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수 × 오은 그림 시집 / 창비 출판
아침에 눈뜰 때부터 괜히 기분 좋은 날이 있었다.
전날 밤부터 이상하게 몸이 무거운 날도 있었다.
어떤 날이든 몸을 일으켜야 했다.
한 발 한 발 어디론가 향해야만 했다.
실없는 소리를 한 날에도, 뜻밖의 일에 눈물을 흘린 날에도 나는 나였다.
나는 나에게 한 발 한 발 다가가고 있다.
마음이 시킨 일이었다. 마음의 일이었다.
◎ 마음의 일 / 재수 x 오은 그림 시집 / 창비 / 3부와 4부 사이(페이지 ×)
만화가 재수와 오은 시인의 그림 시집, <마음의 일>을 읽다. 이 책은 <읽다>라는 단어보다는 <보다>, <담다>라는 단어가 어울리는 책이다. 처음 책을 받고 짙은 오렌지 표지부터 흑백으로 큼직큼직하게 보이는 속 그림을 후루룩 페이지를 넘기면서 보았다. 다시 한번 후루룩 페이지를 넘기면서 그림을 보고 시를 눈에 담았다. 다시 또 그림을 눈에 담고 시를 보았다. 중간중간 멈추어지는 시와 그림 페이지에 도그 지어(dog's ear)를 해둔다.
나도.
친구가 바로 대답했다.
공을 잘 넘긴 것 같다.
◎ 마음의 일 / 재수 x 오은 그림 시집 / 창비 / 113
그림 속에 나오는 교복때문이였을까?
고등학생이 읽어야 하는 책인가 하는 선입견과 함께 책장을 넘겨보았다. 1부와 2부의 시와 그림을 보면서, 학창 시절을 떠오르게 한다. 그 시절 머릿속으로만 했던 나의 고민과 생각을 이렇게 글과 그림으로 직접 마주 보고 있자니, 갑자기 속이 후련해지는 것 같았다. 그 시절 주위의 사람들은 모두 [사춘기]라는 단어로만 대답을 해주었는데, 그건 [미스 패스]였다.
지금은 [사회생활]이라는 단어로만 스스로 합리화하는 머릿속의 고민과 생각들, 솔직히 더 들여다보지 않고 그저 파묻기 바빴던 것들을 책 속에 그려져 있는 그림과 쓰여 있는 글에 견주어 대본다. 중학교, 고등학교 시절에나 어울릴 것 같던 책의 내용들이 신기하게도 지금도 어울린다. 그 많았던 문 속에서 세월이 흘러 더 이상 열어 볼 필요 없는 문이 생겼다. 그때는 마음만 먹으면 열어볼 수 있었으나 지금은 절대 열어 볼 수 없는 문도 있다.
문득 후회가 된다. 그리워한다.
뒤집어 봐야 열리는 문/ 겹쳐야 열리는 문/ 지워야 열리는 문/ 조립해야 열리는 문/ 한자리에서 오래 기다려야 나타나는 문/ 박살을 내야 생겨나는 문/나를 의심할 때만 생기는 문/ 나를 사랑할 때만 커지는 문/ 소중한 순간을 차곡차곡 모아야 제 모습을 드러내는 문/
◎ 마음의 일 / 재수 x 오은 그림 시집 / 창비 / 17
<실없는 소리를 한 날에도, 뜻밖의 일에 눈물을 흘린 날에도 나는 나였다>라는 문장처럼, 학창 시절 과거의 나도, 세월이 흘러 다 커버린 지금의 나도 나임을 그림과 시가 알려준다. 지나온 세월 동안 수많은 문들을 열고 또는 열지 못하거나 열지 않고 지나쳐왔지만, 역시 모든 것은 마음이 시킨 일이었다. 마음의 일이었다. 오늘도 내일도 그렇게 나는 나에게 한 발 한 발 다가가고 있다는 것을 일깨우게 하는 그림과 시!
학창 시절에도, 어른이 되어도 스스로 <마음의 일>을 잘 챙기지 못하는 것은 똑같은 것 같다.
몸으로 직접 행동한 일에 대해서는 꽤 길게 기억으로 남아 있지만, 내 마음에서 벌어지고 일어났던 일들은 그대로 잊어버리곤 한다. 이렇게 잊어버렸던 마음들이 <마음의 일> 책을 통해서 열어진다. 학창시절때에나 일어날 것 같은 이야기와 그림으로 시작했지만, 마지막 책장을 덮으면서 한마디 저절로 나온다.
그때만 그랬나? 지금도 마찬가지인데....
<네가 떠나고>
나는 한동안
후회하는 사람이었다.
그 말을 해서
그 말을 하지 않아서
매일 아침 머리를 쥐어뜯으며
꺼이꺼이 목 놓아 우는 사람이었다.
<중략>
매일 밤, 이불을 덮어 주면서
과거의 자리에 미래를 포개는 사람이 되었다.
매일 아침, 이불을 개면서
현재의 자리에 기억을 수놓는 사람이 되었다.
나는 남은 사람이 되었다
남아서
그리워하는 사람이 되었다.
◎ 마음의 일 / 재수 x 오은 그림 시집 / 창비 / 164 , 166, 167 (책 보면서 눈물이 맺힌 시&그림. 남겨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