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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신과 의사 나종호 Feb 09. 2023

<그대의 마음에 닿았습니다> 후기

9인의 정신과 의사들의 이야기

책을 내면서 일차적으로 가장 걱정되었던 것은, 전에 이야기했듯, 환자들에 대한 미안함이었다. 그리고 그다음으론, 선배 정신과 의사들이 내 책을 읽는다는 사실 자체가 마음에 걸렸다. 의학의 모든 분야가 마찬가지겠지만, 정신의학은 특히나 환자를 만난 연륜이 중요하다. 그런 맥락에서, 내 레지던트/펠로우 수련 과정을 담은 책을 선보이는 게 부끄러웠던 것이 사실이다.  

<그대의 마음에 닿았습니다>는 그래서 하루라도 빨리 읽어보고 싶은 책이었다. 9명의 선배 정신과 의사들이 앞서간 길을 배울 생각만으로 설렜다.


여기저기서 밝혔듯이, 의과대학 시절은 나에게 혹한기였다. 자살을 막는데 기여하고 싶다는 거창한 목표를 가지고 입학했지만, 현실은 냉혹했다. 나 자신의 몸 하나 가누기도 힘들었던 시기였다. 그러던 중에, 의대생들을 대상으로 한 자살 예방 게이트키퍼 교육을 하는 의대생 단체가 생겼다는 소식을 들었다. 자연스럽게 가입을 했지만 적극적인 활동을 하지는 못했다. 바쁜 일정에도 중추적인 역할을 하는 동료 학생들을 보며, 부끄러웠고, 부러웠던 기억이 난다. 


전국의 회원들을 대상으로 '보고 듣고 말하기' 자살 예방 교육을 하는 시간이 있었는데, 그때 처음으로 백종우 교수님을 멀리서 뵈었다. 자살 예방을 위해 노력하는 정신과 의사를 꿈꾸던 나에게, 실제로 그 일에 앞장서는 교수님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큰 위안이 되었다. 


시간이 지나 뉴욕에서 레지던트 생활을 하던 시절, 백종우 교수님을 비롯한 한국 자살 예방 전문가 분들과 맨해튼 보훈 병원의 자살 예방 담당자를 연결해 드린 적이 있었다. 운이 없게도 전날 마침 당직을 서는 바람에 교수님을 직접 뵙지는 못했다. 


*  

정신과 의사로서 정신과 환자와 관련된 살인 사건 기사를 보는 마음은 찢어진다, 양갈래로.

하나는 희생자에 대한 슬픔이고, 또 다른 하나는 가해자인 환자에 대한 연민이다. 그 희생자가 정신과 의사일 경우에는 말할 것도 없다. 레지던트 2년 차였던 해의 마지막 날, 임세원 교수님이 환자의 칼에 생을 마감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필연적으로, '만약에 나였다면?'이라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었다. 기사를 읽는 것도 너무 마음 아팠지만, 환자를 비난하는 댓글들도 그에 못지않게 아팠다. 그리고 며칠이 지나 유가족의 입장문 발표를 접하게 되었다.



안전한 진료 환경을 만들어달라. 그리고 마음이 아픈 사람들이 편견과 차별 없이 언제든 쉽게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 달라.

말로 표현하기 힘든 안도감이 들었다. 앞선 '만약에 나였다면?'이라는 질문에 대한 명쾌한 답이 주어진 기분이었다. 내가 임세원 교수였다면, 자신의 죽음으로 정신과 환자들 전체에 대한 편견 혹은 낙인이 씌워지는 것이 마음 아팠을 것 같았기 때문에. 유가족도 그 마음을 알았기에 그와 같은 입장문을 낼 수 있었을 것이다. 사후의 행적만으로 누군가를 존경할 수 있다는 걸, 그날 처음 깨닫게 되었다. 


*


두 분의 수련 과정의 일화들을 담은 백종우 교수님의 글을 보며, 내가 마음속으로 존경하던 두 분이 수련 동료였다는 사실이 알 수 없게 반가웠다. 


김혜민 피디님이 보내주셨던 다큐멘터리 영상들, 백종우 교수님이 쓰신 챕터, 정찬승 선생님이 쓰신 자살 유가족과의 면담 과정을 읽으며 한국의 자살 예방, 유가족의 치유를 위해 백방으로 노력하는 분들이 이렇게나 많음을 보며 안도감을 느꼈다. 



내가 경험한 적 없는 큰 트라우마를 겪고 절망과 비탄에 빠진 사람을 대하며 어떻게 이미 다 알고 있다는 허세를 부릴 수 있겠는가. 나는 모른다. 하지만 간절히 알고 싶다. 그때 비로소 이해와 공감이 시작된다.


정신과 의사는 끊임없이 겸손할 수밖에 없는 직업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그 겸손을 오랜 시간이 지나도 부단히 체화하는 선배의사들을 보며 배울 수 있어서 감사한 시간이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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