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리던 일하기의 즐거움
초창기 홀케이크 장식을 보면 주로 허브와 작은 꽃으로 포인트를 주는 정도였다. 꽃 종류가 많지 않은 이유도 있지만 기껏 완성해 놓은 케이크를 장식하다가 망쳐버리면 안 된다는 생각에 소심했다. 실력이 부족한 만큼 다양한 꽃에 대한 욕심은 커졌고 가꾸는 식용꽃의 종류를 늘려갔다.
사실 꽃을 따서 케이크에 장식하는 작업은 어려움보다는 재미를 느끼는 부분이었다. 꾸미기를 좋아하는 취향과 해야 하는 일이 맞닿는 유일한 지점이었다. 한번 꽃을 놓은 자리에는 자국이 남아 수정할 수 없으니 소심하게 꽃을 얹던 손은 어느새 적응이 되어 과감해졌다.
꽃으로 케이크를 장식하는 데 있어서 어떤 규칙 같은 건 없다. 세상의 예쁜 것들을 좋아하기는 하지만 디자인이나 미술 전공자가 아닌 내가 어떤 예술적 지식을 바탕에 두고 작업을 했던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누구에게도 의지할 수 없기 때문에 인터넷을 통해서 꽃을 활용한 다양한 디자인들을 찾아보는 정도가 일을 하며 장식을 예쁘게 하기 위해 할 수 있는 유일한 노력이었다. 예전에 취미로 도자기에 그림을 그리는 포슬린 페인팅을 배운 적이 있는데 그때 많이 봤던 접시의 디자인이 도움이 되기도 했다. 접시의 동그란 테두리가 케이크의 윗면과 꼭 닮아있었다. 케이크 장식보다는 접시나 도자기 장식을 더 많이 참고했던 것 같다. 하얀 케이크 위를 장식할 땐 내 눈에 편안해 보이는 모양과 질서로 꽃을 나열한다. 색감과 모양을 요리조리 살펴보고 그저 내 눈에 거슬리지 않는 위치와 질서대로 놓는다. 그날의 느낌에 따라 난 미니멀리스트가 되기도 하고 맥시멀리스트가 되기도 했다.
케이크의 윗면만을 장식하다 보니 왠지 심심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꽃은 꽃 자체로도 충분히 예쁘지만 난 그 꽃이 달린 줄기와 잎까지 모두 이어진 본연의 모양을 더 좋아한다. 특히나 다양한 잎사귀의 모양은 꽃을 보는 것만큼의 즐거움을 준다. 유난히 케이크의 옆면이 넓게 보이던 어느 날 테스트 삼아 남은 케이크의 옆면에 꽃과 줄기를 붙이기 시작했다. 내가 보기에는 만족할만한 결과라고 생각해 계정에 결과물을 올렸고 생각보다 사람들의 반응도 좋았다. 아직 판매까지 이어진 시점도 아니었지만 충분히 뿌듯하고 일의 재미까지 느낄 수 있던 순간이다.
아, 내가 이런 거 하고 싶어서 케이크를 만들고 있구나.
종종 SNS에 업로드한 사진들을 바탕으로 손님들이 새로운 조합을 요청하는 경우가 있다. 처음엔 이상할 것 같다가도 막상 해놓으면 괜찮은 경우가 많았다. 그렇게 새로운 장식이 탄생하기도 하면서 지금처럼 다양한 디자인으로 장식을 할 수 있게 됐다.
직접 기른 생화를 활용해 장식을 하다 보니 치명적인 단점이 한 가지 있다. 바로 장식의 유효기간이 당일을 넘기기 힘들다는 것이다. 내 케이크의 장식은 즉시성이 생명이다. 덕분에 모든 손님들에게 찾아가실 날짜와 '시간'까지 꼭 확인해야 한다. 그리고 그 시간에 맞춰 30분 혹은 1시간 전쯤 꽃을 따서 장식을 한다. 예약이 적은 날엔 집에서 여유 있게 꽃꽂이를 하는 마음으로 한껏 데코레이션을 즐기지만 예약이 많아지는 주말엔 꽃을 따와서 씻고 말리고 다듬어 장식까지 해야 하는 모든 과정이 압박이 아닐 수 없다. 장식만이 전부가 아니기 때문이다. 특히 주말엔 만들어야 할 케이크도 평일보다 많고, 장식해서 내보내야 할 케이크도 많다. 손님응대와 서빙과 설거지를 함께 하다 보면 말초신경만으로 일을 하고 있는 게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
개인적으로 케이크는 하루 숙성을 마친 뒤 당일에 섭취하는 것이 가장 신선하고 맛있다고 생각하는데 그런 맥락에서 수명이 짧디 짧은 이 식용꽃들을 이용한 장식이 내 케이크에 가장 잘 어울리는 것 같다. 우리를 찾아주시는 손님들이 부디 꽃이 시들기 전에 신선하고 맛있는 케이크를 드셔주시기를 바라며 오늘도 오늘의 꽃잎을 다듬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