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시와 곶감을 외국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이유는?
법정은 눈으로만 감을 먹었다.
부리로 먹는 것은 새들이었다.
실제로 법정은 감나무의 감을 따본 적이 없었다.
새들의 겨울먹이로 눈으로만 감상할 뿐 그대로 두었다.
<<무소유 법정스님 이야기>> 중에서
어렸을 적 할머니 댁에 가는 길에 감나무가 한 그루 있었습니다. 홍시가 되도록 푹 익은 감을 동네 사람들은 따지 않았어요. 어릴 적에는 왜 맛있는 홍시를 따지 않고 저렇게 놔둘까라는 생각을 했었어요. 하지만 어른이 되어 생각해보니, 겨울을 맞이한 새들을 위해 하나 둘 남겨두는 한국의 정 문화에 따뜻함과 흐뭇함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오래 전부터 우리와 친숙한 것만 같은 감. 그런데 우리나라 전통 감은 단감이 없었어요. 아니 이게 무슨소리야?
감은 몇 안되는 동아시아 전통 과수입니다. 서양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과일이에요. 그래서 우리는 사과와 복숭아는 영어로 흔히 잘 알고 있지만(심지어 바나나와 오렌지도 있네요) 감이라는 영어 단어는 잘 알려져 있지 않죠. 감은 영어로 persimmon입니다. 다른 과일에 비해 수분감이 낮은 편이기 때문에 마른 과일(Dry fruit)이라는 뜻입니다. 감에 대한 자료와 흔적은 동아시아 전역에서 많이 찾을 수 있어, 원산지를 중국과 한국, 일본으로 보고 있어요.
중국은 기원전 2세기부터 재배를 시작한 것으로 보이며, 우리나라는 고려시대부터 재배를 시작한 것으로 추측됩니다.
우리가 지금 먹는 단감은 1927년 일본으로부터 도입된 품종들로, 부유라는 품종이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 일본에는 1214년 가나가와현에서 선사환이라는 단감이 발견된 이후, 단감 보급이 보편화 되어 있어요. 그래서 일본에는 감을 변형해 먹지 않고 과일로 먹는 문화가 발달해 있답니다.
지금은 껍질을 벗겨 먹는 단감이 보편화 되어있기 때문에 우리는 흔히 감을 "달다"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떫은 감은 덜 익은 감이나, 과일로써 좋지 않은 감이라고 생각하죠.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재배되던 감은 원래 떫은 과일이었습니다. 과거에 재배되던 우리나라의 전통 감은 대부분 떫은 맛이 매우 강한 품종들이었어요. 그래서 우리 조상들은 감을 바로 먹지 않고 충분히 익혀 먹는 홍시, 말려 먹는 곶감, 발효 시켜 먹는 감식초등 감의 떫은 맛을 없애기 위해 여러 형태로 변형해서 먹었죠.
실제로 지금도 떫은감과 단감의 생산량은 연간 각각 10만톤 정도로 비슷한 수준을 보이고 있습니다. 껍질을 벗겨 곶감으로 만들거나 저장고에서 더 익혀 홍시로 만들어 출하하고 있기 때문에, 완제 욕구가 높은 요즘 식품 트렌드에서 덜 익은 대봉감을 직접 사 가정에서 익혀 먹는 모습이 없어진 것일 뿐이지요.
왜 맛있는 단감이 옛날에는 일본에서 우리나라로 들어오지 못했을까요? 제일 큰 이유로는 단감 품종이 추위에 약하기 때문입니다.실제로 지금도 단감 재배는 경기도 이남 지역에서 주로 이루어지고 있어요. 겨울 기온이 크게 낮지 않은 경남 지역에서 단감이 많이 재배된답니다.농업이 비약적 발전을 이룬 일제강점기 이전에는 추위에 약한, 재배하기 어려운 품종보다 떫은 감을 활용해서 변형해 먹는 편이 훨씬 경제적이고 합리적인 선택이었습니다.
오해
감이 떫은 맛을 내는 이유는, 감에 들어 있는 수용성 탄닌때문입니다. 물에 녹는 탄닌이라는 뜻인데, 우리가 감을 먹을 때 침에 이 성분이 반응하면서 떫은 맛을 느끼게 되는 것이죠. 이 수용성 탄닌은 감이 익어가면서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물에 녹지 않는 불용성으로 바뀌게 돼요. 이렇게 수용성 탄닌을 불용성으로 바꾸는 과정을 탈삽이라고 합니다. 탄닌의 떫은 맛을 없애고 감의 단맛을 찾는 작업이죠. 과거 우리 조상들은 난로 옆에 두어 따뜻하게 만들어 주거나 술을 발라주는 다양한 탈삽 방법을 고안하여 감을 맛있게 먹었습니다.
흔히 감을 많이 먹으면 변비가 생긴다고 알려져 있는데 변비의 원인은 떫은 감에 들어있는 수용성 탄닌이 대장에서 수분을 흡수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떫지 않은 감이나 곶감, 홍시는 변비와 크게 관련이 없으니 안심하고 드셔도 무방합니다.
최근 1인 가구의 증가는 감 농사에 큰 타격을 주었습니다. 껍질을 벗기기도 어려운 편이고, 씨도 딱딱하고, 익혀 먹어야 하는 불편함은 최근의 간편 트렌드에 맞지 않았던 것이죠. 요즘 시각에서는 불편한 과일이지만, 익혀 먹는 과정에서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으므로 과일을 먹는 새로운 재미를 주는 것이 바로 감입니다. 다양하게 먹는 방법이 있는 만큼 다양한 시각으로 접근해 다양하게 먹어볼 수 있으니, 사는 사람과 파는 사람에게 충분히 재미를 줄 수 있지 않을까요? 오늘부터 다시금 고민을 해봐야 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