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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상엽 Feb 12. 2020

조선시대 식품 가성비와 브랜딩, 무와 인삼

무와 인삼으로 살펴본 식품 가성비와 브랜딩 세계



가을 무는 인삼보다 좋다 - 한국 속담





우리는 이런 소비자가 되고싶다

 가성비를 넘어 가심비의 시대입니다. 지난 몇년 동안 사람들은 싸고 좋은 제품을 최고라고 쳤다면, 요즘은 비싸더라도 나에게 주는 효용이 그 가격 이상이라면 기꺼이 지갑을 여는 시대입니다. 최근 백화점의 명품 매장들이 다시금 호황을 누리고 있는 것도 이를 증명하지요.

 가성비에서 가심비로 넘어가는 역사적인 순간에서, 지난 글들을 읽다 문득 "그렇다면 가성비는 그럼 언제부터 시작된걸까?" 라는 고민을 해보게 되었습니다. 가성비도 최근에 생긴 트렌드가 아니라 예전부터 존재했던 경제학적 인간의 선천적 본능이라는 가설을 세우면서 말이죠. 조선시대 대표적 필수재였던 무와 사치재였던 인삼을 비교하며 가성비와 브랜딩의 옛모습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어디서나 쉽게 자라는 무

조선무, 왜무(조선무 출처 : 서울식품안전뉴스)


 우리나라에서 소비되는 무는 크게 조선무와 왜무로 나눌 수 있습니다. 말 그대로 조선무와 왜무는 그 용도와 품종의 원산지에 따라 이름이 나뉩니다. 조선무는 우리나라의 재래종으로 깍두기와 같이 김장용, 반찬용, 국용으로 보편적으로 사용됩니다. 우리가 무 하면 떠오르는 것도 이 조선무입니다. 요즘에는 치킨무의 원료로도 많이 사용되고 있어요!


 왜무는 일본에서 전래된 것이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이 즐겨 먹는 단무지의 원료로 사용됩니다. 조선 무보다 수분 함량이 더 높고 모양도 가늘고 긴 게 특징입니다.


 우리나라 널리 재배되고 있고, 재배 조건도 기온이 갖추어 지면 크게 까다롭지 않기 때문에 텃밭에서도 인기 작물입니다. 우리나라 채소들 중 재배면적 1위(약 7만 ha)이고, 작황에 따라 등락폭이 크지만 연중 450만톤 정도 생산됩니다. 서울시가 6만 헥타르 정도 되니까 서울시에 촘촘하게 무만 심어도 우리나라 1년 생산량을 다 채울 수 없다고 보면 되겠습니다.


 한의학에서는 무를 나복(蘿葍)이라고 불렀으며, 천연 소화제로 이용할 뿐 아니라 기관지, 폐 등 호흡기의 염증을 다스리는 데에도 이용했다고 합니다. 실제로 과거에 연탄 보일러를 이용하던 시절, 연탄 가스에 중독되면 동치미 국물을 먹이는 것도 이와 같은 이유입니다. 이처럼 각종 연기 관련 중독에 탁월한 해독 효과를 가지고 있어 무는 음식 뿐 아니라 약으로도 많이 이용되었습니다. 겨울철 호흡기 질환이 유행하는 시기에 먹을 수 있어 천연 치료제로 이용되었다고 합니다.


 서민들에게는 채소가 잘 나지 않는 겨울철에 부족한 비타민과 각종 무기 염류를 공급해주고 짭짤한 밥반찬이 되어주어 인삼보다 겨울에 더 필요한 것이 무였을 겁니다. 예전의 김장은 고춧가루에 절인 배추김치가 아닌 국물을 만드는 동치미였으니까요. 즉, 절대적인 효능은 인삼만 못해도 엄청난 가성비로 인해 제철을 맞은 가을 무가 인삼보다 좋다는 말이 생기게 되었지요.


조상들의 브랜드 마케팅, 인삼


사진출처 : 한국인삼협회


 인삼은 풍부한 사포닌을 통해 뛰어난 항노화 효과를 가지고 있으며, 원기를 보호할 뿐 아니라 허약한 신체에 힘을 불어 넣어주는 기능도 가지고 있습니다. 이 외에도 인삼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많은 효능 들을 가지고 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고려시대부터 우리나라 최고의 수출품으로 자리 잡은 만큼, 인삼의 효능은 역사가 증명하고 있지요.

