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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u Dec 27. 2024

사람공부

공구 가방을 놓고 간 기술자

인터넷이 느리고 자주 끊어지는 문제가 발생했다. 고객센터에 전화를 걸었고, 다음 날 아침, 기사가 집을 방문하기로 했다. 그는 약속된 시간에 맞춰 도착했다. 그가 집에 도착했을 때, 첫인상은 단정하고 정중했다. 옅은 푸른 작업복에, 그의 이름이 적힌 작은 배지가 왼쪽 가슴에 달려 있었다. 그가 나를 맞이할 때의 첫마디는 상냥했다.


"안녕하세요, 인터넷 점검하러 왔습니다."


목소리는 평범했고,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인사를 건넸다. 그의 말투에는 긴장감과 급함이 묻어있었지만, 자신감이 넘쳐 보였다. 손에는 공구 가방을 들고 있었다. 그 안에는 필요한 도구들이 체계적으로 배치되어 있을 것이라는 인상을 주었다. 그의 눈빛은 다소 느끼했지만, 불편함을 주지 않으려는 듯 주의를 기울여 바닥을 바라보았다. 움직임은 빠르고 정확했다. 마치 그가 이 집의 인터넷을 고쳐본 일이 수십 번은 될 것처럼, 문제의 본질을 바로 짚어내며 작업을 시작했다. 그의 자세나 태도는 매우 프로페셔널해 보였고, 마치 이 일이 그에게는 너무 익숙한 일이라는 듯, 덤덤하고 침착한 표정으로 작업을 진행했다. 나는 그가 문제를 해결하는 동안 그저 조용히 서 있었다. 그때만큼은 그가 내 집에 들어온 낯선 사람이라는 사실도, 그가 내 일상에 잠깐 머물게 된다는 사실도 잊을 수 있을 정도로 그저 '기술자'라는 느낌이 강했다. 문제가 된 인터넷은 단 10분도 되지 않아 해결됐다. 작은 기계적 고장이었다. 그가 떠난 후, 아무 일도 없었던 듯이, 인터넷은 다시 정상적으로 작동했다.

그리고 불안이 시작된 건 그날 밤 10시, 휴대폰 진동이 울린다. 그 메시지는 아침에 만났던 인터넷 기사의 것이었다.  


 "공구 가방을 놓고 왔으니, 지금 집으로 가겠다"는 내용이었다.


밤 10시, 이 시간에, 그가 내 집에 찾아올 수 있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다. 너무 이상했다. 집에 들어왔다면 누가 봐도 혼자 사는 여자의 집이라는 걸 알았을 테고, 그것도 그렇게 늦은 시간에… 그 메시지를 본 순간, 이건 뭔가 이상했다. 나의 공간, 내 사적인 세계에 대한 침범처럼 느껴졌다. 그 순간, 내 머릿속에서는 온갖 상상이 떠올랐다. 그가 정말 도구 가방을 놓고 갔을까? 아니면, 그저 핑계일 뿐일까? 그는 단지 도구 가방을 가져가고 싶었던 것일까? 아니면 그보다 더 깊은 의도가 숨겨져 있는 걸까? 나는 그에게 답문을 보냈다.


"지금 집에 없으니 내일 아침에 오세요."


그 대답은 마음속에서 떠오른 가장 자연스러운 반응이었다. 하지만 마음 한 구석에서는 이미 이 상황이 내가 컨트롤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서는 것처럼 느껴졌다. 잠시 후, 다시 한번 휴대폰에 메시지가 왔다. "집에 가서 공구 가방을 찾아 가지고 갈 테니 도어록 비밀번호를 알려달라"는 내용이었다. 내가 아침에 만났던 그 친절한 기사가 맞나? 심장이 심하게 요동쳤다.


혼자 사는 여자의 마음은 늘 긴장 속에 있다. 아무리 작은 일이라도, 그것은 지나친 경계심이 아니라, 살아남기 위한 본능이었다. 당시 뉴스에 혼자 사는 여자를 타깃으로 노리고 범죄를 저지르는 프로를 너무 많이 봐서일까? 뉴스에서 봤던 사건들, 범죄의 피해자가 된 사람들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혼자 사는 여자가 타깃이 되는" 그런 뉴스들 속에서 나는 언제나 그들 중 하나가 될 수 있다는 생각에 몸서리쳤다. 그리고 그 생각은 단순한 상상이 아닌, 내 안에 누적된 현실적인 두려움이 되었다.


