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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런이유지 Apr 07. 2024

잘 사는 기분

휴일 전날, 하루만 더 지나고 나면 한 주의 고생을 보상받을 생각에 마음속 보상 심리가 움직인다. 피로가 말캉말캉 부드럽게 녹아내리는 듯하다. 세상에서 가장 여유롭고 편안하며 우아하고 세련된 모습으로 휴일을 맞이할 준비가 되어 있다. 일과 육아에서 벗어나 자유를 만끽할 수 있는 화요일이 기다리고 있다. 아이가 어린이집에 간 후 하원 할 때까지의 시간이 바로 그 자유의 시간이다. SNS 피드를 스크롤하며 아이와 함께할 수 없는 핫플레이스와 맛집들을 상상한다.


하지만 휴일 당일, 전날의 원대한 꿈과 계획은 사라지고 지친 몸을 이끌고 겨우 아이를 등원시킨다. 정리되지 않은 옷장에서 대충 외출복을 골라 남편과 함께 집을 나선다. 휴일엔 맛있는 것을 먹거나 말끔히 차려입은 사람들이 모이는 장소에 가는 것이 위안이 되는 것같다. 돈을 벌고 아이를 키우느라 고생했으니 쉬는 날 정도는 특별하게 보내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의 방문 후기를 찾아보며 전시회도 가고, 맛집도 가고, 계절마다 바뀌는 자연 명소도 방문한다. 하고 싶었던 것들을 하고 돌아오는 길은 뿌듯하고 만족스러워야 하지만 어쩐지 공허함이 밀려온다. 그리고 그 공허함은 일상으로 돌아와 일을 하면서도 계속됐다.


삶이 충분하지 않다고 느낄 때 물질적 보상을 갈망하는 시기도 있었다. 가방이나 옷, 장신구, 심지어 차나 새로운 집으로의 이사까지 모든 것을 바꾸고 또 많은 것을 갖고 싶었다. 그러다가 그런 것들을 모두 갖지 못하고 원하는 대로 할 수 없는 나의 능력을 원망하기도 했다. 물질에서 잘살고 있다는 느낌을 얻으려 할수록 세상은 한 발씩 멀어져 갔다. 물건들이 내 것이 되고 익숙해지면 금세 사라지는 한 겹 짜리 단순한 보상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것들을 대신해서 잘 사는 기분을 느끼게 해줄 다른 것들은 떠오르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고추장의 고춧가루 함량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피드를 보고 고추장을 직접 만들어보기로 결심했다. 만드는 방법이 담긴 영상을 찾아보니 그 과정이 생각보다 어렵지 않아 보였고, 곧 바로 고추장 만들기에 필요한 재료들을 온라인으로 주문했다. 재료가 모두 도착하고 맞이하는 휴일이 디데이였다.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고 잠옷을 입은채로 작업을 시작했다. 빠르게 마무리하고 남편과 잠깐 근처 카페라도 다녀올 생각이었다. 하지만 단순해 보이던 고추장을 만드는 일은 생각보다 시간이 오래걸렸고 마음처럼 잘 되지 않았다. 겨우 완성은 했지만 최소 3개월은 숙성해야 맛볼 수있는 고추장의 특성상 성공여부도 바로 알지 못한채 마무리를 해야했다. 그리고 아이가 집으로 돌아올 시간이 다 돼서야 부랴부랴 뒷정리를 시작할 수있었다.


유년 시절 외식 문화가 일상이 아니었을 때 가족과 함께 동네 식당에서 고기를 구워 먹던 추억이 있다. 같은 음식을 먹어도 식당에서 먹는 밥은 집에서 먹는 것보다 더 맛있었다. 삼 남매로 자란 우리는 주로 엄마가 해주신 밥을 먹었는데 식당처럼 일관된 맛을 내지 못하는 엄마의 요리 솜씨가 늘 아쉬웠다. 몇 개월에 한번씩 친가와 외가에서 보내주는 반찬 택배를 정리하며 패밀리레스토랑을 떠올렸다. 가끔 친구들과 돈을 모아 그런 곳에 가서 여유 있어 보이려고 애쓰던 모습이 떠오른다. 한창 사춘기가 시작되던 시기였다.


이제는 성인이 되어 언제든 레스토랑에 갈 수 있게 되었지만 맛있는 음식을 찾아 외식을 하면 할 수록 엄마의 음식과 그 따뜻한 온기가 그리워진다. 밥 짓는 냄새 가득한 집에서 놀다가 밥상으로 쪼르르 모여들던 우리의 모습이 선명하게 기억난다. 그 기억은 어떤 어려움을 겪어도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힘의 근원이었다. 아이의 밥을 챙기며 탄수화물과 단백질, 지방, 채소가 골고루 없는 식탁을 볼 때, 혹은 인스턴트 음식을 나눠 먹을 때 느끼던 죄책감은 바로 집안 가득한 밥 짓는 냄새의 부재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바쁜 현실에 숨어 간편한 것들로 엄마의 역할을 대신하려 했지만 그것으로는 충분하지 않았다. 주방을 둘러보니 싱크대는 며칠째 말라 있고 냄비와 프라이팬에는 먼지가 쌓여 있었다. 생동감 없는 세트장을 바라보는 느낌이었다.


그로부터 얼마 후 남편과 아이를 주방으로 불러 함께 만두를 빚고 찜기에서 갓 나온 뜨거운 만두를 나눠 먹었다. 또 어느 날은 떡갈비도 만들어보고 실패하더라도 맛있는 음식을 가족들과 나눠 먹는 시간을 자주 만들었다. 퇴근 후 장을 본 후 집으로 돌아와 재료를 준비하고 먹고 치우는 모든 과정이 번거롭고 시간이 오래 걸렸지만 효율이나 가성비같은 것들은 중요하지 않았다. 요리를 할수록 삶이 풍요롭고 만족스러워졌다. 내가 주방에서 움직이면 남편도 신이 나서 재료를 사러 가고 요리하는 모습을 사진으로 담느라 바빴다. 어릴 적 내가 그랬듯이 아이는 엄마의 요리가 최고라며 엄지를 치켜세워 보여준다.


일과 육아를 병행하며 피곤하고 힘들어도 식재료를 고르고 요리하는 행위가 필요했다. 보상을 바라며 고급 레스토랑을 찾던 나는 이제 휴일이 되면 오일장을 찾아 장을 본다. 스마트폰 알고리즘에는 요리 콘텐츠가 늘었고, 최근에는 두부를 직접 만들어 먹기도 했다. 고추장이나 두부 같이 멀게만 느껴지던 음식들을 직접 만들며 언제든 내가 원할때 맛볼 수있다는 사실에 성취감과 같은 감정도 느껴졌다.


잘 사는 기분을 느끼게 해줄 나를 지켜줄 보호막은 당장 가질 수없는 저 반짝이는 것들이 아닌, 언제라도 가슴속에 남아있을 시절 마다의 기억이라는 사실을 알게됐다. 오늘도 사랑하는 가족과 이웃과 함께 나누어 먹을 것들을  생각하며 휴일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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