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선이 먹던 과일, 복숭아에 담긴 옛 이야기들
상자를 여니 복숭아 내음이 진동했다
상자 안에 꽁꽁 묶여 있던 단 내음이
‘좋아라’ 하고 사방으로 퍼져 나가며
도실도실(桃實桃實) 토실토실 분홍 볼
복숭아들이 즐겁게 뛰쳐나왔다
박정남, 그가 복숭아를 보내왔다 中
시에 표현된 복숭아 상자를 열면, 복숭아 냄새로 집 안이 가득 찰 것만 같습니다. 예로부터 복숭아는 그 맛 뿐만 아니라 향, 아름다운 모양으로도 많은 사랑을 받아 온 과일이죠. 우리에게 너무도
익숙한 과일은 언제부터 사랑을 받아오게 되었을까요? 오늘은 역사 속에 담긴 인류의 복숭아 사랑을 살펴보려 합니다.
2015년, 중국에서 복숭아 화석이 발견됩니다. 이 복숭아 화석은 260만년 전 것으로 추정되고 있어요. 원래 복숭아는 원산지가 중국이었다고 알려져 있었지만, 이렇게 오래전부터 중국에 복숭아가 있었을 줄은 아무도 예측하지 못한 사실이었습니다.
중국의 옛 이야기에서 복숭아에 대한 내용을 흔히 찾아볼 수 있는 점에서, 복숭아는 오래 전부터 중국에서 볼 수 있었음을 쉽게 유추해 볼 수 있습니다. 공자가 정리한 <<시경>> 중 <도요(桃夭)>(복숭아나무)라는 시에는 시집가는 여성을 복숭아나무의 상태에 비유하고 있습니다. 집 근처에서 쉽게 복숭아나무를 찾아볼 수 있었다는 점에서 우리는 공자 이전시대부터 복숭아가 중국에서 재배되었음을 추측해볼 수 있습니다.
또한 <도요>에서 나타나는 복숭아의 모습은 매우 긍정적인 상징물로 나타납니다. 시의 내용은 시집가는 여성이 그 집안을 화목하게 할 것이라는 축복의 의미인데, 복숭아 나무에는 축복과 행복이라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실제로 중국에서는 결혼을 축하할 때 낭송하는 대표적인 시 중 하나라고 합니다.
복숭아는 고대 중국에서 길(吉)함의 상징으로 여겨졌습니다. 고대의 중국 생활권은 중원(황하강 중,하류)이었으므로, 그 당시 중국 남부에서 재배되는 과일과는 거리가 있었을 것입니다. 따라서 주나라 즈음에 중국 중원 지방에서 재배되거나 볼 수 있는 과일류는 크게 복숭아, 배,대추 정도 등이 있었을 것입니다. 이중 모양과 향, 맛이 가장 빼어난 복숭아가 고대 중국인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으로 보입니다. 이후 복숭아는 도교 사상에서 상징이 되는 과일로 여겨지며 무릉도원, 천도복숭아 등의 어원에서 살펴볼 수 있듯 중국인들의 신선 사상에 깊이 관여하는 과일이 됩니다. 서유기에서 손오공은 천도복숭아 밭을 지키다 복숭아를 훔쳐먹은 죄로 옥황상제를 화나게 했지요. 우리에게 익숙한 삼국지의 유비·관우·장비의 의형제도 복숭아 밭 에서의 약속인 도원결의(桃園結義)에서 시작합니다.
고대 중국에서 재배하던 복숭아는 인도와 서남아시아로 전파됩니다. 이렇게 전파된 복숭아는 알렉산드로스대왕의 페르시아 원정을 통해 유럽으로 전파되게 됩니다. 유럽인들은 페르시아에서 온 이 과일을 persicum malum(페르시아 사과,라틴어)로 불렀습니다. 이후 영어에서 복숭아를 "peach"로 부르게 되었지요.
유럽에서는 "납작복숭아"가 재배되고 있다고 합니다. 한국에서 재배되는 복숭아보다 신맛이 덜하고 단맛이 더 높다고 하네요. 한국에서 재배되는 품종도 단맛이 높고 신맛이 덜한 품종이 대부분인데, 이보다 더 달고 신맛이 덜해 한국인들의 입맛을 사로잡고 있다고 합니다.
복숭아가 중국에서 굉장히 오래된 과일이었던 만큼, 한반도에도 오래 전부터 재배되어 왔습니다. 삼국사기 신라본기에 서기 100년경 부터 이미 복숭아에 대한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재배 역사가 최소 고대 삼국시대부터 이어져 왔음을 알 수 있습니다. 조선시대의 지리서 중 하나인 <<신증동국여지승람>>은 복숭아를 고려 말에서 조선 개국 초의 과일 중 하나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중국에서 복숭아가 신선의 과일이었다면, 한국에서 복숭아는 귀신을 쫓는 의미였습니다. 복숭아 보다는 복사나무(복숭아나무)가 귀신을 쫓는 주술 도구로 많이 활용되었죠. 우리 선조들은 복숭아 나무로 부적을 만들거나 무속인들의 도구를 만들었습니다. 고려시대에는 제사상에 복숭아나무로 만든 화살을 문 안 오른쪽에 두었으며, 조선시대에서는 복숭아나무로 빗자루를 만들어 잡귀를 축출하고 새해를 맞는 민간 풍속이 있었죠. 복숭아가 귀한 과일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 제사상에 올라가지 않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복숭아는 귀신을 쫓는 효험이 있기 때문에 제사상에 올릴 경우 조상 귀신이 집 안으로 들어오지 못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에요.
복숭아는 또한 여성을 상징하는 상징물로도 쓰였습니다. 아이를 낳고 대문에 금줄을 칠 때, 아이가 딸이면 복숭아를 거는 풍속이 있었지요. 또한 연분홍 색상이 성적 상징을 연상하게 하여 남녀 간의 성적인 욕구도 의미했다고 해요. 이 외에도 남성의 정력을 향상 시킨 다던지, 아이를 잘 낳게 기원하는 생명력과 성적 관련 주술 의식에도 사용되기도 하였답니다.
복숭아에 관한 정서는 우리의 예술작품에서도 드러납니다. 세종대왕의 셋째 아들인 안평대군은 꿈에서 거닌 무릉도원을 당대 최고의 화가라 여겨지는 안견에게 그리게 하였습니다. 안견은 안평대군의 명을 받은 지 3일만에, 안평대군의 꿈 내용을 바탕으로 조선 최고의 산수화 중 하나로 손꼽히는 몽유도원도를 그려내지요. 중국 도교의 영향으로 복숭아 나무는 우리나라에서도 풍요와 길(吉)의 상징으로 여겨져 왔습니다.
복숭아는 과일도 예쁘지만, 꽃도 참 예쁩니다. 옛사람들이 복숭아를 사랑했던 이유는 과일에도 있지만, 과일이 피기까지 복숭아나무가 주는 아름다운 울림이 아니었을까요? 살아가면서 결과만이 아닌 과정에서 행복을 느끼는 것도 중요하다는 사실을, 옛 사람들의 복숭아 사랑에서 살펴볼 수 있었습니다.
참고자료
- 한국민속대백과사전, http://folkency.nfm.go.kr/kr/
- 농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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