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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 이 Oct 18. 2021

6. 할머니 댁 주스병에 가득차 있던 시원한 보리차

완벽하지 않기에 더 완벽한 지속가능한 삶의 기록

6. 할머니 댁 주스병에 가득차 있던 시원한 보리차


어릴 적부터 할머니 집을 가면 항상 냉장고엔 옛날 델몬트 주스 유리병에 갈색 보리차가 가득 담겨 있었다. 그 병을 꺼내 유리컵에 따라 벌컥벌컥 마시면 얼마나 시원하고 고소하던지, 게다가 왠지 할머니가 만든 간이 짭쪼름한 된장짜글이와도 잘 어울렸던 것 같다. 그래서 나에게 '보리차'는 할머니가 생각나는 물이다. 


부모님과 함께 살 적엔 정수기가 항상 집에 있어 생각없이 정수기 물을 마셨던 것 같은데 대학교 2학년 첫 자취를 시작한 이래, 혼자 살면서 물은 항상 '사먹는 것'으로 변했던 것 같다. 장을 보면 항상 2리터 짜리 물통 한 두개는 꼭 사기 마련이었고, 가끔 한 뭉탱이로 묶어 파는 상품을 온라인에서 발견했을 때는 바로 집으로 배송이 되도록 주문을 하기도 했다. 그래서 항상 재활용품을 내놓는 날이면 물통만 한가득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플라스틱 띠지를 떼서 올바르게 버린 것 같지도 않다.) 


현재 한국에서 '브리타 정수기 열풍'이 불고 있다고 들었다. 필수자취템으로 여겨지며 매번 물을 사지 않고 필터만 구매해 3개월마다 갈아주면 된다니 이렇게 간편할 수가 없다. 환경까지 보호해준다니 1석2조 아닌가! 내가 브리타를 처음 접한 때는 한국에 열풍이 불기 전, 캐나다로 이사를 왔을 때였다. 여기 캐나다에는 브리타 정수기는 이미 집집마다 사용되고 있는 아이템이었다. 다양한 제품들이 기능별 사이즈별로 존재했고, 필터를 구하기도 쉬웠다. 


하지만 이런 저런 장점들에도 불구하고 난 현재 브리타 정수기를 사용을 하지 않고 있다. 왜일까? 일단 필터를 재활용하기가 간단하지 않다. 한국에도 올해 2021년부터 필터 수거 서비스가 생겨났다고 들었다. 캐나다 Brita 도 테라사이클이라는 재활용기업과 함께 필터 뿐만이 아닌 브리타 정수기를 통해 나오는 모든 재활용품을 수거하는데 그 과정이 그냥 간단하지만은 않다. 일단 일정량의 사용한 필터를 모아야 하며, 인터넷을 통해 수거신청을 하고, 박스에 필터를 모아 넣어 택배를 보내면 된다. 뭐 이정도야 간단하지, 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분명 있겠지만 귀차니즘의 끝판왕인 나에게는 간단한 작업이 절대 아니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이 수거방법을 잘 지키는 사람도 있겠지만 분명 그 중엔 후에 귀찮음으로 필터가 그냥 일반쓰레기로 버려지는 경우도 있을 거라 생각한다. (나도 몇 번의 귀찮음으로 그런 적이 있기 때문에)


게다가 필터가 개별적으로 플라스틱 봉지에 포장되어 있는 것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이런 봉지들도 수거해간다고 하지만 작은 소프트플라스틱 봉지들은 그냥 휙-하고 쓰레기통으로 향하기 더더욱 쉽기 때문에 주의를 기울이고 매번 신경쓰지 않는다면 일반쓰레기만 늘어날 뿐이다.   


게다가 재활용은 제로웨이스트와 같은 말이 아니다. 다시 최대한 활용이 되긴 하지만 제대로 분리되어 버려지지 않는다면 일반 쓰레기로 가기 십상이다. 그래서 나는 내가 완벽하게 재활용품을 분리 배출하지 못할 바엔 재활용품을 최대한 만들지 말자라고 다짐했다. 브리타 정수기도 그렇게 사용을 중단하게 되었다. (*너무 브리타 정수기에 단점을 나열한 기분이 드는데, 에피소드 4에서도 말했듯 '나'에게 맞지 않는 방법이었을 뿐이지, 누군가에게는 찰떡같이 맞는 방법일 수도 있기에 이 글을 읽고 브리타 정수기에 대해 부정적으로 생각하지 않았으면 한다. 브리타가 친환경적인 제품인 것과 브리타로 인해 나오는 물품들의 재활용을 최대한 도와준다는 점은 분명하다.)


브리타 정수기를 쓰지 않기로 다짐한 나는 대체품을 찾기 시작했고, 그러다 생각난 것이 할머니의 보리차였다. 보리차를 끓이면 일단 필터는 필요하지 않고 — 내가 사는 지역의 물은 다행히 비교적 깨끗해 끓이기만 해도 왠만한 세균들을 제거해 안전하다. — 필요한 것이라고는 겨우 물을 끓일 주전자와 함께 끓일 보리알곡 뿐이다. 게다가 끓이고 남은 보리알은 Compost 로 분류되어 음식물쓰레기와 함께 자연으로 돌아가니 쓰레기가 전혀 나오지 않아 재활용을 할 필요도 없어 나에겐 정말 안성맞춤인 대체 방법이었다. 벌써 이렇게 물을 바꿔마신 게 2년이 훌쩍 넘어가고 있는데, 조금만 번거로워도 금세 싫증을 내는 내가 이렇게 꾸준히 보리차를 해 마신다는 건 이 방법이 정말 간단함과 동시에 쓰레기를 정말 최소한으로 만든다는 뜻이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물이 맛있다! 할머니 보리차를 그렇게 좋아했으면서 왜 진작 내가 그렇게 끓여 먹을 생각은 하지 못했었는지... 


물은 우리가 매일같이 소비하는 것이기에 식수를 얻는 방법에서 500ml, 2l 물병 쟁이기보다 친환경적인 방법을 찾아 실천한다면 그 효과는 엄청날 것이라고 믿는다. 당장 브리타든 보리차든 한 번 실천을 해보길 권한다. 많은 사람의 작은 한 걸음은 예상외의 큰 결실로 다가올 때가 많다. 




완벽하지 않기에 더 완벽한 지속가능한 삶의 기록.

그 여섯 번째 기록 2021.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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