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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브로큰티팟 Nov 08. 2019

우리는 모두 같은 길을 가게 될까요?

[82년생 김지영]을 보고 난 후의 이야기 


도대체 [82년생 김지영]이 무엇이길래?


육퇴 후 넷플릭스로 드라마는 보는 것 외에는 좀처럼 티브이를 틀지 않는 우리 집의 특성상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들을 한발 늦게 접할 때가 많다.

[82년생 김지영]은 책이 출간되었을 때부터 들었던 터라 주제가 무엇인지는 알고 있었으나, 영화가 이토록 뜨거운 반응일 줄은 예상치 못했었다.

좀처럼 나지 않는 시간 때문에 엄두도 못 내다가 더 이상 미룰 수가 없어 주말 아침, 조조영화를 티켓팅하고 혼자 극장으로 향했다.

남편에게 ‘나는 절대 울지 않을 거야’라고 말하면서 뒷주머니에 몰래 휴지를 살짝 접어 넣고 나왔다.  

엔딩 시크릿이 올라간 후 나는 비교적 침착하게 걸어 나왔지만 주변을 둘러보니, 역시 여자들의 대부분은 눈물 콧물 범벅이 되어 있었다.  




영화를 보기 전, 일요일 아침마다 취미로 다니는 자수 모임에서 이 영화가 화제로 두드러진 적이 있었다.

물론 자수라는 취미의 특성답게 대부분 여자들이 모여있고 미혼인 직장인들이 많았는데, 푹 퍼지고 싶은 일요일인데 아침 수업을 온다는 건, 그만큼 자신의 취미에 대한 관심과 투자가 능동적인 - 즉 자아가 큰 여성일 것이 분명하다.

그녀들과 영화 속 이야기를 주고받다 결혼하고 달라지는 생활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그래서 나 역시도 기억에 남는 경험이 있어 이야기를 꺼냈다.

 “아, 저도 결혼하고 첫 명절이었나? 가족들이 모두 모이는 장소였는데, 도착하자마자 어머님께서 앞치마를 둘러주시더라고요. 아- 이게 바로 듣기만 하던 세상이구나. 시월드의 시작이구나. 하고 느꼈었어요”  나는 웃자고 꺼낸 이야기였는데,  


갑자기 자수를 멈추고 나를 바라보던 A 씨는

 “저 지금 영화 이야기하는 줄 알았어요. 영화에 그 장면이 나오거든요. 아 진짜 소름이에요”


이어서 건너편에 있던 B 씨는

“제가 그래서 결혼하기가 싫어요. 그냥 연애만 하고 싶지 결혼하고 싶지 않아요. 저라면 그 상황에서 그냥 못 넘어갈 거 같거든요”


사실, 앞치마는 둘렀는데 나보다 큰 형님, 어머님, 큰어머님이 일을 더 많이 하셨고, 나는 처음이라 뭘 제대로 하지는 못했지만 앞치마를 두른 것 자체가 신선한 충격이었다는 말을 이어서 할 기회가 없었다.

음식은 대부분 사와서 제사상에 올리기만 한 거였고, 나는 설거지를 도왔다는 말 역시도.

우리의 대화는 행복한 결혼생활을 하고 계시는 선생님의 중재하에 하하호호로 마무리되었다만, 그날 수업을 끝내고 나오는 길에 생각이 꽤 많아졌었다.




당신의 장벽안의 삶은 어떤가요?


유난히 이 수업만 듣고 나면, 여성들의 인권, 결혼하고 난 후의 여성의 삶이 극도록 달라진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 시월드는 없애야 하는 거대 장벽과 같은 것으로 느껴진다.

아이까지 낳아서 그 장벽 안에서 살고 있는 나의 삶과 그녀들의 삶이 대조되면서, 머리에 물음표가 한가득 생기게 되는 것이다.

 

운이 좋게도, 나의 장벽 안 삶은 그렇게 나쁜 편이 아니다. 누구에게나 들어봄직한 결혼생활에 있어 불합리하다고 느꼈던 경험은 나 역시도 갖고 있지만, 그보다 좋았던 기억이 더 많다.

내가 성격이 좋아서는 결코 아니다. 그래서 기분 나쁠 것도 한 귀로 흘리는 건 절대 아니다. 꽤 예민하고, 내 기준에서 벗어나는 행동을 상대가 하면 잠을 못 잘 정도로 받아들이기 힘들어하는 성격인지라 수용할 수 없는 태도가 지속된 것이라면 결코 견디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행동은 일종의 하나의 ‘행동’이었고, 시부모님의 나를 향한 마음은, 다른 경로나 다른 숱한 행동으로 느낄 수 있었기에- 그게 나를 미워해서가 아니라는 결론을 내렸다. 그저 익숙해서이거나, 혹은 당신 역시 그렇게 듣고 보고 자랐기 때문에 관습화 된 습관적 행동을 행했을 뿐이었다. 그렇게 느끼게 되면, 더 이상 그녀가 (시어머니가) 밉지 않다. 측은하다. 그리고 지금 세대의 며느리를 봐야 하는 그분들의 입장 또한 쉽지 않으리라 생각된다.

그녀들 역시, 본인들이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살아야 했던 시절과 지금이 달라졌음을 머리로는 느끼겠지만 행동으로 옮기기까지는 쉽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나 역시, 관료제가 깊게 뿌리내린 회사에서 근무할 때, “내 후임에게는 절대 저러지 않을 거야.” 수없이 다짐해놓고는, 막상 자유롭게 그리고 그 자유가 너무도 당연하듯 행동하는 후임을 보며 배가 아팠던 경험이 있다.

