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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얼터마인 Jan 13. 2019

14. 엄마의 두 번째 첫 여행

하루 치 향유 - 필름사진을 본 후, 쓰고 그립니다


 교토의 4월. 1년 중에 단 한 번, 그것도 고작 2주일 정도 벚꽃이 만개하는 기간. 윤영과 엄마는 첫 여행으로 이 곳, 교토에 와 있다. 어느새 서른이 넘어가는 나이의 윤영은 지금껏 한 번도 엄마와 여행을 해 본 적이 없었다. 대학교 때는 방학을 기회삼아 친구와 또는 홀로 장기간 여행을 갔다. 입사 후 한 두 해 까지는 눈치 보느라 길게 연차 한 번 내 보지 못했고, 삼 년 차가 되어서야 겨우 짬을 내 애인과 여행을 갔다. 그러나 올해는, 작년부터 끊어두었던 교토행 티켓을 애인의 급한 회사 일정으로 날려버리게 생긴 것이다. 육아와 출근으로 바쁜 친구들과 갑자기 일정을 맞출 수도 없는 일이었다. 그래서 엄마에게 여행을 가자고 했다. 


 윤영의 두 배를 살아오면서 엄마는, 강하고 유한 사람이 되었다. 지난 주에 내린 폭우 때문에 교토의 벚꽃이 바닥에 진창으로 다 떨어져 내려 앙상한 가지만 남아 흔들리고 있었어도 그녀는 화내거나 서운해하지 않았다. 그저 희미하게 웃으며 말했다.

 벚꽃이 흐드러져 하늘을 메웠대도 골목을 줄지어 수놓는 복사꽃보다 예쁠까.

 엄마가 못 봐서 그래. 실제로 보면 사진과는 비교도 안되게 압도적이라고 하던데. 이게 뭐야. 성수기라서 취소도 못하고 비싼 돈 주고 왔더니만.

 실제로 본 적이 없으니 오히려 괜찮지 않니. 기억이 없으니 아쉽지도 않고. 얻은 게 없으면 잃을 것도 없는 것처럼.

 엄마 돈 내고 온 게 아니니까 그렇게 태평하지. 사람은 또 왜 이렇게 많아. 아휴, 저기 들어가서 커피라도 마실까. 사람 빠질 때까지. 잘 따라와요.

 사람들을 헤치고 가와라마치 벚꽃길 골목을 돌아 보이는 작은 카페로 걸어가는 윤영의 뒤를 엄마는 놓칠새라 종종 뒤따라갔다.


 나는 드립커피 마실래. 엄마는?

 어… 여기 핫 워터 없니. 핫 워터. 따뜻한 물. 여행오기 전에 배워 왔는데. 

 비행기에서 부터 호텔까지 계속 그것만 찾네. 여기서는 따뜻한 커피 마셔요. 아노, 코히. 호또 코히 후따쯔 쿠다사이.

 어설픈 손짓과 일본어로 윤영이 주문하는 동안, 엄마는 옆에서 다소곳이 기다렸다. 문득 엄마의 모습을 보고 윤영은 웃음을 터뜨렸다. 

 웃기네, 정말.

 뭐가?

 그냥, 어릴 땐 어디가면 엄마 놓칠까봐 맨날 뒤에 딱 붙어서 쫓아 다녔는데. 그럼 엄마가 길거리에서 핫바도 사주고, 빵집가서 주스도 사주고 그랬는데. 이제 엄마가 나를 쫓아다니니까 말이에요.

 엄마는 여기서 어린애지 뭐. 다 큰 건 너고. 어느새 이렇게 컸니, 그 조그마하던 게.

 희뿌연 김이 모락모락 날아가는 따뜻한 커피를 두 손으로 꼭 붙잡고 둘은 그렇게 시답잖은 둘만의 이야기들을 늘어놓았다. 어느덧 해가 저물고 창 밖의 사람들이 하나 둘 다른 식당의 창 안 쪽으로 그 모습을 옮겨 거리를 비울 때까지.


 그리고 그 해 겨울, 천안에서 꽤 큰 열차 사고가 났다. 바뀐 선로에 맞게 제대로 점검이 되지 않은 열차가 경로를 이탈해 버렸고, 열 칸 중 맨 앞의 세 칸이 제각기 다른 방향으로 흩어져 벌판에 나뒹굴고 나서야 열차가 멈추었다. 승객들이 패닉에 빠지고 멀리에서 구조대가 달려오는 사이에 시간 차를 두고 네 번째 칸이 폭발했다. 윤영은 그 4호차의 9번 창가석에 앉아 있었다. 본가에 내려가는 길이었다. 47명의 사망자에 그녀도 포함되어 있었다. 죽음과 관계없는 사람들은 정부와 철도회사 때문에 벌어진 ‘사건’이라고 했다가, 그래서 서명도 하고 시위도 하다가, 추모하고 애도하다가, 결국엔 어쩔 수 없는 ‘사고’ 아니겠냐며 잊었다.


 다음 해 교토의 4월. 윤영의 엄마는 홀로 가는 첫 여행으로 이 곳, 교토에 와 있다. 가와마라치 거리는 우중충했던 지난 해와 딴 판이었다. 하늘에서는 빛이 쏟아져 내리고 나무에 빈틈없이 빽빽하게 매달려있는 벚꽃잎들이 그 빛을 힘껏 반사해내며 반짝거렸다. 좁지도 않은 길에 들어찬 사람들 만큼은 지난 해와 같았다. 그녀는 사람들 사이를 헤치기도 하고 밀려나기도 하며 앞으로 전진하다가, 골목을 지나 왔다는 걸 깨닫고 간신히 뒤로 돌아와 어귀의 그 카페를 찾아냈다. 이런 곳에선 모든 사람들이 중심으로만 꾸역꾸역 모여드는 건지 멀지도 않은 카페에는 여전히 사람이 없었다. 커피? 핫 커피? 그녀는 주인과 서로 영어같지 않은 영어로 대화하며 겨우 커피를 시켰다.

 커피 한 잔을 두 손에 꼭 쥐고, 벚꽃비가 내리는 창 밖을 가만히 바라보며 엄마는 작게 중얼거렸다.

 윤영아.

 아쉽다.

 아쉬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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