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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사서 Nov 05. 2020

세상이 더 탁월해질 수 있음을 배우는 것만으로도

김영민, 『공부란 무엇인가』




낄낄 웃으면서 읽었다. 만화책이냐고? 아니다. 그림이라고는 매 챕터 끝에 있는 공부하거나 책 읽는 명화들이 전부. 비유와 사건 설명이 너무 재밌어서 웃음이 끊이질 않았다. 옆에서 아기가 자고 있어서 숨죽이며 웃었을 때도 있었다.


'칼럼계의 아이돌'이라는 저자의 별명답게, 그의 문장 하나하나가 너무 재밌어서 시간가는 줄 모르고 읽었던 책이다. 책의 오른쪽보다 왼쪽 페이지가 더 두껍게 쌓여가는 게 아쉬웠던 책. 이 책은 중앙선데이에 실린 <공부란 무엇인가> 라는 그의 칼럼을 모아둔 책이다. 저자가 학자로서, 교수로서 생각하는 공부에 대한 글들을 적은 것. 책의 제목은 딱딱하지만 내용은 전혀 딱딱하지 않다. 일전에 유명했던 그의 칼럼 <추석이란 무엇인가>를 읽어보라. 그런 분위기다.


"따라서 “그런 질문은 집어치워 주시죠”라는 시선을 보냈는데도 불구하고 친척이 명절을 핑계로 집요하게 당신의 인생에 대해 캐물어 온다면, 그들이 평소에 직면하지 않았을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는 게 좋다. 당숙이 “너 언제 취직할 거니”라고 물으면, “곧 하겠죠, 뭐”라고 얼버무리지 말고 “당숙이란 무엇인가”라고 대답하라. “추석 때라서 일부러 물어보는 거란다”라고 하거든, “추석이란 무엇인가”라고 대답하라. 엄마가 “너 대체 결혼할 거니 말 거니”라고 물으면, “결혼이란 무엇인가”라고 대답하라. 거기에 대해 “얘가 미쳤나”라고 말하면, “제정신이란 무엇인가”라고 대답하라. 아버지가 “손주라도 한 명 안겨다오”라고 하거든 “후손이란 무엇인가”. “늘그막에 외로워서 그런단다”라고 하거든 “외로움이란 무엇인가”. “가족끼리 이런 이야기도 못하니”라고 하거든 “가족이란 무엇인가”. 정체성에 관련된 이러한 대화들은 신성한 주문이 되어 해묵은 잡귀와 같은 오지랖들을 내쫓고 당신에게 자유를 선사할 것이다. 칼럼이란 무엇인가. (경향신문. (2018.9.21.). 추석이란 무엇인가 중 인용)


책을 읽으면서는 초반 강의실의 대머리 사건부터 너무 재밌어서 한껏 웃는다. 나는 책을 읽다 인상깊은 구절을 어떤 어플에 적는데, 거기에 그냥 이렇게 적혀 있다. "28쪽 대머리 넘웃김ㅋㅋ" 하지만 그렇게 한창 재밌다가도 글의 마무리 즈음에는 정신을 차리게 되는 글들이 대부분이다. 웃기기만 한 책이 아니라는 말이다. 하고 싶은 말이 명확하다. 입시로 점철된 젊은이들이 대학에서 마땅히 공부해야 하는 것들, 성숙한 시민으로서는 무엇을 공부해야 하는지 등에 대해 논한다.(프롤로그 중) 뒤에 실린 인터뷰어의 말을 빌리자면 "공부란 대학에 가기 위해 하는 것이 아니라 대학에서 하는 것이며, 대학에 가서는 무엇을 어떻게 배우면 좋은지에 대한 논의들(248 p.)"이다.


나는 사실 일개 학사학위 소유자라 잘 모르지만, 대학원에서는, 세미나에서는, 학회에서는 이런 일도 일어나는구나, 싶은 세계가 펼쳐진다. 많이 배운 사람들이라 해도 그냥 다 똑같구나, 가르치는 입장에 있는 사람들이 발표를 안 하니 배우는 사람들은 오죽하려나. 싶은 생각들. 어떤 부분에서는 교수들도 공부란 무엇인지 진지하게 생각해본 사람들이 몇이나 될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런 교수들에게 "공부란 무엇인가"라고 질문한다면, 물어보는 사람의 학점은 수직낙하하는 자유를 얻겠지.


여담이지만, 책을 읽고 나면 세상을 돌아다니며 정말 맛있는 티라미수를 찾아 대접해드리고 싶은 생각이 든다. 맛없는 디저트에 대한 '혐오'발언이 곳곳에서 엿보이기에. 아니 티라미수를 보면 교수님 글이 머릿속을 스칠 것만 같다. 부디 내일은 맛있는 디저트를 드시길 바라며.






▲ 추천하는 대상

- 막 대학공부나 대학원공부를 시작한 사람.

- 영양가 있는데 재밌는 글을 읽고 싶은 사람.