내가 겪은 만큼 너도 겪어봐라! 는 아니더라도, “와- 세상 참 좋아졌다. 나는 못 저랬는데.” 하는 꼰대 마인드가 저절로 생기는 건 그런 문화 속에 살면서 생긴 ‘피해의식’이지, 개인의 성격이 꼬여서가 아니기 때문이지 않을까. 그럴 때 실제 내 후임이 “선배, 진짜 선배 어떻게 견뎠어요? 대단해요. 저는 지금도 이렇게 힘든데. 지금까지 버티고 다닌 것만 해도 대단하다 생각해요”라고 말한 적이 있었는데, 마음이 사르르르 녹아버렸다. 선임에게 듣고 싶던 칭찬과 공감을 후배에게 듣게 되자 어린애처럼 얼었던 마음이 풀어져 버리더라. 결국 나의 노력을 알아주는 누군가가 있다면- 어느 정도 치료되는 것이 또 상처 받은 마음이 아닐런가 생각했었다.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건 애정 어린 위로예요


시어머니도 그런 관점에서 보면 어떨까. 그녀 역시 우리 엄마와 같은 세대이다.

나는 엄마와 이야기를 하면서도 답답해서 가슴을 치는 경우가 한두 번이 아니다. 네 살 터울의 오빠가 있는데, 엄마는 기억도 못하지만 나는 느끼는 차별적 경험이 분명히 있다.

제사 준비는 여자가 해야 하고, 오빠가 배고프면 라면도 내가 끓여주어야 했다. 밥 차리면 수저를 놓는 것도 당연히 나의 몫. 자라면서는 당연하다 생각했는데, 학교를 다니고, 책을 읽고, 사회생활을 하면서 이 모든 게 당연한 일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이상하다고 느꼈지만, 그게 정말 잘못된 것이라고 느낀 건  대학생 때 쯤이었던 것 같다.

성인이 되어서였을까. 모두가 나를 하나의 동등한 존재로 대하는 게 꽤 괜찮은 기분이었고, 비로소 어른이 된 기분이었다. 그렇게 자존감이 점점 커져가면서 집에서는 엄마와 다투는 일이 잦아졌다.

엄마가 당연하게 시키던 일들이 싫었다. 그래서 다투다가 엄마에게 그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엄마들은 다 이상해. 지금 엄마 세대들은 큰 착각을 하고 있어. 우리를 왜 대학에 보낸 거야? 왜 공부를 시킨 거야? 옛날 엄마 세대라면 지금 당연히 결혼하고 집에서 애나 키우고 있겠지?

남들이 다 하니까, 내 자식도 대학은 나와야지. 대학은 나와야 해.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으면서, 정작 그 대학에 가서 내가 무엇을 배우는지에 대해선 생각해 본 적이 없지?

나는 대학에서 남성과 여성은 평등하다 배워. 여기선 남자라서, 여자라서 더하는 거 없어. 사회적 차별이 만연한, 그래서 여성이 인권을 보장받지 못하는 나라들에 대해 공부한다고. 토론도 하면서.

그렇게 애써서 날 대학까지 보내 놓고, 이제 와서 다시 우리나라의 옛날 여성처럼 살라고 갑옷을 입히는 거야? 난 그렇게 못살아. 그렇게 살기에 너무 다른 세상을 봐버렸어.


아마 그렇게 쏟아붓고 나서 엄마는 아무 말도 못 했던 것 같다.

그저 열심히 남들보다 뒤쳐지지 않으려 애쓰며 우리를 키우려 고생했음을 그 누구보다 잘 아는 나였다. 집안 사정 때문에 공부를 잘했음에도 학업을 이어가지 못하고 취업을 했어야 했던 시대에서 자라서 자식 둘을 대학에 보낸 것을 당신의 큰 성공이라 믿는 우리 엄마.

그렇지만 엄마 역시도, 그 노력의 혜택으로 내가 어떠한 교육을 받았는지 그리고 어떤 생각을 가진 여성으로 자랐는지까지는 몰랐을 터이다.


그래서, 나는 우리 어머니들이 측은하고, 안타깝다. 처음에는 그녀들도 불편하다 느꼈을 상황과 감정들이 불평등한 시대와 맞물려 당연하다 주입되고 인지되어버린 시대의 부작용이 아닐는지.

82년생의 김지영으로부터, 자신과는 다른 삶을 살라고 인지하고 발버둥 치는 김지영의 어머니와- 여전히 옛 생각에 매몰된 그 시어머니를 보면서 나는 나의 미래가 궁금해졌다.  

나는 어떠한 어머니가 될 것인가. 분명한건 나도 결국은 그들이 걸어간 그 길을 걷게 될 것이라는 점이다. 다만 걸어가는 그 모양새가 어떨지는 지켜봐야겠지만. 


그리고 미혼자들이 기혼자들의 하나하나의 케이스들에 (특히 시월드 이야기에) 너무 감정 이입하고 배척하지 않게 되길 바라본다. 왜냐면, 결국 그들도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을 하게 된다면 걷게 될 길인데, 같은 여자들끼리 배척해봐야 여성문화 발전에 도움이 크게 되지 않으리란 생각에서.

차라리, 우리가 우리 부모님들을 한번 더 보듬어 주는 건 어떨까. 싫다고 밀어내지만 말고, 추워진 날씨에 옷 따뜻하게 입고 다니시라고. 어머님 감기 조심하시라고 문자라도 한번 보내서 따뜻한 마음을 전하는 일. 


상처 받은 마음을 치료하는 데에는 위로가 가장 큰 답이다. 김지영만 위로가 필요한 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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