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스에서 배우는, 다품종 소량생산 시대의 새로운 MD 패러다임
90년대 초반, 전통 시장 기반에서 주로 물건을 구입했던 한국 유통 시장은 1993년 이마트를 시작으로 대형 할인점의 시대가 열리면서 새로운 전환의 국면을 맞이합니다. 3저 호황 이후로 한국의 소득수준은 드라마틱하게 향상되었고, 이는 자동차 보급률의 향상으로 이어졌습니다. 테스코/까르푸/월마트가 보여준 선진국의 종합유통이 한국 시장에 먹힐 수 있는 사회적 제반이 마련된 시점이었죠.
하지만 기존 전통시장의 조그만 소매점처럼 내가 살 수 있는 것, 사온 것을 한군데 자그맣게 모아놓고 파는 것이 아니라 거대한 한 건물에 살 수 있는 모든 것을 집어넣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대형 할인점은 적정한 품질의 상품을 저렴한 가격에 가져오는 것이 목표였기 때문에 아무 상품이나 가져올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그렇지만 농,축,수산 산지의 지금 코인을 뛰어넘는 가격변동성과 중간유통상의 장악력이 대기업의 구매력보다 훨씬 큰 상태라, 적절한 가격에 적절한 상품을 구매하는 것이 중요한 과제였죠.
이때, 혜성같이 등장한 new 직업이 바로 MD였습니다. 거래처와 계약을 하고, 적절한 거래처를 발견하고, 적절한 거래처를 육성하는 대기업/제조업 방식의 구매가 유통업계에 적용되면서 만들어진 직업이죠. MD의 픽에 따라 중간상은 큰 매출을 확보할 수 있었기 때문에 이 당시 MD의 권력은 절대적이었고, 회사의 입장에서도 MD가 어떤 상품을 어떻게 소싱하느냐에 따라서 경쟁사와의 경쟁우위가 결정되었기 때문에 유통업계의 꽃은 MD다! 라는 말이 나오게 되었죠.
강산이 세번째 바뀌어 가고, 급격히 변한 K-유통시장
그 후 20년이 넘게 흘렀습니다. 세상이 어떻게 바뀌었을까요? 일단 그때 즈음 태어난 제가 30대를 목전에 두고 있습니다... 계란 한판!
인터넷의 등장으로 온라인 쇼핑이 활성화되었고, 공급 업체들은 양 뿐만 아닌 질적으로도 모두 성장을 이루었습니다. 온라인의 등장에 제대로된 대처를 하지 못한 이마트는 2020년 창사 이래 첫 적자를 맛보았고, 홈플러스는 사모펀드가 인수한 이후 사업은 내리막을 가고 있지만, 땅값이 올라 기업 가치가 올랐죠.(이득?) 롯데마트는 강력한 구조조정에 들어가며 새로운 시대로의 전환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공급 업체들은 이제 더 이상 한 거래처에 목숨을 잘 걸지 않죠. 좋은 날이 다 가고 있습니다.
사회 환경의 변화는 MD의 롤도 바꾸었습니다. 과거 오프라인 독과점 유통망을 보유하던 시절에는 MD가 트렌드를 만드는 사람이었습니다. 적절한 센스를 얹어 기획/대량 생산하여 저렴하게 제품을 출시할 경우 불티나게 팔리는 유통 환경이었죠. 그래서 MD는 트렌드의 변화보다, 제품을 성공시키는 방법을 아는 역량이 더 중요했습니다. MD의 감각에 의존하는 유통환경이었죠.
요즘은 다릅니다. 공급업체는 더이상 독점 공급을 해주지 않으려고 하고, 괜찮은 상품을 소싱해 와도 온라인에 더 싼 가격으로 풀려버립니다. 공을 들여 기획한 제품은 한달이 채 지나지 않아 바로 카피한 상품들이 문전성시를 이룹니다. 못살겠어 정말!!!
과거 MD의 업무 프로세스는 발빠른 소비자들의 취향 변화와 공급업체들의 탁월한 카피 역량을 따라가기에 너무 버거워졌습니다. 소비자가 원할 만한 상품을 발굴 → 기획 → 생산(구매) → 판매로 이어지는 과정을 반복하다 보면 이미 트렌드는 다 바뀌어있고, 카피 상품은 판을 쳐버리죠. 대만 카스테라, 흑당, 마라탕 등! 최근의 트렌드는 바람처럼 왔다가 이슬처럼 가버린답니다. 이제 어떡하면 좋을까요?
스타트업의 MVP식 소싱이 필요한 시점이 아닐까
2015년 출시된 토스는 어느덧 기업가치 7조원을 평가받으며, 승승장구 하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K-유니콘으로 성장한 토스의 성장 전략을 분석할 때, 가장 중요하게 평가하는 점은 스타트업의 핵심 역량인 MVP(Minimum Value Product)구현을 그 어떤 기업보다 성실히 잘 실천했다는 사실입니다.