- 진짜 공부다운 공부에 대해 동기부여를 받고 싶은 사람.


▼ 비추하는 대상

- (딱히 없지만 굳이 꼽아보자면)이미 공부의 만렙에 오르신 분들.

- 이미 칼럼으로 꼬박꼬박 글을 접했던 사람.





* 남겨두기


"입시생으로 혹은 취업 준비생으로 이제 학생들은, 삶을 살아갈 만한 가치가 있는 것으로 만드는 노력보다는 삶을 그저 살아내기 위한 노력에 익숙해져야 한다. 그러면서 그 과정에 들어가는 노력과 시간 자체가 삶이라는 점을 망각하게 된다. 즉 삶을 현재와 동떨어져 전개되는 무엇으로 보도록 길들여진다. 그러나 그들이 탄 급행열차의 종착지에는 무엇이 기다리고 있단 말인가." - 11 p.


"이처럼 젊은 날 입시와 취업으로 환원되지 않는 어떤 공부를 할 기회를 박탈하는 것은 그 화려한 시간에 대한 모욕이 아닐까. 마치 날씨가 너무 좋은 날 경치가 아름다운 길을 돌아보지 않고 바삐 지나치는 것이 그 시간에 대한 모욕인 것처럼. 나중에 돌이켜본 자신의 화양연화가 기껏 수능 시험을 얼마나 잘 보았나, 혹은 얼마나 명문 대학에 입학했는가, 정도라면 그것은 그보다 흥미로운 지적 체험이 없었다는 자기 고백일 뿐이다." - 12 p.


"오스카 와일드는 '우리는 모두 시궁창에서 살아가고 있지만, 그 와중에도 몇몇은 별빛을 바라볼 줄 안다'고 말한 적이 있다. 우리 스스로가 별이 될 수는 없지만, 시선을 시궁창의 아래가 아니라 위에다 둘 수는 있다. 이 사회를 무의미한 진창으로부터 건져낼 청사진이 부재한 시기에, 어떤 공부도 오늘날 우리가 처한 지옥을 순식간에 천국으로 바꾸어주지는 않겠지만, 탁월함이라는 별빛을 바라볼 수 있게는 해줄 것이다. 이미 존재하는 더 나은 것에 대한 감수성을 길러주고, 나아가 보다 나은 것이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을 믿게 할 것이다. 그러한 믿음 속에서야 비로소 비방과 조소를 넘어서는 논리와 수사학의 힘을 빌려 공적 영역을 구성할 수 있을 것이다. 계속 읽고 쓰고 논의하는 과정에서 비로소 가능한 인간의 변화에 대해 믿게 될 것이다. 입시와 취업으로 전적으로 환원되지 않는 어떤 탁월함을 목표로 공부를 하게 될 때, 아마 한국인은 양념치킨보다 더 멋진 것, 이를테면 잘 양념된 삶을 이루고 향유하게 될 것이다." - 13 p.


"한국 사회의 경우, '착함'은 한때 높이 평가되던 미덕이었다. 그러나 언젠가부터 사회 일각에서는 '착하다'는 말이 미모, 재력, 지성, 학식 등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그리하여 결국 내어놓을 것이 모나지 않은 성격뿐이라는 뜻으로 사용되곤 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런 추세가 가속화되면, 누가 소개팅에서 착한 사람이라는 말을 듣고 싶겠는가. 착함이 곧 무능함의 동의어가 되어가는 현상, 이것은 한국 사회가 흘러가는 어떤 방향을 지시하는 것일까." - 57 p.


"오늘날처럼 전 세계에 책이 넘쳐나는 세상이라면, 책에 관련된 정보 요약과 큐레이팅이 필요하다. 서평은 그런 역할에 최적화된 장르다. 책을 소개하는 글이라면, 하나의 전체로서 그 책이 말하는 것이 무엇인지 요약할 수 있어야 한다. 물론 책 부분마다 흥미로운 포인트는 많다. 그러나 하나의 전체로서 그 책은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 서평은 이 질문에 답할 수 있어야 한다. 물론 책이 그러한 답을 가능케 하는 통일성을 결여하고 있을 수도 있다. 그런 책을 굳이 소개할 필요가 있느냐는 회의가 들기는 하지만, 그때는 왜 그 책이 그런 상태에 이르고 말았는지를 보여주는 것도 좋은 내용 소개가 될 수 있다." - 147 p.


"공부의 목적 중 하나는, 논쟁의 여지가 있는 영역에서 자신의 입장을 명확히 하고, 그 입장을 남에게 공적으로 설득하는 것이다." - 176 p.


"그리하여 강연자는 단지 자신의 머릿속에 든 것을 내뱉는 데 그치지 말고, 자신의 강연이 끝났을 때, 강연장을 떠나는 이들 머리에 무엇이 들어있기를 바라는지 스스로에게 물어야 한다. 저자 역시 독자가 책을 덮었을 때, 독자 머리에 무엇이 들어있기를 바라는지 스스로에게 물어야 한다." - 185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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