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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유경 Nov 12. 2022

우리 모두의 컵 (2)

[단편소설] 2화

  쥐 소리가 들린 건 지난주, 도시락을 먹기 시작하면서부터다. 오늘처럼 테이블에서 먹고 있는데 어디선가 부스럭거리는 소리, 찌지직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가만히 듣고 있던 부장님이 외쳤다.

  - 저거 쥐 소리 아니야?

  - 어머, 맞는 것 같아요. 쥐가 어떻게 들어왔지.

  소리의 근원지는 물품 창고였다. 평소 잘 쓰지 않는 비품, 행사 때 쓰고 난 재료들을 모아놓는 곳으로 사람이 잘 드나들지 않는 곳이었다. 우리 사무실은 5층짜리 건물이었고, 물품 창고에는 외부에서 무언가가 들어올 만한 구멍이 없었다. 나는 설마 쥐 소리일까 의문이 들었지만 부장님이 쥐 소리라고 단정 지어 버리자 그다음부터 사무실에 쥐가 나타났다며 다들 유난을 떨었다. 그 소리는 점심시간뿐 아니라 업무 시간에도 간헐적으로 들렸고, 나 또한 쥐 소리라고 점점 믿게 되었다.

  쥐 소리는 예고 없이 들렸다. 소리가 들릴 때마다 사람들이 자리에 앉은 채 헛기침을 하며 불만스러움을 표시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왠지 내가 쥐가 된 것처럼 죄책감에 시달렸다. 재빨리 일어나 물품 창고로 들어가 쥐를 찾았지만 매번 허탕을 쳤다. 수상쩍게도 내가 문을 열고 들어가면 소리가 뚝 멈췄다. 쥐의 꼬리도,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성과 없이 창고 밖으로 나올 때마다 쥐가 찌지직거리는 소리가 이명처럼 들렸다.    

 


  - 우아, 이게 뭐예요? 월남쌈이잖아요. 라이스페이퍼까지 준비해 오셨네요!

  과장님이 정수기에서 뜨거운 물을 떠 오자 대리님이 감탄했다.

  - 그게 뭐야? 한번 맛봐도 되겠나?

  부장님이 큰 관심을 보였고, 과장님은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라이스페이퍼를 물에 담그고는 빼내서 각종 채소와 고기를 쌌다. 과장님이 내민 월남쌈을 한입에 넣고 오물오물 씹는 부장님. 마치 엄마에게서 음식을 받아먹는 어린아이처럼 보였다. 그 모습은 마치 드라마의 한 장면처럼 느껴졌는데, 나는 절대로 저런 장면을 만들지 못하리라는 생각이 본능처럼 들어 마음 한구석이 싸늘해졌다.

  사람들의 도시락 반찬은 점점 더 화려해졌다. 처음에는 3분 카레, 김, 볶음밥 등 간편한 반찬을 주로 챙겨오던 사람들은 날이 갈수록 고급스러운 반찬을 뽐냈다. 잡채와 부침개, 고기반찬은 기본이었고, 블루베리와 체리, 무화과 디저트까지 경쟁하듯 챙겨왔다. 이것도 모두 부장님 때문이었다. 부장님은 직원들의 반찬을 모두 맛보았다. 김 한 조각도 놓치지 않고. 다 먹고 나면 누구의 반찬이 가장 맛있는지 순위를 매겼다. 칭찬받은 직원은 업무에서도 은근히 좋은 평가를 받았다. 막내인 나는 번번이 상위 순위에서 밀려났다. 요리는 나와는 거리가 먼 행위였고, 그렇다고 부모님한테 도시락까지 싸 달라고 할 수 없었다. 나는 매일 아침 울면서 도시락을 쌌다.

  그러던 내가 오늘은 기필코 1등 하겠다는 일념으로 도시락을 싸 왔다. 어제 저지른 실수로 크게 혼났는데, 만회할 길은 도시락뿐이었다.     


  - 막내, 어제 혹시 택배 보낸 거 있어? 뭔가 잘못된 거 같은데?

