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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u Dec 26. 2024

사람공부

사라지는 사람

어느 날 문득, 

내 삶에서 사라지는 사람을 떠올린 적 있는가. 아무런 설명 없이 연락이 끊기고, 흔적마저 증발해 버린 이별. 그것은 단순한 사건이 아니라, 관계의 붕괴였고, 남겨진 사람의 세계를 무너뜨리는 폭풍이었다. 코로나로 온 세상이 멈춰 있던 그 시절, 나는 한 남자와 그렇게 이별했다.


그날은 그의 생일이었다. 우리는 만나기로 약속했고, 나는 작은 선물을 준비하며 설렘으로 하루를 시작했다. 하지만 그는 약속 장소에 나타나지 않았다. 걱정과 초조함 속에 나는 그의 모습을 상상했다.


'혹시 오는 길에 사고가 난 건 아닐까? 어제 두통약을 먹었다던데, 혹시 약 기운이 너무 강해 아직도 일어나지 못한 건 아닐까?'


걱정은 점점 커져만 갔고, 기다림 속에서 내 마음은 불안으로 가득 찼다. 초조한 눈으로 지나가는 모든 사람을 살폈지만, 그 누구도 그가 아니었다. 3일이 지나고 나서야 그는 나타났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담담하게 말했다. "그날, 집에서 하루 종일 잤어." 그의 무심한 말은 내 마음에 깊은 파문을 일으켰다. 내가 느꼈던 걱정과 불안은 그의 세계에서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의 세계에서 나의 시간과 감정은 아무 의미가 없었다.


그날 이후, 그의 가스라이팅이 시작되었다. 내가 문제를 제기할 때마다 그는 나를 과민반응한다고 몰아세웠다. "넌 항상 너무 예민해. 내가 그렇게 잘못한 거야?" 그의 말은 날카로웠고, 내 자존감을 서서히 깎아내렸다. 그의 행동을 이해하려 노력할수록, 나는 점점 더 작아지는 기분이었다. 마치 그의 세계 속에서 나는 투명한 존재가 된 듯했다.


내가 살기 위해서는 그를 떠나야겠다는 생각에, 나는 그에게 이별을 고했다. 그의 놀란 표정이 눈에 선명하다. 그는 눈물을 보이며 마지막 기회를 달라고 애원했지만, 그의 말은 진심이 아니었다. 한 달도 지나지 않아 그는 또다시 잠수를 탔다. 그의 무책임함은 단순한 실수가 아니라, 그의 본성이었다.


그와 헤어진 지 2년이 지나서야, 나는 그의 흔적을 지우며 일상을 회복할 수 있었다. 그러나 관계가 끝난 지 오래였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다시 나타났다. 새벽마다 "자니?"라는 메시지로 나를 깨웠다. 그의 메시지는 목적 없이 반복되었고, 결국 그의 요청을 받아들여 마주 앉은 날, 그는 이렇게 말했다. "내가 잘못한 게 뭔데?"

나는 그 순간 깨달았다. 그는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묻는 사람이 아니었다. 잘못 자체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그는 관계를 통해 자신의 공허함을 채우려 했을 뿐, 나를 진정으로 이해하거나 존중하지 않았다. 그의 세계에서는 내가 그의 감정을 해소하기 위한 도구일 뿐이었다.


왜 그는 나에게 집착했을까? 아마도 그는 자신의 외로움과 상실감을 타인에게 전가하며, 순간적인 위안을 얻으려 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근본적인 해결이 될 수 없었다. 그는 관계를 통해 존재감을 확인하고자 했지만, 책임질 용기는 없었다. 나는 그의 감정적 불안을 잠시나마 덜어주는 역할을 했을 뿐, 그의 세계에서 진정한 동반자는 아니었다. 나는 더 이상 그의 감정의 소용돌이에 휘말리지 않기로 했다. 그의 세계를 떠난 순간, 나의 삶은 차분하고 평온한 리듬을 되찾았다.


그리고 1년이 더 지난 새벽, 그의 메시지가 도착했다. "메리 크리스마스."


휴대폰 화면을 바라보며 나는 미소 지었다. 그의 메시지는 간결했지만, 그 안에 담긴 의미는 분명했다. 그는 다시 그의 세계로 나를 끌어들이려 했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나는 이제 안다. 그의 외로움은 내가 채워줄 수 없는 것이며, 나는 더 이상 그의 세계 속에서 무너질 필요가 없다는 것을. 

이제 나는 그에게 답하지 않는다. 그의 메시지와 함께 떠오르는 과거를 차분히 응시하며, 나의 평온한 현재를 살아갈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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