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집 둘째 딸의 자의 반, 타의 반 퇴사 일기
2012년 겨울에 결혼한 나는 바로 그다음 해에 임신을 하게 된다. 지금 기준으로는 좀 이르다고 할 내 나이 27세의 결혼과 1년 후 출산.
모두 내가 결정한 일들이긴 했지만 당시 나는 너무나도 큰 인생의 변화를 아무 준비 없이 맞이하고 있었다.
나의 마지막 직업은 대학교 교직원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안정적이라고 하는, 소위 여자가 다니기 괜찮다는 직장에 다니는 것,
월급은 많지 않지만 워라벨이 지켜지는 삶이라는 것을 이유 삼아 스스로를 토닥이며 임신해서도 나름대로 즐겁게 회사생활을 하고 있었다.
가끔 지방출장이 있었지만 일이 너무 고되거나 야근이 많은 직장은 아니었기에 불러오는 배를 슬슬 문지르며 하루에도 몇 번씩 출산휴가를 언제, 어떻게 내고,
복직은 언제가 최적일지 속으로 셈하고 있을 때였다.
그런데 몇 번을 셈해도 반복해서 막히는 문제가 있었다. 문제 자체가 잘못된 수학 문제는 답을 구할 수 없는 것처럼, 처음부터 잘못된 문제를 풀려고 했는지도 모른다.
그 문제를 정리해 보면,
1. 나는 아이를 낳고도 일을 하고 싶다. 그러려면 아이를 나 대신 나처럼 봐주는 대리인이 있어야 한다.
2. 그럼 내가 회사에 있는 동안 아이 돌봐주시는 분을 고용하고 부모님 또는 시부모님의 도움도 필수적으로 받아야 한다.
3. 우리 엄마는 언니가 전문직 워킹맘이고 아이가 있어서 (그 당시 둘, 지금은 셋) 매일 언니네로 출근 중.
4. 시어머니는 이미 형님 아이를 돌봐주신 상태고, 몸도 약하신 데다 여전히 아이 둘을 때때로 봐주시는 중.
5. 양가의 도움을 받기 어려운 상황에서 아이 돌보미 선생님만 아이와 있는 것은 상상하기 힘든 일.
참고로 지금으로부터 10년 전만 해도 남편들이 육아휴직을 사용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을 뿐만 아니라
내 회사의 경우도 육아휴직을 길게 쓰는 것에 대해 조금은 눈치를 봐야 하는 상황이었다.
남편과도 다양한 경우의 수를 생각해 보았지만 내가 일을 다시 할 경우, 회사에 가 있는 동안 아이를 돌보는 부분에 대한 해결책이 조금도 보이지 않았다.
머릿속에 양팔 저울을 가져다 놓고 몇 번이고 올렸다 내렸다 해보았다.
한쪽은 이제 태어날 아이, 한쪽은 나의 커리어.
그야말로 저울질이었는데,
내가 이 세상에 내놓은 한 생명체를 남에게 온전히 맡기고 싶지 않은 마음 그리고
내 아이는 내 손으로 키우며 자라는 모습을 빠짐없이 보고 싶은 욕심과 비교해
내 일의 전문성이나 내 일이 가져다주는 경제적 혜택, 사회적 지위 그 모든 걸 합쳐서 저울에 얹어놓아도 저울은 아이 쪽으로 한참을 기울었다.
아마도 내가 일을 오래 해서 한 분야의 전문성이 생겼던 때라면 선택이 달라졌을 수 있지만,
그 당시 나는 아직 커리어라고 하기에는 사회 초년생의 신분이라 더욱더 아이 쪽으로 내 마음이 기울었는지도 모른다.
이런 결정을 하면서 처음으로 내가 한 집안에 둘째여서 겪게 된, 앞으로 겪게 될 일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었다.
물론, 그 때나 지금이나 나는 두 자매를 건강하게 잘 키워주신 것만으로도 부모님께 감사하고 이제는 재밌고 편하게 인생을 즐기셔야 한다고 생각한다.
조부모의 황혼육아를 당연한 옵션으로 생각한 것은 아니지만, 첫 째 딸의 아이들을 다시 육아를 시작하는 마음으로 성심성의껏 봐주시는 엄마를 보니
나도 모르게 '나도 좀...'하고 기대하고 있었던 것도 같다.
하지만, 엄마도 이미 체력적으로 힘드셨던 때라 내 문제를 수면에 드러내고 말씀드리는 것 자체가 엄마를 더 힘들게 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해결해주지 못할 문제를 들고 온 둘째 딸에게 엄마는 당황해하며 미안해하실게 뻔했으니까.
또, 전문직 여성으로 나아가기 위해 밤낮없이, 때로는 집에도 못 들어오며 공부하는 와중에 두 아이의 엄마가 된 언니를 엄마는 지나치기 어려우셨을 것이다.
이해한다.
딸들이 엄마가 되었어도 엄마에게는 여전히 신경 쓰고 케어해야 할 아이이자, 그 아이가 사회적으로 성공하는 게 큰 기쁨이라는 것을 알기에.
그렇게 나는 양가 부모님 누구에게도 이제 태어날 아이의 돌봄을 말씀드리지 않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래, 그냥 시원하게 퇴사신청을 하자.
아이를 낳고 엄마가 되고 그러고 나서 또 다른 무언가를 찾아보자.
그렇게 나는 출산을 두 달 앞두고 퇴사를 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