  업무 실수는 치명적이었다. 100명 넘는 서포터즈들에게 기념품을 발송하는 일이었는데 택배 시스템으로 송장을 출력하려다 실수로 반품 접수를 해 놓은 것이었다. 아침부터 서포터즈들의 문의 전화가 쇄도했다. 아직 기념품을 받은 것도 없는데 뭘 반품하라는 얘기냐며 큰 소리로 항의했다. 택배 기사들까지 전화해서 불편함을 토로했다.

  전화는 주로 내 자리 유선 번호로 왔지만, 통화 중일 때에는 옆자리 과장님, 차장님이 당겨 받아야 했다. 선배들은 자신의 업무를 하지도 못한 채 항의 전화를 받는 데 시간을 다 써 버렸다.

  눈앞이 캄캄했다. 우선 급한 대로 차장님 지시에 따라 사과 내용의 문자를 일괄 발송했다. 그다음에는 택배 송장 시스템으로 들어가 일일이 택배 기사의 연락처를 알아내 반품 접수를 취소한다고 문자와 전화를 돌렸다.

  잠시 숨을 돌리고 화장실에 갔다. 뚜껑 닫은 변기에 앉아 왜 이런 일이 발생했을까 곰곰이 생각해 봤다. 단 하루도 쉬지 못하고 무리해서 생긴 일 같았다. 연속 2주 동안 10시까지 야근하면서 준비한 프로젝트였다. 처음부터 끝까지 혼자서 진행해야 했다. 감기에 걸렸지만  점심 시간 병원에도 못 가고 약국 약을 먹으며 버텼다. 도시락을 함께 먹지 않으면 업무 평가를 낮게 받을 것 같았다. 월차를 쓰거나 내년 연차를 당겨써서 제발 하루만이라도 쉬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내가 빠지면 대신 일해 줄 사람이 없었으니까.

  게다가 각종 잡무로 인해 집중하지 못한 탓이 컸다. 특히 쥐 잡는 데 너무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소모했다. 업무 도중 쥐 소리가 날 때마다 창고로 들어가 흔적 없는 쥐를 찾기 바빴고, 인터넷으로 쥐약과 쥐덫 끈끈이를 구입해 설치해 놓았다. 소독 업체에 견적도 받아 봤지만 비용이 많이 들어 포기했다. 그러나 이 모든 건 결국 핑계였다. 내가 좀 더 꼼꼼하게 일 처리를 했다면 벌어지지 않을 일이었다.

  전화 항의 전화가 잦아들고, 사건을 얼추 수습하자 퇴근 시간이 임박해 있었다. 나는 남은 업무를 처리하느라 밤늦게까지 남아야 했다. 모두 다 퇴근하고, 나 혼자 남아 일하고 있는데, 내 자리로 한 통의 전화가 왔다.

  - 안녕하세요, 사회 공헌팀입니다.

  - 당신 때문에 내 직업이 날아갔어.

  - 네? 누구세요?

  - 당신이 반품 처리를 잘못해서 내 밥그릇이 날아갔다고!

  - 아, 죄송합니다. 서포터즈 분이신가 봐요. 제가 실수하는 바람에 너무 큰 피해를 끼쳤죠. 너무 죄송합니다.

  - 택배 기사가 얼마나 바쁜지 알아? 당신이 한 그 짓 때문에 나는…….

  - 혹시 무슨 일이 있으셨어요? 너무 죄송합니…….

  - 사회 공헌팀이라고 했나? 기가 막히는구만.

  상대방은 자기 할 말만 하고 끊어 버렸다. 택배 기사인 것 같았다. 나는 죄책감에 어쩔 줄 몰랐다. 도대체 무슨 일일까. 생각하던 중 문득 다음 날 점심 도시락이 걱정됐다.

  ‘내일 뭘 싸 오지? 부장님이 뭘 좋아하셨더라…….’

  잠시 짬을 내어 회사 근처 유명한 한우 가게로 가서 고기를 구입해 왔다. 10시에 퇴근하고 집에 가는 길에는 유명한 베이커리 가게에 들러 최근 유행하는 아보카도 샐러드를 샀다. 11시 집에 도착하자마자 한우를 정성껏 구웠다. 또 집에 있던 통영에서만 판매하는 맛있다고 소문난 꿀빵까지 챙겼다.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었지만 이렇게까지 해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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