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솔뫼 작가님의 소설집을 읽다.
나에게 이 책에 대한 한 문장 리뷰를 묻는다면...
소설책을 열고 문장이 시작되면,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읽어야 한다.
중간에 문장을 놓치면 처음부터 다시 읽고 또 놓치면 또다시 읽어야 한다.
도돌이표다. 그래서 이 책은 한 번 잡으면 놓지 못하게 하고, 계속 읽게 하는 매력이 있는 책이다.
음식은 오래 씹을수록 맛있다는 말은 들어보았는데, 책을 오래 여러 번 읽을수록 맛있다는 느낌은 처음인 것 같다. 그리 두껍지 않은 책 한 권의 세상이 이렇게 깊을 수 있다는 것에 몇 번을 되씹어 읽고, 몇 번을 다시 만나도 그 시간이 아깝지 않다. 총 8개의 차례로 만들어진 책 세상은 아주 낯설게 다가온다. 단편 단편 한 차례씩 읽고 나면 처음은 익숙한 내용들이 기억에 남고, 어딘가 신선하지만 익숙하지 않은 문장 속에서 헤매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이 책은 대학교 전공서적이 아니고 소설집인데.....
친구들은 죽으러 그곳에 간 것이 아니다. 친구들은 그곳에 간 친구들은 늘 조금씩 바뀌지만 누군가는 빠지고 새로운 사람이 들어오기도 하지만 죽으려는 것이 아니라 기대 없는 표정으로 그곳에 가 사진작가가 하는 말을 흥미롭게 듣다가 하지만 흘려듣다가 슈퍼에서 사온 빵과 우유를 먹고 바람이 부는 쪽을 하염없이 바라보는 일을 할 것이다. 그러려고는 아니지만 그럴 것이다. 부산에 있는 나는 그게 나라고 확실히 알지만 얼굴은 나의 얼굴이 아니고 얼굴이 잘 보이지 않는 거리이거나 뒷모습을 보여주었다. [ '우리의 사람들' 중 21페이지/ 창비 ]
『우리의 사람들』중 문장이다.
그래서 어떻게 됐다는 걸까? 그래서 여우를 봤다는 걸까? 여우가 있었다는 걸까? 내용에 대한 궁금증으로 빨리빨리 눈으로 읽어나가던 나는 길을 잃는다. 쉼표가 있을 곳에 쉼표가 없어서, 두 개의 문장이 접속어 없이 섞여 있어서, 나는 심호흡을 길게 하고 천천히 천천히 다시 읽어야 한다.
궁금함의 머리와 눈알만 돌리기를 멀리 하고, 하나하나 지도 위에 좁다란 길들을 풀어 앞으로 나아가듯이 조바심 버리고 다시 읽어나간다. 지금까지 내가 책을 읽던 방법이 아닌 작가가 의도한 이 신선한 문장의 법칙에 맞추어 새롭게 책을 만나는 방법을 익혀나간다.
궁금증도 해결되지만, 무엇인가 이 곳에는 감흥을 돋우는 맛이 있다.
그래서 "이 책 어렵다"라는 말이 나오지 않는다. "신선하고 맛있다"라는 느낌과 함께 계속해서 더 더 신선한 그러나 익숙하지 않은 문장을 읽고, 풀어 나가게 하는 욕심을 가져온다.
수면과 동면의 차이도 이야기해주었는데 수면은 뇌가 정리되는 과정이고 동면은 아무것도 없는 ----------의 상태라고 했다. 그래서 수면상태에서는 어그러졌던 기억이나 정신이 퍼즐처럼 맞춰지고 정리된다고 했다. 반대로 동면은 멍한 상태. 그래서 실제 동물들도 동면 중이라도 깨어났다가 다시 수면을 취해야 하는 것이다. 수면에서 깨어나서는 다시 동면을 취하는 곰을 생각했다. 나는 겨울이 힘들기 때문인지 그 이야기가 정말 좋았다. 그런 가정은 낭만적이기도 했고 내가 겨울에 힘든 것은 내 탓이 아니라고 남 탓을 할 수도 있었다. ['건널목의 말' 중 47 페이지 / 창비]
책 속에서 만난 여러 가지 내용 중에서 베스트를 선택해보라고 하면, 나는 [건널목의 말]에서 나온 동면 이야기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말하고 싶다.
