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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ory Jul 11. 2016

좋은 날이야

누적된 기준 2

병에 걸린줄도 모르고 원인모를 무기력함과 다운되는 기분의 이유를 찾아보려고 애썼는데, 간단하게 진단 받았다. (월요병이래) 다행히 거래처와 고객사의 그 분들도 월요병을 앓고 계신지 오늘은 드문드문 생긴 잡일을 제외하고는 비교적 평안하다. 전국 여기저기서 월요병에 힘들어 하고 계실 그 분들을 생각하니 좀 위안이 된다.(낼부터 다시 아웅다웅해요 우리) 오후에 원빈 닮은 꼬맹이 직원이 돌린 아이스크림을 먹고는 기분이 조금 풀어져, 더 좋아져야지 "랄라라"거리며, 하드 하나 콘 하나 아이스크림 두개를 신나게 먹고는 오늘 밤엔 어떻게 칼로리를 소비해야하나 고민 중 이다. 날이 더워져 유산소 하기가 만만하지 않다. 배가 조금 나오는 것 같아 영 고민이다.


시원시원히 사람들과 만나고 어울리는 것을 좋아하는데다, 다른이가 가진 경험과 시선을 통해 세상을 배우는게 좋은 나는 "그런그런 자리"가 잦다. 그 만남 속에서 다시 돌아보고 발전과 반성을 끊임없이 반복한다. 내 사교생활을 달가워 하지 않았던 "지나간 남친" 덕분에 긍정적이고 발전적인 사람들과의 좋은 자리를 나는 늘 숨기고만 싶다. 같은 실수의 반복으로 다음 소중한 내 남자에게 상처주는 상황을 만들지 않으려고 지나간 그의 불안에 근원을 이해해보려고 가만히 그때를 생각 해보고는 한다.


나는 세심하지 못했고, 지나간 그는 이기적이었으며 진정으로 나를 이해보려하지 않았다. 맹세코 그런 자리에서 나는 단 한번도 실수를 하거나 올바르지 않은 처신을 하지 않았던 적도 없는데 "무조건 싫어" 거리며 윽박지르던 그는 나를 이해하려는 시도조차 없었던 것 같다. (처신을 바로 못해 잡음이 있었다면 그런 자리가 지금까지 자주 이어질까 그 멍청이 어휴)


잦은 사교의 자리를 갖다보면 내 안의 진짜 기준이 모호해 질 때가 있다. 다른이의 새로운 시선과 개념에 대해 듣다보면 그 기준을 이해하고 공감 하게되는데 그러다보면 내가 원래 갖고있던 기준과 충돌하는 때가 생긴다. 조금 여유가 있을 땐 곰곰히 생각해보고 내 기준을 재정비 할 수 있지만, 출근하고 퇴근해 다시 사람들을 만나고 하다보면 진짜 나는 저기 어디다 두고 껍데기만 앉아서 웃고있는 경우가 생긴다. 내 고고한 기준을 고수 하겠다며 가만히 집에 앉아있으면 꽉 막힌 바보가 되지만, 제대로 된 내 주관없이 웃으며 다녀도 바보가 된다.


여유가 생겨 혼자있는 시간이 생길 때 나는 스스로에게 '정말 원하니 아니면 또 잊고 남을 위해 대답했어?' 질문한다. 똑같은 길을 10년동안 걸어다녀도 누구는 빌딩을 보며 걷고, 누구는 사계절 변하는 나무를 보고, 어느 누구는 지나가는 행인을 보며 걷는다. 그 길 위의 빌딩을 10년동안 보며 걸어 온 사람에게 그 거리는 비지니스맨이 많이 다닌다고 이야기하면 공감을 얻을 수 없다. 10년을 걸었는데 그것도 모르냐고 핀잔 주어봤자 남과 나는 같은 시선으로 세상을 보기 어렵다. 오래 걸었다고 오래 살았다고해서 더 대단해질수도, 훌륭해질수도 없다. 나만의 시선과 기준을 끊임 없이 정비해야하고 남들과 다르지만 옳다고 믿을 수 있는 용기같은게 필요하다.  


어릴적 부터 내가 미래 남편상과 이상형에 대해 쫑알 거리면 엄마는 "나이 더 들어봐, 긴 세월을 보아라" 말씀해주시고는 했는데 내 인생은 내가 사는거라며 콧대 높게 쳇 굴던 내가 요즘엔 조금 엄마를 이해하게 되는 것 같다. 내 남자 체크리스트의 필수 조건 1, 2위가 쓱쓱 지워지고 새로운 조건으로 바뀌면서 스스로도 놀라는 요즘이다.