 하지만 인삼은 까다로운 재배 기술과 함께 다년간의 생육 기간이 필요합니다. 중국이라는 거대 시장의 수요가 확실한 상태에서 무역상의 비교 우위를 점하기 위해서 특산품이 필요했던 고려와 조선은 이 인삼을 "브랜드"화 합니다. 피터 드러커가 조선의 인삼 사례를 본다면 역사적인 브랜드 전략이라고 무릎을 탁 쳤을것만 같습니다.

고려~조선시대까지 이어진 전략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전략1. 최적의 생산 방식 연구(재배 기간)

 비슷한 시기에 대륙/반도에서 통일 국가를 이룬 송나라와 고려는 외교적으로 친밀한 관계를 유지함에 따라 교역이 증가하였습니다. 이 시기부터 국내에서 주로 한정적으로 소비되던 산삼이 중국으로 본격적으로 수출되며 국내에 산삼이 부족해지기 시작했습니다. 따라서 인삼의 인공적 재배가 활발하게 시도되었고, 정확한 시기는 알 수 없으나 대략 조선 중기에 이르러 인삼의 인공재배에 성공하게 됩니다.

 당시 많은 양이 생산되어 교역량 자체는 늘었으나, 생산량이 늘어 가격 자체는 떨어질 수 있었으므로 가격을 유지할 수 있는 새로운 방안이 필요했습니다. 이를 위해 인삼의 인공재배 과정에서 익힌 노하우를 바탕으로 상품가치가 형성되기 시작되는 4년차부터 인공 생육의 한계 시기인 6년차까지 수확하여 각각 용도나 가치에 맞게 판매하였습니다. 년수가 오래 될수록 약재로써의 브랜드 가치는 더 인정받을 수 있었지만 7년차부터 인삼 내에 목질화가 진행되어 상품성이 떨어지고 폐사율도 높았으므로 최적의 생산시기를 고안해 낸 셈입니다.


전략2. 엄격한 공급제한을 통한 희소가치 창출

  당시 인삼을 재배하기 위해서는 국가의 허락이 필요했고, 지금의 담배 및 주류 사업처럼 국가가 엄격히 그 생산과 판매를 통제하였습니다. 또한 수출에 있어서도 역관과 같은 특수 계층이 아니면 소지량이 제한되어 있어 중국으로 반출되는 양이 극히 제한되었습니다.

 이처럼 공급을 제한하는 '명품전략'을 사용하여 희소가치를 창출해 내었고, 많은 아시아 국가들이 타 국가의 외교에서 진상품으로 활용함에 따라 그 가치는 더욱 더 올라가게 되었습니다. 일례로 태국의 사신이 프랑스의 루이14세의 진상품으로 활용하기도 하였으며, 이를 계기로 몇몇 서양 국가들은 인삼의 유사 종을 찾기 위해 당시 여러 식민 국가들을 뒤졌다고 합니다.


전략3. 다양한 제품 라인업 구축

 단순히 인삼 뿌리만으로는 브랜드 가치를 창출하기에는 한계가 있었습니다. 중국 내에서 유사 재배가 많이 일어나 제품 그 자체로는 차별화에 어려움이 생기기 시작하자 심마니들을 활용한 다양한 연식의 산삼, 쪄서 가공한 홍삼 등을 공급하며 세계인들의 숨겨진 니즈를 끊임없이 찾아 새로운 브랜드 스토리를 창출하였습니다.

 당시 중국에서도 인삼 재배 및 산삼 채집이 이루어졌지만 국가의 엄격한 통제와 제품 개발이 없어 조선과 같은 브랜드 가치를 창출하지는 못했습니다.




가성비 = 무, 가심비 = 홍삼

 - 상품의 이야기를 만들기 이전에, 상품의 니즈와 본질을 우선 알아야한다


 무와 인삼 이야기는 농산물, 나아가 상품을 개발하는데 있어서 어떤 전략을 사용해야 할 지 깊은 통찰을 제시해 줍니다. 만약 옛사람들이 가을 무가 맛있는 것 같아 공급량을 조절하여 프리미엄화를 시도 하였거나, 인삼의 가격이 비싸니 대량 재배 체계를 구축해 공급량을 늘렸다면 어떤 결과가 생겼을까요? 많은 서민들이 겨울철 중요한 채소를 먹지 못하고, 인삼은 지금과 같은 브랜드 가치를 획득하지 못하지 않았을까요?

제품의 소비자를 파악하고 그 소비자들의 니즈에 맞춰 상품에 대한 이야기를 만들어 가는 과정.

이야기를 만들기 전에 내가 이야기를 만들 대상에 대해 정확하게 파악하는 것!

조상들의 가성비와 가심비를 이용한 브랜딩 전략이 바로 무와 인삼에 있었습니다.



자료출처 : 한국인삼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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