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라유경 Nov 12. 2022

불확실한 매듭 (5)

[2020 아르코문학창작기금 선정작-단편소설] 5화

 남자의 얼굴이 왠지 낯이 익다. 어딘가에서 본 적이 있는 사람 같다. 출근길에 늘 보던 사람일까. 아니면 네가 배우였을 때, 매번 첫 번째 줄에 앉아 공연을 관람했던 팬 중의 한 명일까……. 가늘게 찢어진 눈, 도톰한 입술, 짧은 인중. 너는 남자 얼굴을 빤히 쳐다보다가 크게 고함친다.

  “이봐요, 이제 멈추면 어떡합니까! 당신이 무슨 짓을 한 건지 알기나 해요?”

  “네?”

  “내 신발, 내 이어폰, 내 시간…… 어떻게 보상할 거예요?”

  “누구세요?”

  “바로 이 망할 놈의 줄이 당신 가방에 꼬여서 내가 어쩔 수 없이 끌려왔다고!”

  “무슨 얘기를 하는 건지 통 모르겠네요.”

  “그나저나 당신은 어쩜 한 번도 뒤를 안 돌아볼 수 있습니까?”

  “지금 무슨 얘길 하는 거예요?”

  시끄럽게 대화를 나누자 사무실 안의 사람들이 모두 너와 남자를 쳐다본다. 남자는 뒤를 힐끔 쳐다보더니 낮은 목소리로 말한다.

  “밖에 나가서 얘기하죠.”

  “당신 가방부터 이리 내요. 내 이어폰을 찾아야 해요.”

  너는 이어폰을 버리고 갈 수 없다. 이어폰이 누군가에게 걸릴 때, 그 찰나에 떠오르는 장면을 계속 보고 싶다. 옛 기억을 다시 떠올리고 싶다.

  “여기 꼬인 이어폰 줄 풀고 돌려줄게요.”

  너는 남자의 가방을 들고 밖으로 나간다. 뒤따라온 남자가 한숨을 푹 내쉬고는 소리친다.

  “곧 회의에 들어가 봐야 해요. 당신이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우선 이 건물 밖으로 나가서 풀든지 말든지 알아서 해요!”

  너를 위아래로 쭉 훑어보던 남자는 급하게 사무실 안으로 들어간다. 너는 남자의 백팩을 들고 회전문을 지나 회사 건물 밖으로 나온다.

  그제야 너는 한쪽 발바닥의 통증을 느낀다. 발이 퉁퉁 부어 있다. 조심스럽게 걸어 건물 옆 화단 의자에 앉는다. 회전문 바로 옆에 있는 곳이다. 이 건물에서 일하는 직원들이 하나둘 헐레벌떡 뛰어온다. 도대체 여긴 어디일까. 너는 어쩌다 이런 낯선 곳에 와서 노트북, 신발 한 짝까지 잃어버리고 이런 꼴로 앉아 있는 걸까.

  “현실은 진실의 적이다!”

  너는 크게 외친다. 정신없이 회전문 안으로 뛰어 들어가던 사람들이 일제히 너를 쳐다본다.

  ‘목소리가 이렇게 컸는데, 아까 지하철역 안에서는 왜 사람들 모두 못 들었던 걸까?’

  너는 이곳이 꼭 예전에 자주 오르던 무대처럼 느껴진다. 잠시 후 너는 백팩에 꼬인 이어폰 줄을 천천히 풀기 시작한다. 경비원이 회전문 앞에서 너를 한참 동안 쳐다보더니, 곧 건물 안으로 들어간다. 백팩에 꼬인 이어폰 줄은 잘 풀리지 않는다. 매듭이 어디서부터 시작됐는지 찾기 어렵다. 꼬이고 꼬인 줄은 점점 풀리는 것 같다가도, 다시 보면 더 복잡하게 엉켜 있다. 이 줄을 푸는 데 꽤 오랜 시간이 걸릴 것 같다.

  어느새 이 건물 직원들 대부분이 출근을 마친 것 같다. 주변이 매우 조용하다. 그때, 나직이 음악 소리가 들려온다. 익숙한 음악이다. 이동 시간마다 늘 귓속에 이어폰을 꽂고 듣던 음악. 이어폰의 작은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소리였다. 지하철 안에서부터 듣기 시작한 음악이 지금까지 계속 재생되고 있었나 보다.

  너는 이제야 이어폰 줄과 연결된 스마트폰을 왼쪽 뒷주머니에서 꺼내는 데 성공한다. 시계를 보니 오전 9시 30분이 훌쩍 지나 있다. 너는 고개를 살짝 숙이고 이어폰 한쪽을 귓속에 넣는다.

  마침 음악이, 남자의 백팩에 이어폰 줄이 걸려 지하철 문밖으로 튕겨 나가던 때 흐르던 부분부터 나오는 중이다. 너는 가만히 앉아 흘러나오는 음악을 듣는다. 아침 햇볕이 따갑다.     



이전 09화 불확실한 매듭 (4)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