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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이가는 Jul 18. 2019

헤어짐에 익숙해지지 않는 것에 익숙해지는 것  

외국생활은 만남과 헤어짐의 반복이다 


영국 생활 2년 동안 수많은 사람들과 만나고 헤어졌다. 처음엔 눈물 콧물 다 빼며 헤어지고 돌아섰는데, 이상하게 그럴수록 빠르게 일상에 복귀하는 것이 허무하기도 하고 다시 만나게 되었을 때 조금 머쓱하기도 했다. 그때부터였을까- 어떻게 헤어지는 것이 잘 헤어지는 것인지에 대해 고민하는 것이. 지금의 헤어짐이 끝이 아니라는 기분으로 서로의 앞날을 축복하며 헤어지는 법 말이다. 


거의 1년을 자매처럼 동고동락했던 프리실라와 헤어지며 나는 내가 대성통곡을 할 줄 알았다. 그런데 웬일인지 끝끝내 눈물이 나지 않았다. 오랫동안 프리실라를 안아주며 지구 어디에선가 다시 보자며 기도제목을 가지고 함께 기도하자며 그렇게 이야기하고 헤어졌다. 동생이 오랫동안 만났던 여자 친구와 헤어졌을 때, 마치 내가 헤어진 것처럼 한동안 마음이 시큰했다. 인사할 틈도 없이 이제는 모르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 서로가 궁금해도 안부를 물을 수 없는 사이가 되었다는 것이 믿기지 않아 몇 날 몇 밤을 잠 못 이루기도 했다. 또 독일을 떠나오는 공항에서 가족들이랑 헤어질 때는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헤어지기 10분 전까지만 해도 조잘조잘 떠들었는데 엄마 아빠와 인사하는 모습을 한 발짝 뒤에서 바라보는 언니를 보자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바보같이 공항 검색대를 통과하며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독일 생활 (a.k.a 외국생활)을 하다 보면 내 인생에 많은 사람이 오고 간다. 우리 집 가까이에는 친하게 지내는 부부가 있다. 응답하라 드라마에 나오는 것처럼 서로의 오늘 내일 반찬을 빤히 알고, 솥단지나 그릇같은 살림살이를 서로 공유하는 사이이다. 그 집 손님이 곧 우리 집 손님이고, 하루가 멀다하고 모여서 게임을 하는 가족같은 존재다. 주말이면 프랑스와 룩셈부르크 등 근처 맛집들을 찾아 쏘다니곤 했다. 그런데 이 부부 또한 조만간 새로운 보금자리를 떠나 독일을 떠난다. 이제 곧 소중한 사람들이 떠난다는 것이 믿기지가 않는다. 우리 부부가 신앙의 문제나 진로의 문제를 맞닥뜨릴때마다, 기꺼이 집을 열어주고 따뜻한 차를 내어줬던 친구들이 떠난다는 것은 우리가 가지고 있던 이 독일 땅에 대한 따뜻한 기억이 하나 없어지는 것 같아 아쉬움을 감출 수가 없다. 또 한편으로는 소중한 사람을 보내는 헤어짐의 순간을 다시 한번 맞게 된다는 것이 두렵기도 하다. 아니 그들의 부재를 온몸으로 맞아낼 그 순간이 벌써부터 두려운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들이 없는 일상을 너무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자신도, 그리고 그들의 부재를 너무 그리워하는 자신도 맘에 들지 않으리라. 이렇게 조만간 다가올 헤어짐을 준비하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정말 헤어짐에 익숙해질 수 있을까? 

평생 익숙해지지 않는 일인데 왜 나는 이렇게 익숙해지려고, 강해지려고 발버둥 치고 있는가. 


헤어짐에 익숙해진다는 것은 그 사람과 쿨하게 헤어지는 법을 배우는 것이 아니라, 헤어짐이 인간 삶의 한 부분임을 인식하고 때와 상황에 맞게 유동적으로 대처하는 것을 배우는 과정이 아닐까. 사랑한 만큼 축복해주고, 좋아했던 만큼 아쉬워하며 그렇게 돌아서는 것이 헤어짐에 익숙해지는 것이 아닐까. 아니 어쩌면, 헤어짐에 익숙해지지 않는다는 것을 인정하고 그 자체에 익숙해지는 것 아닐까. 


그래서 우리 부부는 현재에 충실하기로 했다. 정해진 시간은 언젠간 오는 것이니, 우리가 바꿀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하지만 우리는 현재의 기억을 최고의 것으로 만들 수는 있다. 더 많이 웃고, 함께 보내는 시간에 더 충실하고, 서로의 좋아하는 것을 기억하며 보내는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만남과 헤어짐은 마치 시간의 흐름처럼 막을 수 없는 인간 삶의 필연적인 순간이다. 

만남과 헤어짐이 없이는 시간이 지나가지도, 생의 진보도 없다. 

그래서 나는 이 헤어짐의 시간을 우리의 성장의 시간이라고 믿고 이 시간을 최고의 것으로 만들기를 다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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