 비싼 한우에다 아보카드 샐러드까지! 저 동그란 건 뭔가?

  - 이건 통영 특산품 꿀빵이에요. 맛있다고 소문난 건데, 달지도 않고 맛있더라고요.

  - 그걸 직접 가서 사 왔어?

  - 에이, 설마요. 동생이 출장 다녀오면서 사 온 거예요. 남은 게 있어서 가져와 봤습니다.

  - 허허. 잘 먹을게.

  부장님이 흐뭇해하자 선배들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모두 자신의 도시락통을 멍하니 보면서 천천히 젓가락질하기 시작했다.

  - 참, 막내! 소식 들었어?

  갑자기 뭔가 생각났다는 듯 과장님이 내게 말을 걸었다.

  - 무슨 소식이요?

  - 우리 계약직으로 신입 뽑기로 했거든. 하반기 사업이 무엇보다도 중요해서 말이야.

  과장님 말이 끝나자 차장님이 내 어깨를 토닥이면서 이야기했다.

  - 막내 좋겠네! 이제 벗어날 수 있어서.

  나는 믿을 수 없는 표정을 지었다. 입사 이후 가장 기쁜 소식이었다. 내 밑으로 후배가 생긴다니. 퇴사하는 날까지 막내를 벗어나지 못할 줄 알았는데. 문득 전임자가 인수인계하면서 나에게 했던 당부가 떠올랐다.

  - 지금 생각하면 왜 그렇게까지 했는지 모르겠어요. 다 부질없는 일인데.

  정말 부질없던 걸까. 그래도 아직은 믿고 싶다. 노력하면 바뀔 수 있다는 것을. 노력하면 나도 이 조직에서 끝까지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것을.

  - 계약직이긴 하지만, 막내가 선배 노릇 하면서 잘 챙겨 줘.

  차장님 말을 들으니 사람은 역시 희망을 가져야 한다는 것을 다시금 떠올렸다. 어쩌면 나도 저들처럼 장기근속자로 버틸 수 있지 않을까. 버티는 자가 승리한다는 말은 진리였다. 앞으로 온갖 잡무는 새로 올 막내에게 몰아주어야지. 쥐잡기까지 몽땅. 이제부터 있는지 없는지 모를 그놈의 쥐를 잡지 않아도 된다니, 속으로 탄성을 내질렀다. 게다가 몸살 나거나 아프면 마음 놓고 연차나 반차를 쓸 수 있다. 앞으로 꽃길 걸을 일만 남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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