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만타슈웨블린/ 창비 / 가제본서평 글
소설의 원제를 찾아 바로 스페인어 번역을 돌려본다.
Distancia de rescate, 소설 속에 계속 언급되는 <구조 거리>라는 의미다.
- 구조 거리에 대해 좀 더 얘기해 주세요.
- 그건 상황에 따라 달라져. 예를 들어, 우리가 이 집에 온 뒤 처음 몇 시간 동안에는 니나가 항상 내 가까이에 있길 바랐어.......... <중간 생략>........... 두 번째 날에는 우리를 연결해주는 보이지 않는 실이 또다시 늘어났어. 그 실은 존재하지만 느슨해서 우리에게 때때로 약간의 독립성을 허용해줘. 그런데 구조 거리가 정말 중요하니?
< 피버 드림 / 사만타 슈웨블린 / 창비 / 41 (가제본 페이지) >
'사만타 슈웨블린'이라는 장르의 탄생이라고 한다. 소설은 두 사람, 한 남자아이(다비드)와 한 여자아이의 엄마(아만다) 대화로만 구성되어 있다. 연극의 시나리오를 보면 지문도 있고, 상황설명도 중간중간 있던데, 이 책에는 대화체만 있다. 각자의 대화를 (-) 줄표로 구분하여 읽힌다.
이렇게 단순한 구성으로만 독자에게 지독한 궁금증을 제공하는 스토리를 만들었을까?
내용 전개에 대한 궁금함의 조바심을 가지면서도, 너무나도 디테일한 상황설명 문장들은 눈으로만 글자를 훑으며 지나치게 하지 않는다. 수많은 대화들을 읽고, 다시 읽는다. 마치 중요한 단서를 얻어서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탐정가가 된 듯하다. 급하다고, 궁금하다고 그냥 스쳐가 버리면, 해결을 할 수 없을 것 같은 불안감을 던져 준다. 소설 속에서 일어난 문제의 해결을 위한 원인을 찾기 위해서는, 아주 작은 사소한 행동과 풍경도 지나쳐서는 안 되는 긴장감을 계속 던져준다.
소설은 병원 침대에 누워 죽어가는 한 여자아이의 엄마 아만다와 한 남자아이 다비드의 대화로 시작되고, 둘만의 대화로 마무리된다. 왜 이렇게 됐는지를 알기 위해서 다비드는 질문을 계속 던지고, 아만다는 계속 설명한다. 아만다는 다비드에게 일어났던 일들을 계속 하나하나 기억해가며 상세하게 말한다.
- 정확한 순간은 바로 세세한 점에 있어요. 그러니 자세히 살펴봐야 해요
< 피버 드림 / 사만타 슈웨블린 / 창비 / 8 (가제본 페이지) >
아만다는 도시에 살다가 휴가를 위하여 딸과 시골로 왔다. 이웃에 사는 카를라를 만나고, 그녀의 아들 다비드가 이상한 병에 걸렸다는 것을 듣는다. 믿을 수 없는 다비드의 치료방법, 엄마가 아들을 '괴물'이라 부르는 이해 할 수 없는 카를라의 행동들을 보면서, 아만다는 이 곳에 대한 두려움을 가진다. 아만다와 그녀의 딸, 니나를 연결시켜주는, 안전을 지켜주는 구조 거리를 유지하기 위해서, 그녀는 떠나기로 결심한다.
작가는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 태생이다. 그녀는 아르헨티나의 무분별한 농약 살포와 그로 인한 환경오염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싶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도 알려졌던 <아르헨티나 점박이 소녀>의 이야기를 찾아본 기억이 난다. 아만다가 휴가를 위해서 찾아간 시골 풍경을 설명하는 대화 속에서는 소와 말의 목장이 나오고, 물이 흐르고, 사람들은 그 물을 자유롭게 만지고 마실 수도 있다. 아르헨티나는 소가 사람보다 많은 목축업 국가이고, 세계적인 농업국가 이기도 하다. 농작물 생산량의 급증을 위하여 많은 양의 농약을 살포해야만 했고, 그러면서 점점 더 잡초들은 저항력이 생겼고, 그럴수록 더 많은 농약을 뿌려야만 했다. 이러한 결과는 인간들의 건강 악화를 가져오고, 시간이 지날수록 인간이 죽음으로 이르게 하였다.
- 그리고 지금은 실, 구조 거리의 실.
- 네.
..... <생략>.....
- 그게 목을 조르고 있어. 다비드.
- 끊어질 거예요
- 아니, 그래선 안돼. 실은 끊어지면 안 돼. 나는 니나의 엄마고 니나는 내 딸이니깐.
< 피버 드림 / 사만타 슈웨블린 / 창비 / 153 (가제본 페이지) >
아만다는 죽어가고 있는 그 순간에도 딸과의 연결된 실을 끝까지 끊지 않는다. 그녀는 죽어가면서도 구조 거리를 느낄 수 있는 팽팽함은 없어졌지만, 그 실은 여전히 존재한다고 말한다.
인간의 욕심에서 온 환경오염이 가져다준 자녀의 상실에 대한 모성의 아픔과 중독으로 인한 인간고 통에 대한 아픔을 처절하게 설명해주는 문장들! 그저 결말이 궁금한 그런 내용의 책과는 읽는 자세가 달라진다. 책을 쥐고 있는 동안 손가락 마디가 저리고, 목구멍이 답답한 것 같다. 책을 보던 두 눈이 충혈된 것처럼 뻑뻑함이 느껴진다. <코로나 19>로 당연하게 행동하던 많은 것들을 하지 못하는 요즘, 이 답답함과 뻑뻑함 그리고 저릿저릿함이 더 심하게 다가오는 것이 분명하다. 소설에서는 <벌레>라고 언급한다. 직접적으로 오염을 이야기하지 않지만, 소설책을 덮고 나면 스멀스멀 여기저기 <벌레>가 돌아다니는 듯한 상상을 만들게 한다.
아만다와 니나가 연결되어 있던 안전범위의 <구조 거리>처럼, 인간이 자연환경과 안전하게 살아갈 수 있는 <구조 거리>는 어느 정도의 팽팽한 실로 연결되어야 하는 것일까? 깊은 질문을 던져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