나는 여름에 태어났다. 그래서 늘 겨울을 너무너무 싫어한다고 말하곤 했다. 그러다가 동면 문장을 읽으면서, 추운 겨울에 아무것도 할 수 없을 정도로 힘들었던 나를 대변해 주는 완벽한 논리적인 원인을 만난 이 통쾌감은 읽는 내내 '맞아 맞아'를 100번도 더 넘도록 고개를 끄덕이며 긍정을 표하게 한다.
“아주 잠깐 이초쯤 회사에 너무 가기 싫어서 눈물이 날 것 - 44p" 같다는 화자는 ‘동면하기’를 상상했다.
왜 나는 20년 넘게 그 힘든 사회생활을 하면서 한 번도 [동면하기]를 생각하지 못했을까? 버틸만했다는 것인가? 동면을 할 수만 있다면 추운 시간도 넘길 수 있고 후회할 말과 생활도 멈출 수 있다고 말한다. 그 과거에 '동면하기'를 내가 생각할 수 있었다면, 추운 시간도 잘 넘기고, 지금 와서 후회할 말과 충전이 안될 만큼 방전되는 직장 생활도 미리 멈출 수 있었을까?
그런 생각을 하고 있으면 누군가는 늦여름 부산 호텔 침대에 앉아 텔레비전을 보고 있는 나를 보고 그 사람은 자신의 삶을 살며 잠을 자고 가끔 여름을 생각하고 그러다 가끔 나를 보게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다 말았다. 그렇게 또 잠이 드는 것이다. ['건널목의 말' 중 64 페이지 / 창비]
단편 중 과감한 상상 <이미 죽은 열두명의 여자들과> 이야기를 나는 나름 이해한다고 생각하며 읽는다.
산 사람과 죽은 사람의 세상은 모든 것이 똑같은 세상이며, 단지 다른 점은 산 사람 세상에 그 죽은 사람이 없다는 것뿐이라고 상상하는 나로서는 충분히 이해가 간다. 단 나는 죽은 사람의 세상에서는 살았을 때의 기억이 없다고 지정하고 있다. 그런데 생각에 변화가 왔다. 죽은 사람들의 세상 법칙을 어길 만큼 너무 원통하고 억울하게 누군가 죽었다면, 그 억울함을 만든 대상을 누군가가 기억할 수 있다는 것은 너무나도 올바른 일인 것 같다.
살아 있는 자들은 살아 있는 자들과 이미 죽은 자들 모두에게 직접적인 눈빛을 보내야 함을 알기만 하고 어떤 형태로도 잘 만들지는 못했는데, 그것은 살아 있는 자들이 무언가를 더 잘하거나 못해서라기보다는 죽은 자들 역시 죽은 자들과 살아 있는 자들 양쪽에 모두에게 직접적인 눈빛을 보내기 때문이고 그들은 그 일에 더 익숙하기 때문이다.
['이미 죽은 열두명의 여자들과' 중 120 페이지 / 창비]
출판사 리뷰들에서 보이는 공통적인 단어로 만들어보면, 『우리의 사람들』세상은 "독특한 문장의 낯선 이야기"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단순히 그렇게 말하기엔 나는 허전하다
문장은 독특하지만, 자꾸 보면 친근하다. 이야기는 분명 낯선 환경 같지만, 스쳐 지나간 내 일상의 한 부분에 있기도 하다.
며칠이 지나면, 나는『우리의 사람들』세상이 그리워질 것 같다. 그때 다시 펼쳐보고 싶다.
그때는 이 세상이 나에게 또 어떤 특별함을 선사해줄까? 소설이 이런 매력을 가질 수 있다니, 정말 특별한 매력장이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