기존 은행은 IT 서비스를 출시할 때 철저한 준비를 거칩니다. 혹여나 오류가 있지는 않은지, 어떤 서비스를 넣을 것인지, 어떻게 작동시킬 것인지. 기획부터 디버깅까지 오랜 기간 철저히 준비해서 어플리케이션과 웹 서비스를 출시하고 있죠. 이러한 방식을 "빅뱅 방식"이라고 불렀습니다. 의도적으로 철저히 기획한 제품이 빵! 하고 나오는 것이죠. 옛 MD들은 이러한 방식으로 상품을 출시합니다. 한땀 한땀 공들여서, 많은 돈을 들여서, 시장에 임팩트를 줄 상품들을 빵 하고 터트리고자! 철.저.히 준비해서!
반면에 토스는 작은 기능들을 하나하나 붙여가며 소비자들의 반응을 테스트했습니다. 핵심 벨류인 간편 송금 서비스를 구현하면서 추가적으로 소비자의 편의를 불어넣을 다양한 서비스들을 붙여나갔죠. 토스는 출시 이후 120여개의 서비스를 앱에 구현했는데, 이중 80개는 없어졌습니다. 이 서비스들은 한 번에 출시된 것이 아닌, 하나 하나씩 출시되었다가 소비자들의 선택과 버림을 통해 유지되거나 사라져 갔죠. 기획자의 감이 아닌, 소비자의 니즈에 의존한 서비스 방식입니다. 어떤 걸 좋아할지 모르니 이것저것 내보긴 하는데, 여러 개를 한꺼번에 준비하지 않고 하나, 하나씩 꾸준히/ 하지만 빠르게 출시하여 반응을 살피고 괜찮으면 고! 아니면 바로 스탑해버리는거죠.
이처럼 가벼운 방식의 서비스 출시는 기획자들의 부담을 덜어줄 뿐 아니라, 시시각각 변하는 소비자들의 트렌드를 빠르게 캐치하는데도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아무리 기획자가 철저히 준비해도 소비자들을 100% 만족시킬 수 없고 예측할 수 없다면, 가볍게 빨리 출시해서 소비자의 반응을 살피는 거죠.
이제 유통 MD도 이와 같은 MVP사고방식이 굉장히 중요한 세상이 왔습니다. 담당자 여러명이 붙어 확신도 없는 소비자 트렌드 리포트를 두고 낑낑대며 결재권자의 사인을 받기 위한 제품 소싱이 아니라 진정 소비자를 위한! 빠르고 유연한 소싱 체계와 사고가 필요한 시점이 아닐까 싶습니다.
기존의 공룡들의 유통방식은 자사의 유통망을 활용하여 단일 상품에 대한 MOQ를 늘린 후 가격경쟁력을 확보, 경쟁력 대비하여 우위를 찾았습니다. 반면 MVP 방식을 유통 환경에 적용해 본다면, 내가 기획을 하지 않고 우수한 공급 업체들의 제품을 여러개 확보, 이곳 저곳 소량으로 테스트를 해서 어떤 상품이 반응이 좋은 지 확인하면 됩니다.(Data Driven 의사결정) MVP의 가장 중요한 점은 빠르게 제품을 출시 한 후, 그 반응을 데이터 기반으로 해석하는 것입니다.
숫자가 흡족하지 않다면? 다음 제품을 찾으면 됩니다. 잘팔린다면? 그때 그 상품에 대한 데이터를 기반으로 대량 생산 기획 보고서를 쓴 다음 팀장님 방으로 달려가서 팀장님 빨리 싸인좀요 ㅡ.ㅡ 현기증나니까 ㅡ.ㅡ 하면 됩니다. 후... 생각만해도 좀 짜릿하네요. 여기서 몇달동안 낑낑대는 인건비보다, 간단하게 제품 출시하여 테스트 하는 것이 더 싸게 먹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MVP를 실현하는데 비용이 많이 들면 Minimum이 Maximum이 되어버리니까요 ㅠㅠ.
변하지 않으면, 도태되는 세상이 왔습니다. 특히 변화의 속도가 느렸던 유통업계는 최근 코로나로 인한 오프라인 > 온라인의 급격한 전환으로 큰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미리 변하지 않으면,
나중엔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는다.
유통업계의 보수적인 환경에서, 깨어있는 사고와 업무 방식은 오히려 우리에게 기회가 될 수 있습니다. 우리 모두 불모지의 땅에서 변화의 바람을 듬뿍 불어넣는! 사람이 되어보자구요.
지금은 전국에 숨겨진
보물같은 로컬푸드를 발굴하고 있습니다.
살펴보실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