인터넷 뒤편에 감춰져 있던 공구 가방을 꺼내 현관 밖으로 내놓았다. 밖에 놔두면 그가 아침에 와서 가방을 가져갈 수 있을 테니까. 그 와중에, 그 기사가 이 공구 가방이 없어서 다음날 일을 못하는 불상사는 없기를 바라는 내 마음이 짜증스러웠다.


'지금 내가 누굴 걱정하고 있는 거지?'


나는 핸드폰을 끄고 잠을 청했다. 하지만 불안감은 조금도 가시지 않았다. 계속해서 그 상황에 대해 생각했고, 그 상황은 끝까지 나를 끌고 들어갔다. 그가 내 집에 다시 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꼬리를 물었다.

이런 무서움과 불안감을 떨쳐버리고자 결혼할 수는 없는 거 아닌가? 갑자기 신세타령 같은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잠을 자야 한다는 생각에 잠이 들려했지만, 불안은 자꾸만 나를 깨워놓았다. 잠이 깊지 않았다. 언제든지 깨어날 준비가 되어 있었다. 불안정한 마음이 나를 계속해서 잠에서 깨우고 있었다. 잠든다고 해서 불안이 자라지는 건 아니었다.

그렇게 아침이 되었다. 출근 준비를 하고 신발장에서 신발을 꺼내려할 때, 갑자기 현관 밖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내가 문을 열기라도 하면 그와 얼굴을 마주칠 것만 같았다. 누군가 내 집 앞에서 서성거리는 발소리였다. 나는 뭘 이렇게 두려워하는 걸까? 그런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현관 밖으로 공구 가방은 사라졌다. 그가 찾아갔겠지. 그런 생각에 마음이 조금 놓였다. 하지만 그 안에 여전히 가라앉지 않는 불안이 남았다.


그 후로 며칠간, 현관 앞에서 나는 종종 부스럭거리는 소리에 깨어났다. 작은 소리에도 반응하며 잠을 설치기 일쑤였다. 이런 일이 내게만 일어난 일은 아닐 텐데... 아마도, 혼자 사는 많은 여성들이 겪고 있을 현실이지 않을까? 대한민국은 안전한 나라라고 말하지만, 뉴스에서 흔히 접하는 혼자 사는 여성을 대상으로 한 사건들을 볼 때마다, 그렇게 안전하다 할 만한 사회는 아닌 듯하다.


그 사건은 시간이 지나며 잊혔지만, 1년 후, 또 인터넷 속도가 느려지기 시작했다. 그때, 그 불안감이 다시 슬금슬금 올라왔다. "서비스를 요청하긴 해야 하는데, 그러면 또 그 기사가 오면 어떡하나?" 하고 고민하며, 차일피일 미루고 있었지만, 인터넷 없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업무 환경 덕분에 결국 다시 인터넷 서비스 센터에 문의를 했다.


상담원은 곧 기사를 배정해서 집으로 보내겠다고 했다. 그 순간, 1년 전 그 이야기를 상담원에게 털어놓았다. "그때 그 기사가 밤늦게 문자를 보냈고, 도어록 비밀번호까지 요구했어요. 너무 불안했어요." 상담원은 잠시 침묵을 지킨 후, 놀란 목소리로 말했다. "그런 일을 겪으셨다니, 정말 죄송해요. 저도 너무 놀라네요. 그 기사에게는 컴플레인을 반드시 해 놓겠습니다."


상담사의 한 마디에, 나는 문득 왜 진작 이 상황을 서비스센터에 말하지 않았을까, 1년이나 이 시간을 지나치게 내버려 두었을까 하는 생각이 스쳤다. 그동안 내 마음속에서는 계속 불안이 끊이지 않았고, 그때마다 혼자서 끙끙 앓고 있던 게 너무도 후회스러웠다. 왜 그토록 내 스스로만 이 문제를 감당하려 했던 걸까? 처음엔 그저 지나가는 일이라 생각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그 불안감은 커져만 갔다. 그리고 1년이 지난 이제야 그 모든 일이 누군가와 공유될 수 있다는 사실에, 비로소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었다.


어쩌면 그동안 나는 너무 많은 것들을 혼자 감당하려 했던 건지도 모른다. 불안과 두려움 속에서 느낀 감정들은 누구에게도 털어놓지 못한 채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더 커져만 갔다. 나 자신을 지키려 했던 방식이 오히려 더 큰 상처를 남겼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공구 가방을 놓고 간 기술자의 방문이 더 이상 두렵지 않았고, 나를 향한 두려움과 방어의 벽이 서서히 무너져 내리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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