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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요일 Dec 20. 2020

다시 읽어보다 -일의 기쁨과 슬픔

04 - Ask it |  일의 기쁨과 슬픔 사이란? 

  [인생은 질문이다 -직장 편]의 4번째 일 관련 글을 쓰려고 노트북을 열고, 키보드를 톡톡 건드린다. 

첫 출근의 기억도 회상해 보고, 이직과 퇴사를 결심했던 그 시간도 떠올려본다. 너무 일을 열심히 해서 회사가 내가 되고, 내 삶이 회사인 듯 살았던 시기도 생각난다. 그러나 계속 손가락은 움직이지 못한다. 두리번거리고 둘러보던 책장에서 [일의 기쁨과 슬픔]이라는 책 제목이 보인다. 


  알랭 드 보통의 [일의 기쁨과 슬픔 - 우리는 무엇 때문에 일을 하는가] 노란색 표지가 눈에 띈다. 그러나 내가 글로 읽은 [일의 기쁨과 슬픔]은 바로 옆에 꽂혀 있는 장류진 작가의 [일의 기쁨과 슬픔] 궁서체 표지 제목이다. 


 이 글은 책의 서평 글은 아니다. 다만 제목 그대로 [일의 기쁨과 슬픔]에 대한 생각을 정리하면서, 소설 속의 이야기를 떠올리고자 한다. 


  장류진 작가 인터뷰 문장이 내가 생각하는 [일]이라는 것과 참 닮았다는 생각이 든다. 

날아다니는 것 말고 땅에 붙어 있는 이야기가 좋다.    


  우리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이란 현실이다. 날아다니는 꿈이나 미래가 아니다. 땅에 붙어 있는 우리들이 걷고 뛰고 숨 쉬면서 지금 하고 있는 것이다. 가정보다 더 많은 시간을 보내는 직장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일]이라는 것에 대해서 우리는 얼마나 많은 질문과 고민을 하며 살아가고 있을까? 


소설 [일의 기쁨과 슬픔] 속 한 문장에서 멈춘다. 

"회사에서 울어본 적 있어요?"

 스토리와는 별개로 이 문장에서 갑자기 퇴사를 결심했던 그 날이 떠오른다. 

여는 출근날과 마찬가지로, 그날도 나는 커피를 사고 모니터를 켜고 메일을 열었다. 읽지 않음으로 나오는 볼드체 메일 제목이 3페이지를 덮고 있었다. 그렇게 춥고 힘든 오프 행사를 할 때도, 진행하는 프로젝트에 문제가 생겨 책임을 져야 했던 그 날에도 나지 않았던 눈물이 나는 왜 그 날 아침 그 리스트를 보면서 났는지 갑자기 생각이 났다. 출근하는 다른 직원들에게 부은 눈을 보이지 않으려고 화장을 고치러 화장실로 빠르게 가던 행동까지 생생하게 기억이 난다. 

 내가 그 날 운 이유는 그냥 읽지 않음 메일리스트가 너무 많아서였다. 읽어도 읽어도 다시 채워질 것만 같은 그 메일 목차가 나를 너무 슬프게 했다. 

 그 날이 내가 20년간 해 오던 [일]의 슬픔을 진심으로 직면한 날이 아니였을까!


다음 목차로 [백만 번째 이력서와 첫 번째 출근길] 이야기를 읽는다. 

20년 전 첫 출근 4월이 생각나고, 내 생각을 읽은 듯한 문장을 여러 번 되내어 읽어본다. 


드디어 이 문의 안쪽으로 들어간다.
내가 앞으로 오래오래 다니게 될, 나의 회사. 이제 들어가기만 하면 되는데.    


 정말로 똑같다. 첫 출근날, 지하철역을 내려 걸어가면서 보이던 빌딩의 회사 로고를 보면서 나도 똑같이 혼잣말을 했다. [내가 앞으로 오래오래 다니게 될. 나의 회사. 이제 들어가서 정말 일만 잘하면 된다.]  

처음 내가 하고자 했던 [일]의 기쁨을 처음 만났던 날이 아니였을까? 


그 날 이후로, 나는 [일]의 기쁨과 슬픔 사이를 얼마나 많이 오고 갔을까?

[일]의 기쁨과 슬픔 사이 어디에 더 많이 머물러 있었을까? 

혹은 어디에 더 많이 머물러 있는 척하면서 나를 보여주려고 노력했을까?  

우리는 [일] 그 자체가 주었던 기쁨과 슬픔의 기억보다, 그 사이를 오고 가며 고민하고 힘들었던 생각들을 더 많이 간직하며 살아가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소설책 목차마다 내지 디자인이 표지와 동일하다는 것을 발견한다.

[일의 기쁨과 슬픔] 내용 속에서 나오는 설계가 잘못된 도로와 평행한 육교 그림이다. 

모두가 알고 있는 것처럼, 육교는 길을 건너기 위한 목적으로 만들어진 다리다. 주인공들은 길을 건너기 위해서 육교를 오른다. 계단을 다 올라가서 보니 어딘가 이상한 육교임을 발견한다. 올라온 육교는 길 건너편으로 이어진 게 아니라 다시 원래 있던 길로 내려가게 되어 있는 것이다. 


 나도 그런 육교를 만난 적이 있다. 더운 여름날 힘들게 계단을 올라가서 보니 이어진 것이 아니고 다리 운동하라고 만들어 둔 듯한 아무짝에 쓸모없는 육교를 만난 적이 있다. 그 더위에 짜증을 내면서도 육교 위에 불어오는 덥지만 그래도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한참 서있었던 기억이 희미하게 난다. 


 도로와 평행한 육교 그림이 나는 아마도 [일]의 기쁨과 슬픔 사이를 가장 잘 표현하는 지도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 쓰려고 준비하던 [인생은 질문이다 -직장 편]의 4번째 일 관련 글은 이 이미지로 대신하련다. 


일의 기쁨과 슬픔 -장류진 (이미지) 

[일]의 기쁨과 슬픔 사이는 마치 이 육교 같은 것 아닐까? 


그녀들의 대화처럼 건너편으로 넘어갈 수 있는 목적엔 맞지 않는 육교이지만 , 올라가 보니 잘 보이고, 비나 눈이 올 때 가끔 피할 수 있는 공간도 되고, 다리 운동도 하게 하는... 


도로와 평행하게 만들어진 이 육교 그림을 한참 동안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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