신념과 주관이 뚜렷한 남자. 친구들과 이야기해보면 모든 여자들의 필수 조건 중에 하나는 '내가 존경할 수 있는 남자'이다. 친구를 사귀어도 나는 자기 주관과 신념을 가진 사람이 좋다. 내가 원하는 것이 무언지도 파악 못하고 이래도 응 저래도 응 멍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애초에 인간적으로 매력을 느끼지 못한다. (그렇다고 자기주장만 앞세우며 이기적으로 구는게 아니라) 친구 사이에서도 나는 그, 그녀가 가진 가치관을 존경하고 이해하면서 배우는게 좋다. (나를 더 큰 사람으로 발전 시켜주는 것 같고 히히) 내 남자가 가진 신념과 가치관이 나와 같던 같지않던 듣고 이해하다보면 존경심이 생긴다. 나무만을 보며 길을 걸어오던 내게 빌딩은 보며 걸었을 때를 가르쳐주는 것 같달까.


한결같은 남자. 몇 안되는 지난 내 사랑들은 굉장히 다이나믹한 성향들을 가지고 있었는데, 솔직히 나는 그런 성향을 가진 사람을 매력있어했다. 은근 변태같은지 그런 성향을 맞춰주면서 나 같은 좋은 여자가 없다는 말을 들으며 나의 대단함을 인정받는다고 느꼈던 것 같다. (진짜 변태같아) 그런데 일도 사회생활도 지치기 시작하니 안정적인 내편을 기대하게 되는 것 같다 (자립심이 어마어마하게 강한 내가 변했어 진짜). 내가 좀 못난 날도 괜찮다고 다독여 줄 수 있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나도 안정적인 company가 되려면 곱게 갈아 모양을 만들어야하지만 아직 내 남자가 원하는 모양이 어떤건지 모르는거니까.


운동을 즐길 줄 아는 남자. 부모님이 만들어주신 좋은 습관중에 내 마음에 드는 쏙 드는 것은 운동을 즐기는 것 이다. 내 과거들도 다 운동을 즐기는 남자들이었는데, 관계에서 운동은 복잡한 트러블을 부드러이 넘겨줄 수 있는 구실이기도 하고 밍밍하던 사이를 뜨겁게 해 줄 수 있는 매개체이기도 했던 것 같다. 태생적으로 다른 남녀는 사실 사용하는 언어도 몸짓도 다른데, 이건 어느정도 시간이 지난 관계를 악화시키는 이유가 된다. 사실 조금만 여유를 갖고 찬찬히 들여다보면 서로 사랑하는 마음은 그대로인데도 소통의 문제로 관계가 어려워지고는 한다. 함께 땀을 흘리고 허물없이 깔깔 거리다보면 굳이 많은 말을 하지않아도 마음을 알게된다. 묘한 동질감 같은 것도 생기고.. 또 서로가 섹시하다. 더 말안할래. 그냥 좋다. 옳다.


빵집이나 밥집을 하더라도 장사를 아는 사람. 어릴 때 한번 그리고 최근에 기회가 생겨서 의사를 직업으로 둔 남성분을 만나본 적이 있는데, 어려웠다. 나는 수학을 잘하는 이과생에게 매력을 느껴하니 좋을 줄 알았는데 공감을 하기도 쉽지 않았고 그 대단한 수술들이 내게는 대단하지가 않았다. 스스로도 왜 이럴까 고민하고 좀 바꿔보려고 했었는데 의학용어들이 외계어 같기도 했고 배운게 도둑질 이라고 출혈을 잡은 것 보다, 1개 팔거 2개 팔 수 있는 장사꾼이 나는 더 멋있었다. 좋은 분들이었지만 고이 보내드리고 생각한건데 나는 장사를 아는 사람이 더 존경스럽다.



20대 초반의 나는 다른 기준을 당당하게 주장했을텐데 쓰면서도 신기하다. 기운 빠지는 월요일을 응원하기 충분한 글이라 뿌듯하다. 새로운 기준을 갖게된데는 변한 내가 근본인데 퇴근해야해서 더 쓸 시간이 없다. 7월은 올바른 눈을 갖는 시간으로 만들 생각이다. 그 분이 오셨을 때 어머 저 오빠 기다려쪄요 이야기 해야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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